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학세미나 서구 시민계급의 성장과 교육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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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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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구 시민계급의 성장과 교육의 관계

Ⅰ. 서론: 시민계급의 개념
Ⅱ. 베버의 계층(급) 개념
Ⅲ. 시민계급의 형성과 새로운 교육의 요구
Ⅳ. 시민교육의 확산
Ⅴ. 주요 국가의 시민계급의 성장
Ⅵ. 시대에 따른 시민개념의 변화
Ⅶ. 결론
※ 참고문헌
Ⅰ. 서론: 시민계급의 개념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제도에는 ‘계급’(class)이란 용어가 없었다. 계급이란 단어는 중세의 신분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신분을 그 이전의 신분과 구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계급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18세기 중엽 유럽의 중농학파였고, 프랑스의 마블리(G. Mably)는 경제적 기능이 상이한 집단들을 ‘계급들’(classes)로 표현했다. 스미스(Adam Smith)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세 신분으로 분류하면서 각 신분을 다시 세분할 때 계급(class)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노명식 외, 1995: 12-13). 본고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시민계급(bourgeoisie)은 사회적 변동기에 새로 출현한 계급을 표현한 말로 중산계급(middle class)이라고도 불린다.
시민계급의 개념은 크게 세 가지 뜻을 가진다. 먼저, 성(城: bourg) 안에 사는 주민이라는 뜻으로 주로 중세 도시의 거주자를 의미하며, 다음으로 시민혁명을 수행하여 근대 시민사회를 이룩한 계급으로도 해석이 되며, 또 다른 의미로는 산업자본가 계급을 일컫는다. 세 가지 의미 중에서 시민혁명을 수행하여 근대 시민사회를 이룩한 의미의 계급이 가장 중요시된다. 그 이유는 이때의 시민계급이 정치적으로는 근대 민주주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봉건체제 또는 절대군주제를 타파하고 시민사회를 형성했으며,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을 수행하여 근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한 시민 층이 시민계급을 구성했으며, 이 계급에는 자영농민층, 직인(職人)·도제·노동자, 진보적 산업자본가 계층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시민계급의 개념은 『두산백과사전』의 ‘시민계급’ 항을 주로 참조했음.
서구 시민계급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로 중산계급, 중간계급(intermediate class), 부르주아지(bourgeoisie), 교양시민층(Bildungsburgertum) 등이 있지만, 그 중 시민혁명 이전의 시민계층을 일컬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부르주아지일 것이다. 부르주아(bourgeois)는 중세 프랑스어에 어원을 둔 단어로 도시 성벽 안에 사는 사람, 즉 중세 도시의 자유 시민을 의미했다. 그 의미가 진화하여 도시의 안팎을 가리지 않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 형성의 중추 세력을 이루면서 봉건제에 대항하고, 수공업 및 상업에 종사하면서 상공업을 발전시켜 왔던 사람들을 지칭하게 되었다. 부르주아의 개념은 『철학사전』(임석진 외 편, 2009)의 ‘부르주아’ 항을 주로 참조했으며, 『콜롬비아 백과사전』(The Columbia Encyclopedia)의 ‘부르주와지: 기원과 성장’(Bourgeoisie: Origins and rise) 항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음(출처: Retrieved from http://www.infoplease.com/encyclopedia/society/bourgeoisie-origins-rise.html). 콜롬비아 백과사전에 대한 번역은 아래의 내용을 참조하기 바람.
역사적 현상으로 부르주와지는 11세기에 시작된 중부 및 서부 유럽에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중세도시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부르주와지, 즉 상인들이나 기술자들은 토지 소유자들과의 갈등 때문에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중세 말, 서구 유럽의 군주의 지배 하에서 부르주와지는 봉건적 무질서에 대항하면서 왕권을 지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함을 알았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부르주와지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에 추진력이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부르주와지는 헌법적 원칙과 자연권을 지지하면서 신권과 귀족 및 고위성직자의 권리에 대항했다. 영국, 미국,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부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무역 및 소유권에 대한 봉건적인 구속과 왕권의 침해를 없애기 위한 부르주와지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자유주의를 당당하게 주창했던 부르주와지는 종교적이며 시민적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획득했다. 산업혁명에 뒤이어 부르주와지는 팽창하여 그 계급 내에서도 차이와 구별이 이루어졌으며 산업가들과 은행원들로 구성된 고급 부르주와(the high bourgeois)와 무역업자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구성된 소시민 계급(the petty bourgeois)로 구분된다.
