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통과학은 왜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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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국문화의 시스템론적 해석
중국 전통과학은 왜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중국은 거대한 대륙과 장엄한 역사 그리고 화려한 문화를 가진 나라다. 역사가 길고 문화가 화려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 졌는데 안타까운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과학이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테지만 중국은 과학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였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과학은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설명을 해 나가겠다. 중국의 전통과학을 총체적인 추세와 이론, 실험, 기술이라는 부분으로 나누고 근대과학을 이끈 서양의 과학도 총체적인 추세, 이론, 실험, 기술로 나눈다. 그리고 역사에 따라 발전의 추세를 그래프로 그리면 중국의 전통과학은 기술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4개의 부분이 전체적으로 완만한 상승추세가 이어진다. 하지만 서양의 과학은 상승과 쇠퇴 그리고 급격한 상승 등이 나타나는 그래프를 보인다. 그래프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중국의 전통과학은 이론, 실험, 기술 세 부분의 분리경향이 뚜렷함을 보여주고 서양의 과학은 상호자극과 협조하에 발전을 가속화하였다. 이러한 중국 전통과학의 분리경향은 순환가속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 서양의 과학기술은 16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이론, 실험, 기술 3자 사이의 상호 의존과 촉진의 순환 관계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순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순환가속기제이고 순환가속기제중 첫 번째가 ‘이론-실험-이론’이었다. 즉, 이론과 실험은 서로 강력한 순환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술-과학-기술’이었다. 이는 기술 자체의 개선과 진보가 발명의 선결 조건이지만 과학과 기술이라는 연결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두 순환가속기제는 이론, 실험, 기술이 정립하여 서로 독립을 유지하면서 발전을 촉진하는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가속 발전의 내적 조건이다. 하지만 순환 가속이라는 과학기술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자연관의 기초 위에서 과학이론이 성립 되어야 한다. 여기서 구조적 자연관이란 논리 구조적 이론이어야만 하며,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두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논리 구조적 이론은 이론체계가 질서 있는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며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변화량과 그밖의 것들이 구분, 선택되고 실험조건의 통제와 반복에 필요한 명확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자연관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며 이후의 과학이론 수립에 폭넓게 활용되었다. 그런데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통제 가능함을 전제로 어디서 누가 실험을 진행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수공실험이다. 수공실험은 언제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고, 우연의 오차와 착오를 극복할 수 있으며, 이론-실험-이론의 순환을 가능하게 해준다. 수공실험은 실험 기구를 이용해서 실험과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함과 동시에, 실험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가 실험기구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실험과 이론의 결합, 실험 기구와 원리의 일치가 되어야만 한다. 위 두 가지가 수공실험의 조건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러한 수공실험의 전통이 확립되지 못했다. 이는 중국에서 이론과 실험 사이에 이러한 연계가 명확하게 구분 되어있지 않아서다. 또한 수공실험구조의 수립은 학문적인 전통과 장인의 기술적인 전통이 하나로 합해질 때 가능한 것인데 서양은 학자와 기술자의 통합이 잘 이루어졌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또 순환가속기제는 기술체계 자체가 개방적이어야 함을 요구한다. 즉 기술 자체가 구체적인 물건으로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중국의 전통 기술은 대부분 그러하지 못했다. 개방적 기술체계의 수립에는 자본주의 경제와 합리적인 이론, 실험 구조의 성립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과학이론은 구조적 자연관을 구조로 하고 실험은 수공실험, 기술구조는 반드시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구조에서 순환가속기제가 결여된 까닭이 해결된다. 그것이 바로 대통일형의 기술이다. 대통일형의 기술은 개방적 기술체계가 아닌 중국 봉건사회의 특수한 구조하에서 생선된 것이기 때문에 봉건지주경제 구조라고 하는 제한된 틀 안에서 발전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술이 개방될 수 없고 대대손손 비법으로 이어져서 독점되었다. 그리고 대통일 기술은 왕조의 안정성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어 왕조가 붕괴하면 기술체계의 파괴로 이어져 기술 수준의 축적과 전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즉 기술-과학-기술의 순환가속기제가 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유가의 유기적 자연관과 윤리중심주의가 과학 이론을 유치한 수준에 묶어 놓은 것, 중국 전통과학의 특색이 기술화 경향이라는 점에서도 구조적 자연관 수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전통과학의 발전을 방해했다. 