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전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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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전향소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전향의 개념
일반적으로 전향이란, 협의로는 공산주의자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다른 사상이나 생활로 회귀하는 개념과 이보다 더 넓게는 진보적 합리주의 사상을 포기하는 전향, 그리고 광의로는 사상적 회전현상 일반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 중 한국에서는 첫째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향에 관한 일반 개념을 국내에 들여와 소설에 처음 적용, 사용한 것은 임인식이다. ‘최근 소설이 주인공’에서 그는 전향소설을 “현재의 인물에겐 지나치게 화려한 과거를 가진 인간들의 고뇌로 일관된 문학”으로 보고 있다.
2. 전향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
전향소설들이 등장하게 된 정치적, 사회적 요인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본 천황제 파시즘의 대두와 더불어 더욱 강화되기 시작한 일제의 사상운동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들 수 있다. 1920년대 말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일대 위기를 맞게 된 일제는 내적 모순을 중국대륙의 식민지화를 통해 해소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자국의 사상운동은 물론, 식민지 조선의 사상운동에도 가혹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의 과 1936년의 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이를 적절히 운용함으로써 사상운동에 대한 규제를 수행한 것이다. 특히 이 시기의 조선의 사상운동은 식민지 민족해방운동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심한 통제를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상황의 악화는 작가를 포함하여 식민지의 대부분 지식인들에게 사상전향의 강요사항으로 작용하였다. 이념의 선택, 또는 그 이념의 실현을 위한 실천운동의 활동을 차단당한 일대 전향의 시대를 맞이하여 작가들은 현실의 용인이냐 극복이냐 하는 일종의 실존적 결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의 소산으로 출현한 것이 바로 ‘전향소설’이다.
한국에서의 전향소설의 등장 배경은 일제에 의한 사상운동의 탄압이었다. 이것은 1925년에 제정된 에 그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치안유지법의 제 1조 제 1항에 ‘코쿠타이(國體) 고쿠타이(國體)는 천황이 통치하는 특별한 국가라는 의미로, 민족주의적 우월감을 표현한다.
또는 세이타이(政體) 국가. 즉 일본.
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함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이를 알고도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라는 명문규정으로 시작되는 이 법률은, 사상범을 억압한다는 정치적 목적과 사회를 진정하고 통합으로 향하게 한다는 윤리적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 법률의 작용으로 거둔 최대의 성과는 수많은 사상범들의 ’전향‘이었다. 권력에 의해 강제되어 일어난 사상의 변화라고 정의되는 전향은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력의 발동을 뜻했다. 강제수단이란 노골적인 강제로서의 폭력, 즉 투옥, 사형, 고문뿐만 아니라 이권의 부여라든가 매스컴에 의한 선전과 같은 간접적인 강제도 포함된다. 이와 같은 국가권력의 직 간접적인 강제력 앞에 사상범들은 심각한 패배감에 빠져 자기가 믿어왔던 사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작가 김남천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호세이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 ·임화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카프 해산기를 전후하여 제기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에서는 이 창작방법이 러시아 현실과는 다른, 조선적 특수상황에는 부적당하다고 주장하여 박승극 ·한효와 대립하였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이론과 실제를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모색하면서, 모랄론 ·고발문학론 ·관찰문학론 및 발자크 문학연구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리얼리즘론’을 전개하였다. 8 ·15광복 직후에는 임화 ·이원조 등과 조선 문학 건설 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 문학가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같은 단체의 서기장을 맡아 기관지 《문학》을 발행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였다. 1947년 말 월북하여 해주 제일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로당의 대남 공작활동을 주도하였으나, 1953년 숙청되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대표작으로 장편 《대하(大河)》(1939), 중편 《맥(麥)》(1941) 《경영(經營)》(194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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