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구운몽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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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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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구운몽
【 목 차 】
I. 서론
II. 본론
1.작가소개
2. 창작 시기 및 창작 동기
3. 제목의 의미와 작품의 성격
4. 인물 소개
5. 줄거리
6.「구운몽」의 서사구조와 특징
7. 주제와 사상적 배경
8. 문학사적 의의
III. 결론
IV. 참고문헌
I. 서론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 중 「춘향전」과 더불어 2대 걸작으로 꼽히고, 중국 소설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한국 소설의 분야를 개척함에 있어 큰 기여를 했다. 「구운몽」은 이러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적인 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우리는 「구운몽」의 간단한 개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구운몽의 표기문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일반적으로 구운몽은 한글로 창작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것에 반하여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구운몽」의 표기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김태준의 국문창작이란 설명 이래, 정규복의 한문창작설, 필자(설성경)의 한문과 국문 이원표기설, 부쉐의 국문창작설 등이 제기되어 왔다. 이런 표기문자에 대한 연구사와는 달리 일반 교양물에서는 대부분 「구운몽」표기문자는 국문이라고 기술해오고 있다. 그러함에도 정규복교수는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국내외에서 이본을 구하여 실증적인 텍스트 비평을 천착하여 연구사에 기념비적인 성과를 내놓았다. 그는 구운몽의 원전은 한문본임을 제시하면서 「구운몽」이본들을 교합하여 「구운몽 재구본」을 내놓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한국학자인 부쉐는 한글 선행설을 통해 견해를 달리 하기도 하였다.
「구운몽」의 표기문자가 당시 대부분의 소설이 국문이나 한문의 단일 표기로 창작되고 유통된 것과는 달리 「구운몽」은 작가의 독특한 의도 때문에 한문과 국문 이원표기를 실현하고 있었던 것으로 시각을 둘 필요가 있다.
「구운몽」의 원전에서 작가가 창작 당시에 사용한 표기문자는 한문으로 판단된다. 유학자 김만중의 일상적인 표기가 한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운몽」의 어휘나 인명, 표제, 부제, 삽입시 등의 상징적 의미 부여 등에서 한자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만중은 한문 표기 창작 당시에, 한문표기의 원 텍스트의 창작과 더불어 곧 작자 스스로가 국문본을 함께 내놓았을 수 있는 개연성이 발견된다. 이는 작가가 한문본을 창작한 다음 곧 이어서 작가 스스로 후속 조치로서의 국문본을 함께 마련함으로써 국문본과 한문본이 병행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간의 표기 문자에 대한 고정된 견해는 한 작가는 한문본을 택하게 된다면 한문본만을, 또 국문본을 내놓는 작가는 국문본만을 내놓는다고 판단해왔다. 그래서 한문본과 국문본이 조선조에 이미 함께 유포되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후대의 인물이 번연을 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포 김만중은 대작가로서 국문문학이 지닌 힘을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의 힘은 실질적인 독서 행위에 의해서 실현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구운몽」이란 소설 창작의 공력에 비하여는 너무나 손쉬운 일이지만 실제적인 독자들의 확보에는 엄청난 보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국문본의 효능을 알고 스스로 국문본을 내놓게 되었다는 입장이다. (중략)
1차 장작 당시의 문자 선택이 한문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더 있을 수 있다. 작가는 일상의 표현 문자가 한문이다. 당대 최고의 학식과 문장력을 갖춘 최고 지식인의 한 사람인 자가 김만중이다. 그의 문장이나 비평적 안목은 누구나 공인할 수밖에 없으며, 그토록 능숙하게 한문을 통한 문학적 표현력을 갖춘 그가 굳이 당시로서는 품격 높은 문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국문으로 상징적 의미와 한시가 많이 차지하고, 또 궁중의 공사문서가 자주 등장하는 작품을 국문으로 발상하고 표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중략)
이러한 내적인 증거 이외에도, 「서포년보」에 보면, 「윤씨행장」을 지어 한문본을 원본으로 삼고, 한글본을 몇 부 본인이 직접 전사하여 가족들에게 보낸다. 서포 김만중이 보여주는 행장에 대한 보존이나 독자들을 의식하는 태도는 소설인 「구운몽」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작가인 김만중이 「구운몽」을 창작한 후에 시간이 여유가 있는 유배지에서 몇 부를 직접 전사하여 자체 보관과 더불어 어머니 등 대상독자에게 송부하고, 또 한편으로는 국문본을 만들어 또다른 계층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설성경, 「구운몽 연구」
요약하면, 김만중이 「구운몽」을 한문으로 먼저 쓰고, 나중에 국문으로 썼다는 것이다. 이유는 김만중의 일상적인 표기가 한문이었다는 것과, 「구운몽」의 어휘, 인명등이 한문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만중이 행장을 원본으로 삼고, 한글본을 몇 부 본인이 직접 전사하여 가족들에게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구운몽」에도 그와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본을 살펴보면 1책부터 4책까지 분량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1725년에 간행된 금성판 한문목판본을 비롯하여 국문방각본, 국문필사본, 국문활자본, 한문필사본, 한문편토본 등 50여종이 넘는 만은 이본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