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탄생 - 서평 - 북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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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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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북조선 탄생 서평
1. 내용 요약
「북조선 탄생」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 형성기, 즉 1945년 8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소련의 점령에서부터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시기까지 북한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적 변화 전반에 대한 연구 내용을 싣고 있다. 찰스 암스트롱은 이 시기 북한은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장이었으며 이 기간을 혁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이 시기의 리더십 정치가 아닌 북한 사회 전반의 모습을 골고루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를 통해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소련점령 당국의 지시로 만들어진 ‘외부로부터의 혁명’이라기보다 독특한 조선의 요소가 가미되어 토착화된 공산주의국가로 보았다.
1장에서는 1945년 이전, 특히 1930년대 조선 북부지방과 조중 국경에서 중국공산당 동북항일연군의 활동과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다. 동북항일연군에는 북한 권력을 장악한 김일성과 조선인 활동가들이 속해있었다. 이들은 1945년 이후 북한정치를 지배했고 그 결과 만주에서의 빨치산 경험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북한의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북한 지배층의 항일 유격대 경험은 각종 예술 장르로 형상화되어 선전되었으며 이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북한의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조선 북부의 특수성과 만주 망명시절에 형성된 사회주의의 미래상이 북한의 국가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만큼 이를 잘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지역은 조선과 중국의 주요 혁명적 민족주의자 분파들에게 반식민지 저항의 중심이 된 지역이었다. 1930년대 초 사회주의자들은 갑산지역에 농민에 기반을 둔 대중조직을 만들고 대중교육, 농업협동조합, 항일 민족주의를 강조하였고 이 시기 농민들은 빨치산 세력과 유대를 지속했다. 김일성의 주요 유격활동은 1934년부터 1940년 사이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동북항일연군과 함께한 것이다. 김일성의 항일 유격활동 시기 그의 리더십이나 역사적 역할은 과장되어 있지만 김일성이 만주 항일무장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만주 항일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을 이끌고 있다. 또한 만주 빨치산들은 동만주에 인민혁명정부를 세웠는데 토지개혁 첫째, 지주계급과 주구로부터 토지를 몰수하고 부농과 중농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함. 둘째, 노동력에 따라 재분배하며 항상 빈농의 이익을 고려함. 셋째, 여성에게도 토지를 분배하여 봉건적 잔재를 완전히 청산함, 넷째, 재분배 이후 잔여 토지는 소비에트가 관리함.
은 훗날 북한의 토지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항일 유격대의 경험들은 북한 정치문화의 전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는 북한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2장에서는 일본의 항복 직후인 1945~1946년 가을과 겨울 동안의 조선인 자치시기 및 소련 점령하에서 사실상 북한 정권이 등장하는 장면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소련은 민정부 수립 등 북한 수립에 일정한 배후 역할을 하였지만 점령 임무를 최소화하고 한국의 정치 조직 형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등 완벽한 조정자가 아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인정하였다. 중요한 것은 김일성이 소련의 선택으로 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945년 10월까지 김일성은 평양의 ‘모스크바 대리인’이 아니었으며 소련은 2차 대전 후에도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성립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하였고 지원 의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1945년 8월 소련의 북한 상륙이후 소련군은 북한 전역에서 통제력을 확보하였고 조선인들은 1945년 해방 이후 점령 당국 후원 하에 조선사회 질서 수립을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인민위원회를 성립하였다. 한편 소련은 1945년 10월에 소련 민정부를 설립하여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까지 북쪽에서 정부에 해당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소련 점령군은 북한 사회 전반이 아닌 외교, 무역, 친소적 리더십 유지 등만 통제하였고 소련 점령군하 제도화된 개혁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은 없었다.
해방 직후 조선 좌익은 공산주의 정당을 재건하였고 당의 성격은 정통 프롤레타리아트에 기초한 당에서 포괄적 성격의 대중정당으로 이동하였다. 북한 사회주의의 독특한 현상은 민족이 혁명의 본질적 주체로서 노동계급을 대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45년 11월 신의주사건의 발생은 당과 정권에 전환적 계기로 작용하였고 김일성은 정치적 변화가 위로부터 주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현지지도와 동시에 중앙 권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였다. 북한은 정부기구와 지배정당이 대응적으로 조직되는 이원적 당 국가 체제를 계획하였고 결국 1946년 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초가 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창설하였다.
3장에서는 1946년 봄과 여름 광범위하게 일어난 사회개혁의 실행에 대해 살펴보고 사회계층과 정체성의 문제 및 농민, 노동자, 청년, 여성 등 당과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새롭게 권력이 주어진 사회적 주체의 ‘해방’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저자는 북한의 개혁이 특권층으로부터 빼앗을 권력을 억눌렸던 계급층에 부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과거와 같은 불변의 계급 위계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또한 김일성과 북한 지도부가 빈농, 여성 및 청년계급을 포섭하고 조선로동당의 지도 하에 조직화 한 것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공산당의 풍부한 경험, 그리고 대중주의적, 민족주의적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조선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소외받은 계층의 지지층 확보를 위해 1946년 상반기 토지개혁, 노동법령 등 민주개혁을 시작하였으며 이는 범위와 속도에서 전례 없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토지개혁은 가장 중요한 사례로 북한 토지개혁안은 소련정부, 소련 점령당국, 북한 지도부, 민중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유혈사태 없이 빠르게 진행된 것이 특징인데 농업 집단화에 비해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정책이 갖는 상대적 온건성과 지주들에게 남한이라는 피난처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통해 친일세력과 지주계급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빈농들을 정치체제 안으로 규합하여 새로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