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필문학] 고려이전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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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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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신라 시대 상황
1. 육두품 지식인의 유래
2. 적성비와 순수비(비지류)
3. 국내외의 정치문서 (서간류)
4. 불교사와 문학사(비평류, 기행류)
5. 신문왕과 육두품 문신(주의류)
6. 신라의 전성기
7. 말기의 상황과 당나라 유학자들(서간류, 송찬류)

Ⅱ. 김후직의 상진평왕서(上眞平王書)
1. 작가소개
2. 작품 관련 시대상황
3. 김후직(金后稷)의 묘(경북기념물 31호 : 경주 간묘)
4.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김후직

Ⅲ. 석혜초의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
1. 작가 소개
2. 시대적 배경
3. 『왕오천축국전』의 내용과 성격
4. 작품감상

Ⅳ. 최치원의 격황소서(檄黃巢書)
1. 작가 소개
2. 시대적 배경
3. 작품 요약
4. 작품 배경
5. 작품의 이해와 감상

Ⅴ. 최치원의 한식제진망장사(寒食祭陣亡將士)
1. 작품요약

Ⅵ. 의 비문

Ⅶ. 원효의

Ⅷ. 설총의

Ⅸ. 단양의 신라 적성비문(新羅 赤城碑文)
1. 금석문과 금석학
2. 단양신라적성비

Ⅹ. 화랑세기(花郞世紀)
1. 작가 소개
2. 작품 소개
3. 작품 감상

Ⅺ. 성덕대왕신종명문(聖德大王神鍾銘文)
1. 신라의 전성기
2.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銘文)
본문내용
< 한국수필문학> 고려 이전의 수필
Ⅰ. 신라 시대 상황.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 지식산업사, 2004.


1. 육두품 지식인의 유래
신라는 한문을 글로 채택하는 데서도 삼국 가운데 가장 늦었는데, 3세기에 이르자 주목할 만한 변화를 나타냈다. 251년(첨해왕 5)에, 집이 곤궁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공(工)․서(書)․산(算)을 잘하는 부도라는 사람을 등용해 아찬을 삼아 물품 보관하는 창고의 일을 맡겼다고 한다. 아찬은 성골이나 진골이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이다. 지체가 낮아도 글씨를 쓰고 계산을 할 줄 아는 기능을 가진 그런 인재를 등용할 필요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데서 한문 구사력을 밑천으로 진출한 육두품 지식인의 유래를 볼 수 있다.

2. 적성비와 순수비(비지류)
고구려는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입장에서 신라를 복속시켰다. 그러나 신라가 언제까지나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고구려의 중원비보다 앞서 발견된 이른바 신라 (赤城碑)가 또한 주목된다. 그 내용은 신라가 죽령을 넘어서 북쪽으로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지방 토착세력 지배자의 공적을 표창하면서 그처럼 신라에 충성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진흥왕은 그뒤 신라의 영토를 크게 넓히면서 네 곳에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다. 561년(왕 22)에는 (昌寧碑)를, 568년(왕 29)에는 (摩雲嶺碑)와 (黃草嶺碑)를 세웠으며, (北漢山碑)를 세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역시 그 무렵이 아닌가 한다. 이중 에서는 신라를 다스리는 제왕이 천하의 중심을 장악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룩한다는 세계관을 품격 높은 문장을 통해 볼 수 있다.

3. 국내외의 정치문서 (서간류)
삼국은 서로 긴밀한 관련을 맺고, 각기 중국 및 일본과의 교섭도 전개했다. 그렇게 하는 데 한문으로 된 국서가 반드시 필요했다. 국서는 외교상의 용건을 전할 뿐 아니라,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는 구실까지 했다. 비문으로 나라의 위업을 알리는 글은 나라 안 관민에게 보이기 위해서 쓴 것이므로 구태여 기존의 격식에 구애될 필요가 없었으나, 외교를 위한 국서는 이미 인정되고 있는 공동의 규범을 따라야만 했으므로 글의 체제나 품격이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참고문헌
김대문, 이종욱 역, 「화랑세기」, 소나무, 1999
, 조기영 역, 「화랑세기」, 장락, 1997
고병익, 「혜초의 길따라」, 1984, 동아일보사
원효, 은정희 역,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일지사, 2000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제1권, 1982, 지식산업사
정병삼, 「의상 화엄사상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2004,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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