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정 - 정과정이 문학작품으로서 생명력이 강했던 이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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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과정 - 정과정이 문학작품으로서 생명력이 강했던 이유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민의 노래, 정과정
- 정과정이 문학작품으로서 생명력이 강했던 이유에 관하여 -
Ⅰ. 줄거리
화자는 현재 임과 이별해 있는 상황인데, 아마 여성이라고 보는 것이 무난할 듯하다. 당대 관념상 남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임’이 임금이라면 오히려 남자화자를 설정하는 것이 더 격이 있는 작품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이다. 이른바 고려시대 귀족계층으로서 정치계에 진출한 남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사랑에 대한 감정 표현은 사회적으로 꺼려졌었다. 하지만 사랑은 인류보편적인 본능이고 어느 때든 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임금으로 투영되어 자연스럽게 여성에게 말하는 듯이 쓴 이 작품이 작가에게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윤리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을 토로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정과정 속의 화자는 임을 그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산 접동새와 잔월효성의 자연물까지 끌어들이면서 애끊는 감정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임이 함께 하자고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임이 다시 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 임이 나를 보지 않아 버리게 된 이유가 된 그 사실은 없었던 일이라고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Ⅱ. 주제
누명을 쓰고 임에게서 멀어진 억울함과 그 임이 다시 바라봐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Ⅲ. 기존 연구 검토
1. 정서는 왜 20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보냈는가?
- 생애와 시대배경에 관한 고찰 -
문학작품의 해석이 작가론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질 때 작가가 역사속의 인물이라면 그의 가족사나 인물됨에 대해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정과정은 정서가 유배지에 있을 때 지어진 것으로서 그 창작 배경이 작가의 생애와 밀접한 관련이 되므로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서의 생애에 대한 연구는 『鄭瓜亭의 綜合的 새 硏究』 李勝明, 『鄭瓜亭의 綜合的 새 硏究』, 이회문화사, 2003
의 2. 정서의 가계 생애 부분에서 다뤄지면서, 정과정을 창작하게 된 배경과 연관지어져 있으므로 이 책을 참고 하기로 한다.
정서는 고려시대 예종, 인종, 의종, 명종 등 4대에 걸쳐 산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음서제로 관직에 진출한 정서는 차차 벼슬이 높아져 의종대에는 내시랑중(內侍郞中)의 벼슬에 이르렀고, 동래와 거제로 유배를 당했다가 명종 원년(1170 A.D)에 대사령에 의해 복귀되었다. 책에는 정서의 20년에 걸친 오랜 적지 생활이 어디서 비롯되는 지에 대해서 ‘공예태후가 대령후 경을 편애하는 데 동조한 것이 미움의 싹이 되었을 것이다.’ 라는 견해가 소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大寧侯傳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아들은 敍이니 大寧侯 暻과 교결하여 항상 함께 놀고 희롱하므로 鄭 金存中 등이 서의 죄를 거짓 얽어서 아뢰어 의종이 의심하는데 대간이 서가 가만히 종실과 결탁하여 밤에 모여 주연을 한다고 탄핵하므로 이에 동래에 귀양 보냈다” 결국 정서는 의종과 그를 둘러싼 김존중, 정함 등의 참소로 내쫓김을 당하고 그 후 동래로 거제로 20년이라는 유배 생활을 맞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 언제, 어디서 지어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