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교육 신화’ 교육 개혁을 방해하는 그릇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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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교육 신화’ 교육 개혁을 방해하는 그릇된 믿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교육 신화’
-교육 개혁을 방해하는 그릇된 믿음-
1. 서론
흔히 인류의 역사를 논할 때 그 국가, 인종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는다.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는 우리들의 실질적인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한반도에서 기원한 한민족의식 속의 ‘단군신화’라는 믿음은 우리의 국가, 인종을 수백 년 동안 이어오게 만든 믿음이다. 이는 그것의 실질적 사실여부를 애써 밝히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신화 속에 한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우리를 지금까지 이어오게 만드는 원동력 이었기에, 신화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에겐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에 와서야 애써 단군신화의 사실여부를 따지려 들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배척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저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받아 들였던 것이다. 신화는 먼 과거 혹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고, 자연 혹은 초자연 혹은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의 기원이나 형성에 관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신화’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한다. 특히, 요즘엔 어떠한 분야에서 뛰어나고 이례적인 것을 이루어낸 사람을 보고 “‘신화’를 창조하였다.” 또는, 모그룹의 이름에서도 사용되어 ‘신화’라는 언어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화에 대한 선입견들로 가득하였던 나에게 ‘교육 신화’라는 것은 너무도 뜻밖이고 의아한 단어였다. 흔히 어느 나라의 기원을 논할 때 꾸며진 이야기 혹은 누군가 이루어낸 이례적인 일을 일컬을 때 쓰이는 것으로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첫 장을 펴보고 목록을 차례대로 읽어나가며, 그 동안 당연시되었던 교육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또 한번 의아함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예상대로, 이 책을 읽어가며 이 책의 저자에 대해 놀랐고, 내 자신에 대해 놀랐다. 저자는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믿어온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그것을 그릇된 믿음이라는, 즉 ‘교육 신화’라는 것을 일깨웠다. 그리고 두번째로 소제목 하나하나를 보며, ‘ 이것도 그릇된 믿음이었단 말이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며 그러한 믿음을 당연시하던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며 부끄러운 내 자신에 애써 마음을 쓸어내리며 읽었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당연시되어 받아들여온 신화들, 특히 교육 분야에서 내가 교육을 받는 학생입장에서 그동안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여기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학교교육과 믿음들이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훗날 그것을 바꿔본다거나, 누구에게 부당하다고 따지려 들지 않았던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당시엔 그러한 나의 생각을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말하면, 그저 학교에 반항하는 아이로 나쁘게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나는 거대한 사회의 교육 신화아래 희생자였던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우리를 구속하는 신화들을 간략히 언급하며, 그러한 신화를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교육방향으로 개혁시키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학부 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자각과 해결점을 찾고자하는 고심은 훗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단에 섰을 때 그 아이들에게 나 때보다는 좀더 나은 교육방법으로 올바른 인도자로 세움 받기 위한 하나의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교육사회의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비효율성, 교사와 학생의 의사소통의 단절, 각종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의 실패 등등을 개선시키기 위한 더 나은 대안들을 마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본론
문화적 신화
1.현대사회는 경쟁사회이다.
‘현대사회는 경쟁사회이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좀더 가지기 위해선 남의 것을 뺏어 와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말들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되어 받아들여 온 신화이다. 특히 삼성이나 현대그룹 등의 대기업에서 내거는 모토로도 흔히 사용되어 왔으며, 초.중.고 뿐 아니라 대학교 안에서도 상대평가란 제도 자체가 우리에게 이러한 논리를 이론적, 현실적으로 불변의 진지처럼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협동해야 잘산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말들은 단지 우리각자의 이익이 부합되어 단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때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거나, 옛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선조들의 상부상조, 공동체 정신에나 받아들여지는 옛것으로 치부하고 마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현 사회는 협동적인 사회라고 한다. 세계화시대라고 하는 근래에 서로 알지 못하는 수천의 많은 사람들의 유연한 협력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젖소를 키우기 위한, 우유를 짜기 위한, 짠 우유를 가공하고, 병에 담고, 또 배달할 수 있도록 차량을 생산하고, 도로를 정비하는 일에 협력적으로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년 동안 이뤄낸 수많은 산업 및 과학 발전은 우리 모두를 경쟁의 사회로 내 몰은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은 순수한 영향이었다고 일컫는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삶의 의존도가 증대된 것 뿐 만아니라, 개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힘 또한 증대되었으며, 이러한 사회가 진실로 유연하게 움직여 나가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힘을 협력하여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흔히 기업체들이 현대사회에서 경쟁적인 삶의 본보기로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그것도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하고 있다. 겉으로는 경쟁의 미덕을 외치지만, 그 속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의 상호의존적인 협력이 눈부신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타인과 경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은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다. 우리의 하루를 살펴보아도 우리는 타인과 경쟁하기보다 온종일 협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극히 예외적인 경쟁을 사회의 전부인양, 생존전략의 진리인양 받아들여왔던 것이다. 적당한 경쟁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발시켜 결과의 효율성을 높여줄지 모르나, 과도한 경쟁심의 조장은 궁극적으로 공허와 아노미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러한 논리는 학교에도 적용된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효율적이고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도록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을 각박한 경쟁의 논리 속에 내몰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 책임, 적절한 자기 몫의 일을 해내려는 기꺼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인내,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이해, 인간복리에 대한 책무, 민주적 원리에 대한 소임, 인간존재의 존엄성과 고력성에 대한 존경, 그리고 개인적 및 집단 상호작용에 효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능과 지식 등이 학교 교육의 목표들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능케 하는 진리의 논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적으로 협력을 말하면서도, 실제적으로 학교제도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이 그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겐 더 큰 상처와 사회에 대한 배신감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교육 관계자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배의 효과를 가져오는 결과를 보여주는 제도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그러한 교육 속에 자라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협력하여 발전적,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회에 흐르는 논리가 그러한가? 정말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모든 기회가 부여되고, 모두가 똑같이 취급받는 사회를 정당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내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똑같이 취급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가지고, 좀더 명예를 얻기 위해 발버둥친다. 실제로 사회에 흐르는 논리가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되는 평등이고, 그것을 모두가 바라는 것이라면 좀더 잘살고, 좀더 명예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을 것이다. 내심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얻어진 만큼의 대우를 받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각자의 개별적 요구에 비추어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는 그러한 기본원리에 교육의 바탕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 사회는 학생들을 너, 나가릴 것 없이 교육과정에 획일적으로 순응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동등한 취급의 신화를 끌여들여 왔다. 따라서 학교는 조직화되고, 수많은 규정이 제정되고, 모든 어린아이들을 똑같이 취급하는 제도들을 제정해왔고, 나 또한 그러한 사회속의 희생자가 되어왔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나 선생님께 바랐던 것은 모든 아이들을 정형화된 구조에 똑같이 다루어지는 것 보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자질에 따라 그들의 필요에 맞춘 관심과 가르침이었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자신의 최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여 아이들에게 개성에 맞춰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딱 짜여진 틀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두고, 그것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거나 지키지 않을 때에 사회에 반하는 반항아로 취급하여 좌절시켜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또한 사회에서 이로운 사람으로 취급받고, 긍정적인 관심을 받고 사회에서 모범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기위해 그러한 틀 속에 의도적으로 맞추며 살아왔다. 그것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인간으로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주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여 스스로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시범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적당한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할 때에, 올바른 교육의 방향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의 형태와 본질간의, 그리고 민주주의 원리와 민주주의에 관한 신화간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