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누가 쓰는가 -연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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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시는 누가 쓰는가?
-연혁인창-
1.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한국어의 관형격 조사 ‘의’의 본래 기능은 체언에 붙어서 그 체언을 관형어, 즉 체언을 수식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의’는 문맥에 따라서 주어, 목적어, 동격, 소유격 등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가령, ‘나의 살던 고향은’의 ‘의’는 주어 노릇을 하고, ‘물질의 축적’의 ‘의’는 목적어 기능을 한다. ‘아버지의 책’ 같은 경우에는 더 복잡하다. 이때의 ‘의’는 ‘아버지께서 쓰신~’, ‘아버지께서 소유한~’, ‘아버지를 다룬~’ 등으로 모호하게 나타난다.
근래 서유구(徐有, 1764~1845)를 다룬 책들이 심심찮게 출간되고 있다. 교육과정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나 알아보려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서유구와 관련된 부분을 찾아봤다. 아래와 같이 두 번 언급된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이 발달하고 문화 인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백과 사전류의 저서가 많이 편찬되었다. 이 방면의 효시가 된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며, 그 뒤를 이어 18, 19세기에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이 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국사》, 교학사, 2007, p.305.
… 박세당은 색경을, 홍만선은 산림경제를, 서호수는 해동농서를 저술하여 농업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세기에 서유구는 농업과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종합하여 임원경제지라는 농촌 생활 백과 사전을 편찬하였다. 위의 책, p.308.
두 곳 모두 《林園經濟志》 때문이다. ‘서유구의 《林園經濟志》’,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책 제목을 풀어보자. ‘林園’은 도시가 아닌 전원, 곧 농촌이고 ‘經濟’란 물질적 생활의 영위다. 쉽게 말해 농촌에서 양반이 물질적 생활을 구가하는 방법이란 뜻이다. 양반이 시골에서 자족적인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윤리적인 문제를 묻는 것이 아니다. 오직 생활에서 물질적 삶의 방법을 물은 것이다.
《林園經濟志》는 113권 52책에 달하는 巨帙인 만큼 그 내용도 아주 종합적이다. 개괄적인 면만 훑어보자. 田制, 水利, 土壤, 節候, 開墾, 肥料, 種子, 播種, 각종 곡물 종류, 농기구, 灌漑에 걸쳐 곡물을 중심으로 한 농업 일반에 대한 서술[本利志, 권1~13], 채소 가꾸기[灌畦志, 권14~17], 꽃 재배[藝志, 권18~22], 31종의 과일과 15종의 瓜類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저장하는 방법[晩學志, 권23~27], 뽕나무를 심고 기르고 비단을 짜고 염색하는 방법[展功志, 권28~32], 날씨와 절후[魏鮮志, 권33~36], 목축·사냥·어업에 관련된 지식[佃漁志, 권37~40], 요리법과 조미료를 만들고 술 담그는 법[鼎俎志, 권41~47], 건축 및 가재 도구, 말이나 가마, 배 등의 운송 수단에 대한 지식[贍用志, 권48~51], 식이요법과 단전호흡 같은 여러 가지 보양법(保養法)[養志, 권52~59], 醫藥[仁濟志, 권60~87], 冠婚喪祭 및 鄕飮酒禮·鄕射禮·鄕約[鄕禮志, 권88~90], 독서법·활 쏘는 법·서예·그림 그리는 법, 거문고· 양금·생황을 뜯고 치고 부는 법[遊藝志, 권91~98], 품위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한 여러 도구, 예컨대 문방구, 茶具, 서화 골동품, 藏書, 나들이할 때 쓰는 도구 등[怡雲志, 권99~106], 살 터전을 마련하는 방법[相宅志, 권107∼108], 조선 전체의 경제[倪圭志, 권109~113] ….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문화, 취미 생활까지 망라되어 있다.
