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서의 칸트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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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업에서의 칸트 이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칸 트 -
Ⅰ. 이 론 개 관
1. 덕과 선의지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이 세계 안에서, 아니 그 밖에서조차 우리가 무제한적으로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Good will)뿐이다." 선의지는 어떤 상황에서는 선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악하며, 우연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원한다면 선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악한 그런 것이 아니다. 선의지의 선함은 어떤 맥락이나 목적이나 욕구 등과의 관련에 의해서 조건 지어지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선의지는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으로 선하다.
칸트에 따르면 무조건적인 선은 쾌락과 같은 결과적인 상태또는 법칙에 일치하는 구체적이고 원자적인 행위들의 수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인간 행위들의 기초가 되는 인격의 상태이다. 인격은 설정되고 나서 실현되어야 할 목적이 아니라 모든 주관적 목적들을 제약하는 최상의 조건이며, 오히려 목적 설정의 주체로서 독립적이고 자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다. 즉, 목적 자체이다. 그러므로 인격은 객관적 목적으로서 도덕법칙의 근거일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의 서열에서 최상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윤리학의 순수 실천이성의 목적들의 체계로 정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향유할 수 없는 것을 또는 허용되지 않은 것을 삼가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그리고 본능적 욕구와 욕망을 삼사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절제하는 삶의 방식으로 기꺼이 삶을 살아가겠다는 굳은 용기이다." ( - 칸트, [칸트의 교육학 강의] )
내 의지가 선한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할 때, 우리는 행위자의 의도의 불투명성 때문에 이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특정한 지식, 즉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는 결코 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없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사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어떤 측면에서는 도덕적으로 선하고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는 도덕적으로 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의 견해도 이와 유사하다. 한 사람이 한 순간에 선한 의지를 보여주고 다음 순간에 약한 의지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칸트의 견해에도 인격의 확고부동함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의지만이 무조건적으로 선하다라는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그의 윤리학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이다. 그렇다면 선의지와 덕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칸트는 덕론에서 도덕적 의지에 반해하는 힘, 즉 충동과 경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덕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덕이란 자기 강제일 뿐만 아니라, 내적인 자유의 원리에 따른 자기 강제, 즉 그 원리가 갖는 필연성의 표상을 통안 자기 강제라고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즉 목적과 관련해서 본다면 주관적인 목적을 객관적 목적에 의해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자유로운 의지의 실질적 자기 규정에 요구되며, 이러한 요구에 상응하려는 능력이 바로 덕인 것이다.
칸트의 덕스러운 행위자는 도덕법칙에 반하는 충동과 경향성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그렇게 행위하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용기는 의지의 힘이다. 하지만 이 용기는 우리가 획득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의지가 아니다. 오히려 이 용기는 경향성을 통제하고 목적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하는 의지이다.
따라서 선의지는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의 동기로부터 꾸준하게 행위 하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이성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의지는 갈등의 영속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분명 어떤 의지들은 다른 것보다 더 낫다. 하지만 오로지 신성한 의지만이 절대적으로 선한 의지를 소유한다. 신성한 의지란 이성에 반할 수 있는 어떤 욕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 따라서 어떤 악의적인 것도 행할 수 없는 존재가 소유한 의지이다. 그렇다면 최상의 단계에 있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도덕성은 여전히 덕일 뿐이다. 인간의 의지 내에 있는 기본적인 갈등 또는 긴장 때문에 덕은 선의지에 접근해 있을 뿐이다. 즉 자연적인 경향성 때문에 인간의 덕은 선의지에 완전하게 일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덕스러운 행위자는 다른 동기들로부터 행위하도록 우리를 유혹시킬 수 있는 자연적인 경향성의 출현을 여전히 느끼지만,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지속적으로 행위하는 선의지에 근접해 있는 사람인 것이다.
2. 준칙과 도덕법칙
칸트는 준칙을 의지의 주관적인 원리라고 아주 간결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준칙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구체적인 행위자에 의해 채택되는 행위 원리임을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원리는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준칙은 행위가 자신의 의도와 흥미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위의 결과로부터가 아니라 행위자의 준칙으로부터 도출된다. 그리고 이 준칙은 그것이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법칙을 준수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법칙을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타당한, 객관적 원리요,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원칙, 즉 명법’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한 개인 차원에서 혹은 한 민족이나 국가 차원에서는 채택될 수 있으나, 전체 인류 차원에서는 채택될 수 없는 행위 규칙은 도덕법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체 인류 차원에서 채택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지구상에 살아 있는 60억 인구가 채택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인간이 채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체 인류 차원에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인간의 이성(실천이성)의 관점에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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