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 감상문

 1  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 감상문-1
 2  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 감상문-2
 3  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 감상문-3
 4  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 감상문-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 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화 가타카와 운명에 대하여
운명(運命: 옮길 운, 목숨 명):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
또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길흉화복. 타고난 운수나 수명, 기수(氣數), 명운(命運).
운명의 한자적 풀이는 ‘목숨을 움직이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를 기대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내포하는 느낌을 준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원초적이고도 궁극적 경지이면서 인간 초유의 관심사인 죽음까지도 지배하는 힘이 과연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이라는 끈에 모르는 사이에 이끌려오는 것일까? 운명이 죽음까지 좌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은 과연 무엇이며 인간은 자유의지로 운명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운명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많은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
신의 아이 빈센트, 化로 다시 태어나다
주인공 빈센트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매개는 ‘변화’이다. 가타카의 주인공에게 ‘변화’는 단순한 상태나 현상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유전정보를 통째로 바꾸는, 혁신에 가까운 완전히 새로운 탄생이다. 빈센트의 化에는 목적의식이 있고, 목적을 향한 과정이 존재한다. 유전적 조작이 없이 자연상태로 태어나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빈센트는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알지만, 우주항공비행사라는 꿈을 계속 키워나간다. 그는 오로지 우주를 비행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행하려 한다. 우주비행사가 되기에 충분한 우수한 유전인자를 보유하고 있는 ‘제롬’이라는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빈센트는 수술까지 감행하며 고통을 견뎌낸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제롬이라는 우성인자로 거듭나기 전, 열성인자 그 자체였던 빈센트는 자칫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욕망을 포기하는 ‘낙타’의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날마다 낙타의 정신과 어느 정도 마주하며 살아간다. 순종이 곧 미덕이었던 전통적 사회관념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베어 들어 일종의 인습처럼 세대를 넘어 예(禮)의 한 덕목과도 같이 전해져 왔다. 기존의 사회적·문화적 가치에 불평없이 따르는 것이바람직한 도리이며 인성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 볼 때 낙타의 정신은 실제로 자신의 삶의 발전에 있어서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가치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은 더 큰 가치를 위해 나아갈 수 없고 자신의발전도 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목적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든, 부정적인 위험을 수반하든 일단은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빈센트가 자신의 유전정보를 바꾸며 갖은 노력을 한 끝에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과 삶 전체를 바꾸는 데에서, 변화가 새로운 진전을 생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서 운명에 순종하는 낙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창조해내는 어린아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제롬의 자살 = 죽음?
열성인자를 보유하고 있었던 빈센트에게 자신의 우성인자를 제공한 진짜 제롬은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유전적 조작으로 태어난 제롬의 자살을 꼭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제롬은 우성유전자만을 부여받고 태어난 조작된 인간이다. 제롬 자신이 말하듯이 그는 죽음조차 스스로 택할 수 없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어떤 면에서 보면 가엾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를 운명이라 한다면 제롬은 자기 힘으로는 죽음을 행할 수 없는 운명을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의 섭리에 따라 자연상태에서 태어난 빈센트가 제롬의 유전자를 받고 새로운 제롬으로 탄생함으로써, 원래의 제롬은 그러한 변화로 인한 힘을 갖게 된다. 化로 인한 생성의 에너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항상 2등의 자리만 고수하던 제롬을 대신해 빈센트가 제롬으로 인해 꿈을 이루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그제서야 제롬은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었던 절대적 운명에서 벗어나 그 자신이 죽음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게 되었기에 그의 죽음은 그의 존재가현세에서 사라진다는 죽음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는 새로운 가치의 ‘생성’과 ‘창조’ 행위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비로소 제롬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자유인이 된 것이다.
데카당스(Decadance) vs ‘가치의 전환’
우리는 종종 열악한 조건 속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간적인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양 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 밖에 없는 선천성 사지기형 장애를 앓으면서도 피나는 연습 끝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된 소녀가 있다. 그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전한 것이라며, 생명을 걸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을 해내면 다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신체적 장애라는 인생의 커다란 아픔을 겪으면서 비극에 묻혀버리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장애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경우도 있지만, 정상적인 신체를 갖고 태어나더라도 한 순간의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 한 순간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장애라는 한 사람의 인생의 문제에 있어 신체적인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면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동물이므로 생각이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 ‘가치의 전환’ 이다. 비극적인 현실적 상황 속에 압도되어 삶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일종의 데카당스(Decadence)에 빠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그 자체에 직면하여 삶을 최대한 긍정하는 가치의 전환을 통해 살아있음에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