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촌리 고분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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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촌리 고분군 답사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수촌리 고분군 답사기
Ⅰ.서론
Ⅱ.본론
1.수촌리 고분군 소개
2.발굴 유물유적 및 고분간의 관계
3.수촌리와 웅진천도
Ⅲ.결론
Ⅰ.서론
백제사는 패망한 나라의 기록이어서, 그 자료의 양이 매우 적어 항상 연구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고대의 기록인『삼국사기』에서 조차 소홀하게 다루어져 백제사 기술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사료의 빈곤함을 해결할 학문은 고고학 뿐 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부족한 백제사의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03년 말에서 2004년 봄에 고고학계 최대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공주 수촌리 백제고분이 발굴되었다. 이 고분군의 발굴을 통해 5세기 백제의 고분형식의 변화, 유물·유적은 물론 당시 백제의 통치 영역과 중앙과 지방의 세력 관계 등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Ⅱ.본론
1.수촌리 고분군 소개
수촌리 고분 발굴은 충남 공주시 의당면에서 추진 중인 의당농공단지 조성 예정부지 조사 시기 발견되었다. 수촌리 유적은 지역에 따라 적Ⅰ지점과 Ⅱ지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적Ⅰ지점은 1,000평 범위이며 유적Ⅱ지점은 남쪽 경계지역 300평으로 나누어진다. 유적Ⅰ지점에서는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 백제시대~통일신라 석곽묘, 고려시대~ 조선시대 토광묘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는 출토된 유물이 없으며 훼손이 심해 고고학적으로는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반면, 유적Ⅱ지점에서는 백제시대의 분묘 6기가 확인되었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나무관을 추가로 안치한 대형 토광목곽묘 =덧널무덤,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묘제로서, 장방형의 토광을 파고 내무에 상자형의 목곽을 짜서 봉토를 올린 것이다.
2기, 무덤방 입구를 갖춘 횡혈식석실분 =굴식돌방무덤, 돌을 이용해 목관이 들어가는 자리를 만드는 묘.
2기, 별다른 입구가 없이 현실을 돌로 만든 횡구식석실분 세 벽을 쌓아올려 그 위에 뚜껑돌을 여러 개 놓은 뒤 막지 않은 벽을 통해 안치하고 나머지 벽을 쌓아 막는 방법
1기, 수혈식석곽묘 석곽의 평면 형태가 세장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뚜껑이 돌이 아니고 나무를 덮는 등 목곽묘의 전통이 일부 남아 묘광과 석곽의 넓이가 넓은 묘.
1기가 드러났다. 각 6기의 고분의 형식은 구체적으로 12호분은 토광목곽묘, 3호분은 횡구식석실분, 45호분은 횡혈식석실분, 6호분은 수혈식석곽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