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

 1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1
 2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2
 3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3
 4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4
 5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5
 6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6
 7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7
 8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8
 9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9
 10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10
 11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11
 12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1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Post modernism과 상생철학 시대의 종교 이해
들어가면서
어떠한 사상에는 그 사상의 축을 형성하는 철학이 있으며, 이러한 철학과 사상이 인생의 삶과 어우러지며 종교를 형성한다고 본다. 역사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대상과의 긴밀한 대화(인간의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양식을 동원한)를 종교 행위로 본다면 이에 시대마다 각각의 색을 갖는 사상의 흐름을 읽으며 종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한 가치관의 형성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이에 먼저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향을 준 철학의 형성과 종교 신학의 유형과 내용, 그리고 오늘날의 과제 등에 대해 고찰이 요청된다.
철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나는 구성적인 철학적 사유의 형성이요, 또 다른 하나는 해체적인 철학적 사유의 짜임이다. 구성적 사유는 더하기의 방향으로 철학의 생각과 방법을 전개시켜 나가고, 해체적 사유는 빼기의 방향으로 철학한다. 더하기의 방향이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진리에 이르기 위하여 그 진리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비축하고 저장하고 적립해 나아가는 생각의 흐름을 말한다. 해체적 사유는 빼기의 방향으로 철학을 짜나간다. 이 빼기의 철학은 궁극적 진리, 존재하는 진리를 위하여 우리가 스스로 모으고 집중하고 더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허무주의는 아니다. 허무주의란 더하기의 철학, 모으기의 철학이 옳은데, 무엇을 위하여 비축, 저장하고 모을 것을 찾지 못할 대 생기는 안타까움의 심리와 멀지 않다. 빼기의 철학은 의미의 쌓아둠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시켜 나간다. 배기의 철학은 모으지 않으면서 흩뿌리려하고,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서 초점을 흐려 하나하나에 고착되지 않으려하고, 공자 왈, 예수 왈 처럼 지존의 스승님 말씀을 받아 모시려하지 않는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생각보다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다는 생각을 더 좋아하고, 진리를 위하여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일직선상에서 매진하기보다 하나에로 중심 모으기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 상반된 것을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모순투쟁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다르기 때문에 동거가 가능한 그런 이중성을 흩뿌림의 철학은 보여준다.
노장사상이 여기에 해당하고 데리다를 위시한 현대 해체주의의 철학이 사고의 결정체를 파괴시키고 있다. 데리다를 통하여 우리는 불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혜시와 같은 이른바 명가의 사유체계를 다시 해독할 수 있다. 데리다의 철학은 초과적 사유의 본질 즉 역사와 현실의 제한적 사고에 집중해 온 모더니티에(modernity)에 대한 반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그를 post-modernity의 으뜸으로 본다. 그의 철학은 21세기의 문턱에 선 오늘날 21세기를 여는 신사고 중의 하나다.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종교의 신학의 탄생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서구 종교다원주의 논쟁의 전제와 모든 신학적 논쟁은 정치, 사회적 역학 관계를 파악하고, 어떤 진공 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 쟁점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성도, 종교다원주의와 구원
중세 이래로 Karl Barth에 이르기까지 강한 배타주의(exclusivism)가 있었다. 교회중심주의적 배타주의와 기독론적 배타주의가 지배적 입장인 한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자기기만 없이는 이 같은 배타주의에 안일할 수 없었다. John Hick이 말하는 소위 “종교 신학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커스적 전환”- 정당한 다종교의 인식 - 이후에는 나사렛 예수에 대한 배타적 종국성 주장은 위기에 부딪히게 되었다. 아직도 대다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종교 신학적으로 코페르니커스 이전에 살고 있지만, 그것은 지성의 태만이 아니고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예수만이 구원의 배타적 길이라면,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 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아니 신학적 질문 이전에, 종교가 다른 나의 집안 식구들, 그리고 나 자신의 과거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같은 질문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다. 이성이란 본래 타자(대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 신학은 타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할 것인가 하는 선교적 과제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인 나 자신을 이 시대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실존적 질문에도 관계된다.
종교 신학의 유형 분석
몇몇 다른 시각이 있으나 궁극적으로 공통 유형의 분류를 말하고 있다. 이에 학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본다.
*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태도를 분류하는 방식도 지금까지는 매우 다양해 왔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분류 방식에 있어서 대체로 1983년에 발표한 Alan Race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국성 이해를 기준으로 하여, 배타주의, 포괄주의, 그리고 다원주의 셋으로 종교 신학의 형태를 분류했다. 홍정수, 다원종교 시대와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