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야나기 무네요시 믿음이 깊었던 외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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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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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야나기 무네요시, 믿음이 깊었던 외부인(外部人)
목차
Ⅰ. 서론
Ⅲ. 결론
Ⅱ. 본론
1.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 그 시작
참고문헌
2. 야나기, 그 공예의 길
3. 야나기 무네요시가 생각한 작은 협동체, 길드
Ⅰ. 서론
지금 2006년 12월.
으로부터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남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 **여자고등학교는 ‘여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의미했다. 2006년 현재는 공학(共學)의 추세가 두드러지므로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이름이, 각각의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기본(基本)이 되어야 할 것이 한 쪽에 치우쳐진 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학자, 종교철학자 등 그 성격에 따라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는, 이른바 민예(民芸)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민(民)’은 원래 ‘민중(民衆)’의 ‘민’이고 ‘예(芸)’는 우리의 의미로는 ‘공예(工芸)’의 ‘예’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민중적 공예’의 약칭으로서 ‘민예(民芸)’ 두 글자를 골랐던 것이다. ‘민중예술’이라는 의미라 해도 좋으나 예술이라고 하면 자칫 개인적인 고급 미술 등을 연상시키므로 좀 더 이름도 없는 공인(工人)들이 만든 실용 공예품이라는 의미를 시사하고 싶어 ‘민중적 공예’의 의미를 취해 ‘민예’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영역할 경우에도 ‘Fork Art라는 어휘를 피해 ’Fork Craft‘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인범, 「조선예술과 야나기 무네요시」시공사, 1999, 114쪽.
- 인용한 구절에서 Fork는 Folk로 고쳐서 써야함을 알려둔다.
라 불리는 독특한 예술(芸術)의 장르를 조선의 미와 더불어 발견하고 알린 대표적 인물이다. 한편, 이제껏 한국의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한 미론(美論)이나, 특히 조선인식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으나, 그 영향력 이전에 야나기의 인식에 대한 고찰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은 상태이다. 일단 야나기가 말한 ‘미(美)’는 부담감 없이 ‘미(美)’ 그대로 수용되고 있고, 그가 말한 여러 논의가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 비교되고 있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과연 야나기가 말한 민예 야나기 무네요시가 지은 「공예의 길」을 중심으로 한 야나기의 직접적 발언을 주된 근거로 삼을 것이므로, 이하 ‘공예’로 통칭한다.
는 ‘예술’에 대한 어떠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야나기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예술’에 대해 ‘공예’라고 이름 붙인 후로는 그것은 ‘공예’가 되어 ‘예술’과는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어버렸다. 앞서 비유한 고등학교의 예를 보아, 고등학교에 다름없었던 것이 ‘여자’라는 수식 때문에 ‘여자고등학교’가 되어버린 것을 간과할 수 없음으로, 야나기의 공예가 지니는 성질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개념이 가지는 그 자체의 의미분석보다는, 야나기가 1920년대 후반에 제창한 ‘길드 사회주의’와 그 원천이 된 영국의 길드 사회주의를 비교하고, 공예의 실천에 있어서의 야나기의 행태를 고찰하여,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미의 ‘공예’와 그 ‘길’을 발견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 그 시작
일본의 ‘미’를 찾고자 중세에 착안하여 새롭게 고딕에 대한 관심을 높인 이후 야나기는, 근대적 개인(위인천재)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써 ‘민중’에 대한 관심을 높여갔다. 나카미 마리 일본 세이센(淸泉)여대 교수, 국제관계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