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1921~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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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수영(1921~1968)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수영(1921~1968)
1. 생애
192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선린상고를 거쳐 도일, 1941년 도쿄상대에 입학했으나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 8·15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작 활동을 하였다. 김경린·박인환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6·25전쟁 때 미처 피난을 못해 의용군으로 끌려 나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 후 교편생활, 잡지사·신문사 등을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여 제1회 시협상을 받았고, 에머슨의 논문집 《20세기 문학평론》을 비롯하여 《카뮈의 사상과 문학》 《현대문학의 영역》 등을 번역하였다.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 등 2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 등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간행된 것들이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쓴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한 뒤 마지막 시 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하였다.
김수영이 가진 작품의 시사(詩史)적 맥락에 대해 평론가 김현은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말하였다. 사망 1주기를 맞아 도봉산에 시비가 건립되었고(1969), 미완성의 장편소설 이 《월간문학》(1970)에 발표되었다. 민음사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있다. 2001년 10월 금관문화훈장이 사후에 수여되었다.
2. 작품 경향
1) 제1기(1945~6.25전쟁까지의 시기): 모더니스트로서의 김수영
그가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출발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 박인환과의 만남
1945년 해방이 되자 김수영은 명동 부근에 박상진이 설립한 청포도 극단을 찾아갔다가 종로 2가에 말리서사란 책방을 내고 있는 박인환을 만나게 된다. 박인환이 경영하던 서점을 드나들면서 김수영은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출발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된다. 박몽구(2006), 모더니즘 기법과 비판정신의 결합, p226
하지만 김수영은 이내 자신의 시적 출발에 대해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되었고, 모더니즘에 대해 비판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1945년 해방기에 쓴 , , , 등과 1949년 김경린·임호권·박인환·양병식 등과 함께 묶은 신시론(新時論)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수록한 , 그리고 1949년에 쓴 , 등이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