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과 중국 불교적 현대시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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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지훈과 중국 불교적 현대시의 비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조지훈과 중국 불교적 현대시의 비교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동아시아의 전통적 자연과 표현
⑴ 불교적 자연관
⑵ 도가적 자연관
⑶ 유가작 자연관
2. 조지훈의 대표시 분석
3. 중국 대표 불교적인 현대시 분석
Ⅲ. 결론
Ⅳ. 참고문헌
Ⅰ. 서론
조지훈의 시세계가 불교 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은 조지훈「僧舞」를 비롯한 초기 시 몇 편과 혜화전문학교를 나온 전기적 사실로 인해 형성되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조지훈 기에 관한 초창기 연구를 제외하면 불교와 관련지어 조지훈의 시세계를 밝히는 연구는 그다지 친척되어 오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조지훈의 시세계에 불교적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반영되거나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초기 시중에는 「僧舞」처럼 불교와 관련이 깊은 소재를 활용한 시들이 눈에 띄지만, 그런 작품들에 불교적 세계관이나 상상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훈의 시를 불교와 관련해서 읽은 선행연구들이 옃 편의 시를 대상으로 논의를 한정하거나, 소재적 차원에서불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그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세계가 불교적 상상력과 조지훈 시와의 관련성이 내밀하게 숨겨진 채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 관련성을 밝히는 작업은 좀 더 치밀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같은 동양 나라인 중국도 분명히 불교적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마찬가지로 유교사상하고 도가사상 많이 받는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완전한 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글에서 현대시를 통해 불교사상은 어떨게 따르게 반는 것인지 살펴 보도록 할겠다.
Ⅱ. 본론
1. 동아시아의 전통적 자연과 표현
⑴ 불교적 자연관
전통적인 유교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난 조지훈은 혜화전문학교에 다니면서 불교 사상을 접하게 되고, 1941년에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 불교전문 강원의 외전강사로 가게 되었다. 시인은 월정사 시기에 창작한 시작품 중에는 불교적 선의 사상에서 나온 내용이 번번이 발견되고, 선적 자연관에 스며든 작품이 상당히 많았다.
1946년에 출판된 「鹿集」에 처음 추록된 시 「古寺1」는 자연의 관조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보는 시각에 따라 자연 관조의 시 또는 선시로 파악될 수 있다. 그것은 이 시가 서경적인 면과 더불어 내면적인 상념(想念)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한 편의 동양화를 그리듯이 절제된 언어, 민요적 리듬으로 오래된 절의 해질 무렵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西域 萬里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고 한 시구는 동양적 자연관에 대한 지식 없이는 표현 불가능한 묘미를 가지고 있다. 西域 萬里ㅅ길은 극락정토로 통한다. 저녁노을은 극락세계가 있는 서녘에서 눈부시게 물들었다. 노을 아래 찬란하게 피는 모란꽃이 졌다고 해서 찬란함이 극치를 넘어서 다시 적멸로 귀환하는 열반(涅槃)의 겨지를 드러냈다. 이것은 또한 고사안의 정(靜)적 분위기와 호응을 이루었다.
西域 萬里ㅅ길을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지는시 속에 끌어온 것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 부처님의 웃음이다. 시의 형식적 구성을 살펴보면, 이 연이 전시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의미적 구성으로 파악하면 시의 핵심적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웃음은 선적 관조(觀照)의 결과, 즉 불법의 깨달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선의 기원을 말해주는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화두와 일치한다. 이러한 웃음으로 상징된 깨달음이 말로 표현될 수 없지만, 극락세계를 보는 심안(心眼)을 열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