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

 1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1
 2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2
 3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3
 4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4
 5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5
 6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6
 7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7
 8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8
 9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9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여씨향약언해 여대균 생애 여씨향약언해 내용 여씨향약언해 국어학적 연구 성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
1. 저자와 생애
-『여씨향약』은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孫呂氏鄕約)』의 약칭으로, 이는 11세기 초 중국 북송(北宋) 때 남전여씨(藍田呂氏)가 만든 향약을 주자가 증보·가감한 것이다. 이를 1518년(중종 13)에 김안국(金安國)이 번역한 책이 바로 조사대상인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이므로, 따라서 책의 저자는 번역자 김안국이나 원래의 것을 첨삭, 주석한 주자가 아니라, 남전여씨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하다보니, 이 같은 초반의 생각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원래의 여씨향약은 오늘날 전하지 않으며, 그 내용은 주자의 『증손여씨향약(朱子增孫呂氏鄕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주자가 주를 달고 첨삭한 이 ‘여씨향약’은 상당한 손질이 가해졌으리라 생각되는 바, 결국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의 원전이 되는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孫呂氏鄕約)』은 본래의 그것과는 일정 부분 다른 성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원전의 본문에 구결을 달고 한글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번역자 김안국은 원전이 실린 『주자대전』에도 없는 협주를 많이 달고, 또 중복되는 본문을 줄이는 등의 손질을 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언해서의 저자를 누구로 해야할 지에 대해 매우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오랜 고민을 한 뒤 내린 결론은, 비록 지금은 전하지 않더라도 현존하는 ‘여씨향약’의 근본을 만든 남전여씨 문중 4형제를 원작자로 보는 것이다. 주자가 증손한 ‘여씨향약’이 『여씨향약언해』의 원전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주자가 수정을 가할 수 있는 원본을 만든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전여씨’라는 말은 여씨 문중 4형제 중 막내인 성리학자 여대림(呂大臨)만을 이르는 말도 되고 이 문중을 일컫는 말이기도 해서 저자에 대한 논란에 일조하고 있는 듯하며, 원래는 저자가 여대충이라는 설이 유력했다(언해본에서는 『여씨향약』이 막내인 대림(大臨)의 저작이라 주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에는 남전여씨 문중의 4형제(여대충(呂大忠)·대방(大防)·대균(大鈞)·대림(大臨))가 모두 저작에 관여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저자와 생애’에 대한 조사는, 이들 중 생애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여대균과 여대림으로 대상을 한정하였다.
1) 여대균(呂大鈞)
생몰년 : 1031년 - 1082년
본관 : 북송(北宋) 경조(京兆) 섬서성(陝西省) 남전(藍田)
(중국어 발음 : 산시성[陝西省] 란텐[藍田])
자 : 화숙(和叔)
호 :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