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위대한 개츠비

 1  인문과학 위대한 개츠비-1
 2  인문과학 위대한 개츠비-2
 3  인문과학 위대한 개츠비-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인문과학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위대한 개츠비
우선 영미문학 시간을 통해 본 작품중에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상류층 사회의 파티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보이기도했고 또 부자가되서 온 개츠비를 보면서 내가 다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작품을 다 보고 나서는 그 어느작품보다도 비극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는 바람을 피면서도 데이지의 외도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는, 마침내 개츠비를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 톰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을 알면서도 또 다시 돌아서는 데이지의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면서 개츠비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슬펐던 것은 개츠비의 파티에는 초대받지도 않은 사람들이 와서 즐겼으면서 정작 그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왜 위대한개츠비일까? 나는 이것이 개츠비의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데이지만을 위해서 성공을 이루고 데이지의 죄까지 뒤짚어쓰려한 개츠비의 사랑말이다. 나는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 개츠비가 가장 용기있고 온전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톰의 데이지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기보다는 개츠비에게 데이지를 데이지를 뺏기고 싶지 않은 소유욕같았다. 또, 그의 애인도 그저 자신이 마음대로 다루고 싶은 장난감일뿐 사랑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데이지역시 개츠비에 대해서 온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결국 그녀가 톰과 함께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데이지의 사랑이 너무나 나약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 틈에서도 데이지를 생각하고 데이지를 지키려 애쓰는 개츠비의 모습, 또 마지막에 손에 단추를 쥐는 개츠비의 모습에서 개츠비의 애처로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위대한이라는 말을 쓴 것은 아마도 가장 용기있고 절실했던 개츠비의 사랑을 표현한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은것, 그가 그토록 바랬던 그의 꿈이었던 데이지마저 결국 잃은것 등 너무나 허망한 삶을 살아간 개츠비에 대해 오히려 위대했다고 말하는 개츠비에 대한 작가의 연민은 아닌가 생각된다.
또 상류사회의 일원이면서도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 데이지의 삶이나 매일 파티를 열었음에도 쓸쓸한 장례식을 맞이했던 개츠비의 모습을 보면서 물질적인 것이 풍요롭게 있어도 어딘지 모르게 그들의 인생이 허무하고 외로워보였다.
-다른사람의 논평-
는 피츠제럴드를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게 한 그의 대표작이다. 세계의 문학평론가들에게서 “완벽하다”는 찬사를 쏟게 한 이 작품의 위대성은 아직도 이 작품이 현대성을 아우르는 고전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가 저주하던 땅의 부도덕은 이제 세상을 온통 악으로 물들이고 있다. 1920년대 미국사회를 신랄하게 들어내고 있는 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오늘날 미국의 도덕적 타락을 적확하게 예고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터무니없는 환상을 쫒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를 이루고 마는 개츠비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전, 자신의 영화와 안일을 위해 인간의 기본을 너무도 쉽게 저버리는 데이지의 되풀이되는 배신, 부도덕한 부유층 인간의 전형 톰, 불의와 적당히 거래하고 이득을 취한 뒤 물러갈 때를 재빨리 알아채는 조던, 불의를 목격하고서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지만 결코 잊지 않는 나약한 지성인의 표본 닉 -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피츠제랄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현대인의 분열된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가 몸담았던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풍미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 작중 인물들을 통해 까발리고 있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로 지칭되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의 지식층과 젊은 예술인들은 1920년대말을 휩쓴 경제적 대공황에 절망하여 부패가 만연한 미대륙을 떠나 유럽을 갈망하면서 허황된 환상에 젖어 쾌락과 방탕을 쫒았다. 피츠제럴드는 바로 그 시대를 그들과 닮은꼴로 살아가면서 그가 만난 도덕적 마비 상태의 인간상들에 대한 허무와 환멸을 이 소설을 통해 익숙하게 재현해낸 것으로 보인다.
절망 속에서 찾아낸 희망의 끝자락을 완강하게 붙잡고 비현실적인 도약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낭만적 이상주의 - 결국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야망의 화신이 보여주는 참담한 도전 - 그 비극적 몸부림은 황금지향의 달관에 길들어가는 현대인의 정신세계에 일종의 신선한 파격을 보여주었다. 초라한 중서부인 개츠비의 동부에 대한 환상은 잃어버린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미국인의 근성이면서 가장 미국적인 도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이상은 결국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도전으로 완성되며, 그 정점에서 예외 없이 추락하는 속성을 지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츠비의 영혼에는 실패라는 가정이 없다. 가장 진지하지 못했던 시대에 치열하게 진지함을 추구한 어리석은 한 인간의 순수와 파멸을 피츠제랄드는 거의 완벽한 매혹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개츠비에 치중한 나머지 데이지와 조던을 전형적인 상류사회의 악역으로 도식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절묘한 묘사와 정교한 구성은 자칫 진부할만도 한 미국적 러브스토리를 세계문학 교본으로 자리잡게 했을 뿐 아니라 연극, 무용, 오페라,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 각광을 받게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와 함께 20세기에 영어로 쓰여진 가장 위대한 문학으로 칭송받는 를 빼놓고는 미국 현대소설을 말할 수 없다고 문학자들이 입을 모을 만도 하다.
사후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해마다 미국내에서만도 30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이 소설의 마력은 좀처럼 식을 것 같지 않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위대한 개츠비|작성자 pinkch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