[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

 1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1
 2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2
 3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3
 4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4
 5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5
 6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6
 7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7
 8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8
 9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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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역사문화]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문화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 후기의 중인
1)중인이란?
2)육두품 및 향리와의 비교
2.중인의 문화운동
1) 중인들의 위상 변화
2) 통청운동
3) 위항운동
3.북학개화파와의 연계
4.조선말 중인의 역할
5.한계와 의의
본문내용
3. 북학개화파와의 연계
1) 중인층의 맡은바 소임상 청일본과의 교류 기회가 잦았으며 그들의 문화를 수입하는 전초병 역할
2) 이용후생을 강조한 북학론이 연암 박지원Ò초정 박제가Ò추사 김정희에 연결되며 고증학풍으로 전환
3)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은 역관으로 12차례 청을 드나들며 청나라 문사들과 김정희의 연결고리 역할
4) 육교시사의 맹주 강위, 주요 동인 김석준, 개화파의 배후 인물인 역관 오경석 등이 모두 김정희의 제자였으며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에 주역을 담당했던 신헌과 민씨 척족의 실력자였던 민태호규호 형제도 추사의 문하
5) 따라서 당시의 개화정책은 이들 북학파가 주도했고, 민씨일족의 개화정책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
6) 결국 육교시사 및 중인층은 김정희의 학풍인 북학의 계승자로 혁신세력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들이 북학에서 얻은 견식을 바탕으로 서양세를 등에 업은 일본의 동태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음양으로 영향 행사
7) 요컨대, 중인층은 북학의 본류를 이어 한말에 이를 확산시키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북학의 근거지인 청의 선진문화를 부단히 받아들이는 일선의 역군이었다. 그러한 진취성이 병자수호조약의 체결에 측면작용을 하였고, 개항 후에는 일본을 통한 서구문명의 수용에 적극적 자세를 보인 개화파로의 전신을 가능케 했다. 또한 편저술 활동과 의술 등을 통해 수용한 선진문화를 사회에 전파시켜 계몽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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