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학 - 고백록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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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조학 - 고백록 서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조학 - 고백록 서평
서론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진정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토해내는 그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독자의 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인 글의 전개방식은 시대 순으로 배열되어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만나게 되기까지를 나열하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적날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 11~13권은 창조론에 대해서 창세기 1장 말씀을 주석해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소개한다. 서론에서 고백록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소개한 뒤 각 권에서 배울 수 있었던 내용들을 본론에서 소개하고 내 삶에서의 적용점을 찾은 뒤 마무리하겠다.
어거스틴은 적지 않은 시간, 세속적 쾌락과 마니교 사상에 빠져있었지만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던 어머니의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죄를 토해내고 은혜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고백이 샘솟는 신앙고백이다. 어거스틴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본론
어거스틴이 고민하는 선과 악에 대해서 답을 찾아간다. 어거스틴은 악은 존재를 갖고 있지 않고 선이 부재할 때 생겨난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을 원인자로 삼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 부정 또는 결여다. 죄에는 어떤 유효한 원인도 상정할 수 없다 루이스 벌코프, 『벌코프 조직신학』, 권수경. 이상원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444.
하지만 악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은 주님께로부터 나오고 주님이 아니면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물은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 안에 있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못한다. 죄 또한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런 쾌락, 죄를 추구할 때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주님의 법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관하고 계신다. 그렇기에 죄악, 악령에 관한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성경, 사무엘상 16장 14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악 또한 존재하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엄연히 죄악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하나님께 반대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루이스 벌코프, 『벌코프 조직신학』, 권수경. 이상원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448.
어거스틴의 사춘기 시절, 정욕과 쾌락에 빠져서 학업을 내팽개치고 세상적인 것으로 만족 했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에 허락하신 시간이었다고 고백해야 한다.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였으나 훗날 주님이 나로 그렇게 하도록 하셨다는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더욱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17세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오류에 빠져든다. 그는 지식에 대한 열정으로 마니교에게 갔고 그들에게서 자신이 구하는 것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언제나 진리에 관하여 말하였고 자유로운 탐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모든 믿음을 맹신하라고 정죄하였다. 마니교의 영향으로 어거스틴이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해 쓰고 있던 렌즈는 안타깝게도 마니교의 잘못된 사상이 자리 잡은 교만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진리가 두드리고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어거스틴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한 껍데기를 먹고 실상은 배부르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주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어거스틴에게 주의 손을 펴사 그 영혼을 마니교의 깊은 흑암에서 끌어올리셨다. 즉 저 깊은 구덩이의 진흙과 허위의 흑암에서 뒹굴며 거기서 일어서려고 하면 더욱더 무겁게 곤두박질치던 9년 세월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붙잡은 것이다. 이는 주님 앞에서 쉬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던 어머니의 간절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어거스틴이 진리의 말씀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가지 않고 마니교의 오류에 빠져있을 때 고백했던 “주님 앞에서 길을 잃었고 다른 사람을 길 잃게 하였다”는 교육자의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교육자라면 왜 올바른 길을 가야 하는가? 지도자로서 잠시라도 잘못된 길을 가는 시간이 왜 아까운지, 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집중하며 항상 깨어서 반응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영혼이 주님을 향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슬픔에 빠진다. 그 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고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 분을 버리면 그 선한 것이 비통함으로 변한다.
주님은 지으신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으신다. 불의한 자는 제대로 심판을 당하기 위하여 주님을 대적하여 비틀거리며 주님의 인자하심을 피하여 달아나다가 주님의 공의와 부딪쳐 그 거친 길에 넘어진다. 하지만 이 불의한 자 또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 또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용하시겠다고 결정하셨다 유해무, 『개혁교의학, 송영으로서의 신학』,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7), 187-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