하지만 위의 설명만으로는 서양보다 중국이 과학기술구조가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서양처럼 발전을 하지 못했는가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서양 봉건사회의 붕괴와 자본주의 사회의 수립일 것이다. 근대 과학 기술구조의 세 하위시스템 가운데 개방적 기술체계의 확립과 정치, 경제의 관계가 가장 밀접하다. 하지만 중국은 장기간 동안 개방적 기술체계가 성립되지 못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원시과학구조를 이해해야 하는데 원시과학구조는 손쉽게 수공실험이 가능하고 구조적 자연관을 확립할 수 있는 영역에서 근대과학구조 시스템과 유사한 것을 수립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원시과학구조가 이론, 실험, 기술을 구분할 수 없는 특수한 영역에서 먼저 발생했는데 그것이 기하학이다. 기하학에서 실험에 해당하는 것이 측량이고 측량이 가장 손쉽고도 사회화가 가능 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바로 최초의 논리구조형 이론체계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미완성된 기하학이 싹을 텄으나 발전하지 못하고 실용적인 천문학과 측량기술 안에 흡수되어 형성되지 못하였다. 또한 유가의 이론의 기술화 경향으로 인해 수학 이론이 대부분 천문학과 수리 계산 중심으로 형성되어 기하학 내에 구조적 이론체계가 수립되거나 성숙하기는 어려웠다. 원시과학구조의 이론 모형의 대표인 유클리드 기하학체계는 구조적 자연관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과학구조 수립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과학의 지나친 기술화 경향, 춘추전국시대 후기의 사회구조의 근원적 변화 및 묵가사상의 소멸로 원시과학구조의 확립을 위한 호기를 상실하고 그것이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원시과학구조가 근대과학구조의 수립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패러다임 기능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자들이 특정한 영역에서 이미 명확해진 방식으로 새로운 연구를 하는 것을 뜻한다. 즉 패러다임은 문제 처리 모델인 동시에 과학 공동체에서 함께 준수해야 할 준칙이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과학자들의 연구에 시범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패러다임이 근대과학구조의 틀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근대 과학구조 수립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것도 후대 과학자들에게 패러다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패러다임 기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근대과학이론구조의 체계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중국이 근대과학구조의 수립에 실패한 것도 패러다임의 기능이 부재했기 때문이고 이것이 발전을 가속화 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다시 패러다임의 기능을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나열한다면 첫 번째가 과학 자체의 전문성과 복잡성이다. 기술도 전문적이고 복잡하지만 사회적 요구에 의해 존재했다. 그러나 중국문화에서 과학은 쓸모가 없는 것으로 비춰졌고 결국 패러다임 기능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직관이다. 과학구조의 성장은 항상 고대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충돌했다. 중국에서는 혼천설이 실험 결과에 더 부합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천설이라는 직관이 존재했기 때문에 전파가 곤란하였다. 세 번째는 통신 교류 수단의 결핍이다. 원시과학구조가 발전하고 사회화되기 위해선 통신수단이 필요한데 이는 거의 불가능 했다. 그러나 서양도 원시과학구조의 발전과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발전을 이룩했다. 원시과학구조의 패러다임의 세 가지 장애를 극복가능하게 한 요인은 중세 스콜라철학과 중국의 대통일 기술이다. 기독교는 고대그리스의 과학구조를 교리에 흡수시켜 과학의 전문성에 수반되게 하여 한계를 극복했다. 왜냐하면 스콜라 철학이 기독교 안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교리상으로나마 평등을 주장하여 학자와 기술자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메워주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사회 공동체가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을 교리로 하나로 결합했다. 즉 스콜라철학이 수립되지 않았다면 원시과학구조의 수립도 거의 불가능 했을 것이다. 또한 중세 서양사회의 구조와 대통일 기술이 발전을 도모하였다. 왜냐하면 대통일 기술로 기술이 보급되고 발전이 이룩되었다. 또한 대통일형 기술과 기독교 문화는 서로 상응되어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대통일 기술을 구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이고 2000년 동안 사회구조를 바꿀 커다란 변화가 없어서 중국의 과학은 발전 없이 정체에 들어서게 되었다. 외부 영향으로부터의 차단과 사회구조의 불변이라는 조건하에서는 이러한 한계는 쉽게 극복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과학을 흡수한 후기에는 과학이 종교와 대립을 이루었고 승리하였다. 만약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라는 패러다임의 확대가 없었다면 패러다임의 연쇄반응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과학과 패러다임의 성장은 부정성의 확산이라는 특성한 시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인데 이는 후기에 사회에 만연한 종교에 대한 불만과 사회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서양은 발전을 이룩하는데 중국은 전혀 원시과학구조의 사회화 조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봉건사회의 구조는 근대과학구조를 수립할 수 없게 했고 그 점이 전통과학을 장기적 침체에 빠뜨린 원인이었다. 구체적인 원인은 춘추전국시대의 원시과학구조의 미성숙, 대통일 기술의 부재, 묵가보다 강력한 사성의 존재 등이다. 명말, 청초에도 과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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