서유구는 이 방대한 내용을 18년에 걸쳐, 자신보다 먼저 서른세 살에 요절한 외아들 徐宇輔(1794~1827)와 단 둘이서 완성한다. 그 과정도 잠시 톺아보자. 서유구의 집안은 宣祖朝(1567∼1608) 이래 손꼽히는 京華世族이요 名門閥閱이었다. 특히 서유구는 ‘가문의 영광’이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에 청년기를 보내며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 집안의 면면을 보자. 양관 대제학을 지낸 徐命膺(1716~1787)이 그의 할아버지다. 15살이던 1779년 그는 조부를 시봉하면서 농학서 《本史》의 집필을 돕기도 한다. 또, 도승지·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위의 국사 교과서가 언급한 《해동농서》를 저술한 徐浩修(1736~1799)가 그의 아버지다. 영의정을 지낸 徐命善(1728~1791, 서명응의 친동생)이 작은할아버지고, 이조참판과 경기관찰사를 지낸 徐瀅修(1749~1824, 서명응의 둘째 아들)가 그의 叔父였다. 명문가의 총명한 젊은이 서유구와 피를 나누고 그의 곁에서 그의 성장을 돕던 이들은 당대 최고의 敎授陣이기도 했다. 조부 서명응은 이 당시 천문학과 농학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최고의 학자였으며, 서호수 역시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 기하학에 정통한 사람이었고, 숙부 서형수도 명물고증학과 경학에서 최고의 학자였다. 그러니 서유구의 가문은 지방의 향교나 사원, 서울의 성균관도 따라오지 못할 당대 최고의 아카데미였던 셈이다. 특히 이 가문은 18세기 후반 베이징에서 발원한 새로운 학문을 앞서 수용하고 체화했으며 집안에 8천권이 넘는 장서를 갖추고 있었다. 서유구는 이런 환경 속에서 훈육 받았다.
서유구는 10대 후반(1779년) 蓉州(지금의 서울 용산)에서 조부를 侍奉할 때 이미 자신만의 書齋이자 藏書庫인 ‘楓石庵書屋’을 갖고 있었고 《鼓集》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이 되던 1790년 文科에 합격해서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규장각 대교, 예문관 검열 들을 거치며 정조의 신임을 얻고 출세의 탄탄대로를 달린다. 그러나 1805년(순조 5년) ‘김달순의 옥사’로 가문은 일시에 몰락하게 되고, 1806년 서유구 역시 홍문관 부제학을 자진 사퇴하고 기약 없는 은거에 들어간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1824년에야 자신의 벗이었던 남공철의 주선으로 회양부사가 되면서 다시 관료 생활을 하면서 6조판서, 규장각과 예문관의 제학, 대사헌 등을 거치다 致仕한 후 세상을 떠난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은거한 18년 동안의 서유구 행적이다. 바로 이때 《林園經濟志》가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에서 자발적 은퇴를 한 사대부가 할 일은 학문 외에는 없었다. 가문이 구축한 방대한 장서를 기반으로 《林園經濟志》를 쓰는 것이 생의 소업이 됐다. 매일매일 오직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방대한 장서를 읽어나가면서 자신이 구상한 《林園經濟志》의 구도에 따라 자료를 선택하고 분류하고 베껴 썼다. 축출된 지 18년 만에 조정으로 돌아와서도, 이 작업은 그치지 않았다. 1827년이 되어서야 겨우 일단락이 됐지만, 그 이후에도 보완 작업은 계속됐다. 그의 평생이 소모된 것이다. 그 결과 대충 잡아도 1만 4000쪽에 달하는, 113권 52책의 《林園經濟志》가 완성됐다. 이 장은 강명관의 ,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푸른역사, 2007, pp312~331), 안대회의 《산수간에 집을 짓고》(돌베개, 2005), 한정주의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다산초당, 2007)에서 발췌·인용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정체에는 좀 묘한 데가 있다. 《林園經濟志》는 주로 당시로서는 最新刊이 대량 포함된, 중국에서 수입한 893종의 책에서 골라 뽑은 자료로 구성되었다. 비율로 보자면 거의 무시해도 될 만큼 적은 분량의 코멘트를 제외하면 오로지 인용으로만 이루어진, 체계적으로 분류한 ‘베끼기’와 ‘짜깁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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