18세기에 이르면서 부르주아는 특유한 기준과 규범에 의해 생활하는 다양한 사회집단을 포함하는 느슨한 개념이 되었다. 즉 직업상으로 부르주아는 왕이나 노동자는 아니었으나, 국가 관리, 문필가나 전문직, 상인, 금융인, 공장경영자, 혹은 교수나 교사일 수도 있었다(그런 직업들은 제3신분만 아니라, 귀족, 승려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 수입원 측면에서 부르주아는 농촌의 토지 재산, 도시의 상공업 상의 재산, 혹은 채권에 투자한 금융적 재산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었다. 이처럼 부르주아 개념에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직업과 경제적 수입원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금, 교육, 생활스타일, 주관적 자아상, 사회 및 가문관계 등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노명식 외, 1995: 13-14). 토크빌(Lexis de Tocqueville)은 18세기 프랑스의 부르주아의 특징을 공직을 갖고 있고 도시에 살고 있으며, 벼슬을 살 수 있고 그 매관직의 특권을 계속 늘여갈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자들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런 그룹은 그 부류가 한없이 다양하여 어떤 도시에는 그러한 부류가 36개나 존재하였다고 한다. 18세기 말 부르주와 들은 여러 가지 특권을 향유함(1955: 92, 115). 부르주아의 의미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중간계층(classe intermediaire)이란 용어가 적절한 것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음(노명식 외, 1995: 14에서 재인용).
따라서 서구의 시민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경제적 부를 근간으로 중세와 근대사회에서 새로운 계급으로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군의 부르주아 계층이 단일한 하나의 시민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교육제도와 교육의 내용과도 상호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민계급이 지속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는데 있어서 교육을 통한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한 기술의 전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공교육에 대한 영향 행사,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인한 교육의 확대, 무역과 상업, 그리고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자연과학의 발달 등은 모두 교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되며 이것은 서구 시민계급의 성장과 발전의 주춧돌이었을 것이다.
본고에서 논의하려는 대상은 서구 시민혁명 전까지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계층이었으며 시민적 소양을 가지고 교육을 받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이다. 이들은 중세 봉건사회 후반부터 상공업과 교육을 통해 새로운 경제 영역에서 활동한 자유 시민이자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을 겪으면서 중세 종교교육과 구별되는 새로운(세속) 교육을 받은 중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시민계급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밑 걸음이 된 교육제도와 교육의 내용을 중심으로 시민계급의 성장과 교육의 관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계급과 계층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계급의 정의에 종교와 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베버(M. Weber)의 논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중세 길드(Guild) 제도부터 시민계급의 형성과정을 경제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에서 논하고자 한다. 아울러 시민계급 형성에 사상적으로 큰 역할을 한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교육에 대한 영향관계도 알아보겠다. 그리고 서구 주요 국가의 초기 시민사회 형성과정과 시민개념의 변화 과정도 정리하는 것은 시민계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Ⅱ. 베버의 계층(급) 개념: 계급(class)과 계층(stratum)의 관계
계급과 계층은 비슷한 개념으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사회 불평등 현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구분을 하기도 한다. 계급은 주로 생산관계에 기초한 갈등적 집단관계를 의미하며, 계층은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나타나는 각 층에서 정치·경제·사회·종교·교육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현상을 의미한다(홍두승·구해근, 2001; 조광익, 2012: 8). 전자가 마르크스(K. Marx)의 입장과 관련된다면, 후자의 대표적인 입장은 베버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시장에서의 위치와 계급의 결정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에 있다고 보았고, 베버도 계급(층)의 구성원은 동일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시장에서 비슷한 위치(market position)에 있으며 이에 따른 생활기회(life chances)를 갖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베버는 한 걸을 더 나아가 생산수단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들도 교육, 기술 등에 따라 차등화 된다고 생각했다(앤서니 기든스·필립 서튼, 2013). 그러므로 서구 시민계급의 성장과 교육이라는 교육사회적인 관점에서는 마르크스적인 계급의 의미보다는 베버의 계층적인 의미의 접근이 타당해 보인다. 많은 연구가들과 학자들이 계급과 계층의 관계를 완전히 별개의 개념으로 분리하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계급과 계층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계급과 계층의 관계는 포괄적인 계층론, 배타적 구분론, 그리고 절충론으로 논의되고 있다(홍두승·구해근, 2001: 28-32; 조광익, 2012에서 재인용). 포괄적 계층론은 사회계층이 모든 제도화된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포함한다고 보고, 계급현상도 그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포괄적 계층론의 입장에서는 계층이 상위 개념이고 계급은 하위 개념이다. 제한된 재화인 돈, 명예, 권력 등 희소가치가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그 관계가 구조화될 때 계층 현상이 생기고 계층 간에는 이해관계의 대립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