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채봉감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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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연애소설 한번 읽어보지 않은 여학생이 있을까? 책방 한 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속칭 ‘로맨스 소설’ 류의 조금은 유치하고 뻔한 내용의 소설의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에 공부하느라 빼앗겼다고 생각되었던 청춘의 씨앗을 그렇게 키워나간 여고생들이 아마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런 ‘로맨스 소설’이 아니더라도 아직도 많이 읽혀지는 여러 통속소설들도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너무나 작위적인 설정에 엉성하고 조금은 유치한 내용구조, 그리고 뻔한 결말까지, 정식 소설이라고는 뭔가 인정하기 곤란한 이런 소설들은 그러한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 그것은 그런 통속소설들이 그 시대의 사회 모습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진솔하고 솔직한 면모를 여과 없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같은 통속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작품마다 중점을 두는 점이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가 지난 한 학기 동안 독서시험을 위해 읽었던 소설들 가운데서 을 가장 재밌게 읽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전에 읽었던 독서 목록의 고전들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던 소설.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기억되는 거의 유일한 고전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느 고전소설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번 에세이를 통해서 에 나타난 통속소설로써의 다분한 성향과 그 안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로 떠오른 ‘채봉’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열린 형식을 빌려 자유롭게 생각을 풀어나갈 수 있어, 나의 미숙함을 형식의 자유로움에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부담이 가신다.
은 작품의 구성, 인물, 문체 등이 신소설과 유사하다고 보여지기는 하나, 작품 내의 구조가 전대의 소설의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고 근대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고소설의 연속성을 인정하면서 19세기 개화기에 창작된 고전소설로 보고 있다. 金美京, 「彩鳳感別曲」의 通俗性과 主題, 慶北大學校 敎育大學院, 1992
작자는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작품에 나타나는 여러 사항들이 창작되었으리라고 짐작되는 시기를 가늠케 하고 있다. 미루어보건대 이 작품은 19세기, 즉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시대적으로 볼 때, 이 시대는 사회체제가 시장경제, 화폐경제의 질서로 정착되어 가는 시기이다. 경제질서가 이전과 바뀌게 되면서 예술 전반은 물론, 서책의 상품화 또한 이루어졌고, 조선의 신분제도가 붕괴되면서 교육열이 강화되어 교육서적과 더불어 일반서적에까지 독서열이 고조되어 서적의 상품화를 가속시켰다. 金重河, 開化小說의 文學社會學的 硏究, 경대 박사논문, 1985, pp.24-25
이러한 사회적 기반을 바탕으로 폭넓은 독자층이 형성되었고, 기존의 필사본과 방각본으로 출판하는 것조차 식상해진 독자층의 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들이 판소리 개작소설, 중국소설의 번역, 번안작, 역사소설, 그리고 신작 등이다. 도 이 때에 쓰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살펴본 바와 같이 독서열풍과 함께 등장한 상품성 있는 소설들은, 그 등장하게 된 배경에 충실하기 위해 독자들, 즉 대중들의 입맛에 꼭 맞는 소설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란 그야말로 대중적인 성향이 다분하고 역시 출신성분에 맞게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요소가 작품 속속에 체화 되어 있다.
그 요소들을 꼽아보면 우선 전대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비일상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있다. 이것은 이 전의 소설, 그러니까 , , 등의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이고 특이한 소재의 소설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어쩌면 실제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전의 소설 경향과는 다분히 차별성이 있는 것으로 서민의 의식이 성장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민의 의식이 성장하면서 현실적인 경험에 의한 일상적인 사건들을, 기이한 공간적인 배경의 개입 없이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그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남녀간의 애정사를, 신분을 뛰어넘고 급기야 하강하는 지경에 이르면서라도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 중요하게 문제 삼은 점이다. 이것은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더 이상 쉬쉬하면서 몰래 감추고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하나 하나의 개성과 감정을 인정하게 된 당시의 시대적 풍토를 여실히 보여주는 점이라 하겠다. 남녀간의 애정문제는 이제 신분을 뛰어넘어(이미 해체되어 가고 있지만) 하나의 인간의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당시의 풍토에 밑바탕을 두어 쓰여졌기 때문에 글을 읽는 사람들의 흥미와 바람을 담을 수 있어 유행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秋風感別曲’이라는 가사가 삽입된 점이다. 이 가사의 삽입은 자못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선 이렇게 긴 가사가 소설 속에 삽입되어 제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채봉의 감정을 집약적으로, 그러나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한 ‘추풍감별곡’은 가사의 독자를 소설의 독자로 끌어들이려는 작가의 의도와 함께, 독자로 하여금 서사문학과 서정문학을 함께 섞어 놓은 작품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