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성폭력을 다시 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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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문: 법제화 이후의 여성운동을 위하여(6쪽)
정희진
남성들은 ‘본인의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 성문화를 진단하겠다.’며 자신을 기꺼이 보편적 인간으로 위치시킨다면 여성들은 ‘일반화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라고 쓴다. 단순히 섹슈얼리티의 사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 경험, 언어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강간이냐 화간이냐’는 식의 성폭력경험의 객관성을 논하기 전에 여성과 남성이 모두 자기 경험을 인식, 재현하는 과정 자체가 깊숙이 성별화 되어 있음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언어와 경험 해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과 맥락을 무시한 채 마치 현재 삶의 조건이 투명하고 객관적인 것처럼 간주되는 상황에서 여성이 지배 언어에 위반되는 자기 경험을 말할 수 있을까? 여성의 경험과 언어가 불일치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분열을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식체계를 상대화해야한다. 삶의 순간순간이 특수한 정치적 조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는 성폭력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로 운동가가 될 처지에 놓이고, 자신을 피해자화 하는 시선을 견뎌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여성의 피해와 공통의 심각성을 인정하거나 공감하지는 않으면서 여성을 피해자화 하는 데는 익숙하다. 때문에 여성운동이 피해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여성에 대한 피해자화를 거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여성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폭력 상황에 개입되고 그 상황에서 특정한 형태의 성역할을 하고 있건만 사회는 여성이 피해 상황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폭력에 대한 동의나 선택으로 간주한다. 결국 피해여성은 남성 폭력의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 여성이 폭력 상황을 선택하고 동의했다는 남성 판타지는 실제로 폭력을 선택한 남성의 책임을 비가시화시킨다. 한국사회의 반성폭력 운동 논리는 사실 여성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기 힘들었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성폭력 반대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논의되는 방식 자체에 저항했다기보다는 ‘여성의 성은 보호되어야하며 여성에게 성은 곧 인격’이라는 남성 사회의 시선 안에서 진행되어왔다. 성폭력을 여성의 동의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로 보는 것은 젠더계급에 존재하는 현실의 정치적 억압을 개인의 의지문제로 환원한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억압 조건을 초월하여 순수한 개인의 의지로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을 가질 수 있는가, 가진 적 있는가. 동의와 거절의 의사소통 자체가 젠더화된 의미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실현가능한가. 이미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젠더화된 권력 관계의 배열 아래서 사회적 포지션을 형성하며 살아왔다.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의사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존재했다면 성폭력을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람들은 여성의 말을 수용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논의되었던 성폭력 반대운동의 논리는 자유주의 패러다임이지만 성별사회에서 여성은 자유주의 철학이 전제하는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논리 체계로는 여성의 경험을 말할 수 없으며 여성운동에 대한 역공세에도 대항할 수 없다. ‘Rape me’는 성폭력 피해를 강조하기보다는 남성 사회가 강요한 성폭력의 의미 자체를 해체시키자는 급진적인 정치학이다. 즉 강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의 권리를 여성이 갖겠다는 것이다. 그럴 때 성폭력은 남성사회가 의도하는 여성에 대한 통제 권력이 되지 못한다. 영화 의 논쟁적인 장면처럼, 남성에게 사랑 고백 행위가 여성에게는 성폭력이다. 여성과 남성의 경험이 다르고 그 경험에 대한 해석 체계가 다르다는 주장을 넘어서서 여성과 남성의 삶이 구조화되는 과정과 그 가정에 개입한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작업을 어떻게 성폭력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을까? 여성주의의 문제제기는 여성의 경험이 객관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는 사랑 고백 혹은 장난이 여성에게는 성폭력인 이 현실의 성차를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성별 관계에서 이 차이가 발생시키는 의미와 권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다. 여성은 남성의 언어를 이해해야 생존할 수 있지만 남성은 여성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남성의 주장대로 여성의 성폭력 경험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것은 하나의 언어만으로도 생존 가능한 남성과는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말한다. 현재 한국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법이 아니라 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힘’이다. 법이 운용되는 과정에 개입된 사회적 권력의 압도적인 남성성은 여성폭력관련법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법은 마치 문제 해결이 완성된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의 저항을 침묵시키기 위해 기능하기 쉽다. 우리에게 법 제정은 여성 억압을 가시화하되 남성의 언어와 이해 그리고 이에 기반한 남성 중심적인 법 운영 구조 안에서 가능한 만큼만 하라는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더욱 두려운 것은 성폭력 피해라기보다는 성폭력 신고의 피해인 것이다. 인권개념처럼 성별화된 영역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성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2차 성폭력행위를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으로 옹호하는 광범위한 반동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여성에 대한 폭력(17쪽)
정희진
1. -성별화된 민족범주와 평화운동의 반평화(17쪽)
2002년 주한 미군의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자 중학생을 추모하는 촛불 시위에서 열창되었던 노래 와 고 윤금이 씨 사진 전시는 평화운동가을 포함한 한국 남성이 이 사건을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지난 10여 년동안 한국의 평화운동, 반미운동의 남성 중심성은 별로 변화하지 않은 것 같다. 여성을 타자화하여 민족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이러한 방식의 평화운동은 어떤 의미에서 ‘민족 전체’가 참여하는 철저한 반미투쟁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평화를 지향한다고 볼 수도 없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볼모로 한 반미, ‘평화’운동-의 정치학은 남성에게는 평화를 위한 실천이 여성에게는 성폭력을 선동하는 폭력, 공포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많은 집단간 갈등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매개로 진행된다는 사실은 성폭력이 여성의 몸을 통해 남성간 정치를 실현하는 가부장제의 기본 구조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나 를 실천하는 현대 한국의 남성성도 이 같은 성별화된 민족주의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지촌 지역의 성매매 제도, 전쟁시 성노예(정신대)문제는 국가가 남성조직인 군대를 위하여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직접적으로 차출, 동원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민족주의든 저항적 민족주의든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미군에 의한 기지촌 여성 살해는 한국 여성에 대한 미국 남성의 성폭력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에 가한 폭력이 된다. 이때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 국가의 소유라는 인식 하에 비가시화된다. 여성은 국가, 민족, 가족의 개별 주체*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표상하거나 남성 공동체의 안녕 여부를 증명하는 척도로 간주되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재생산 능력과 성 활동은 여성 자신을 위해 기능하지 않는다. 때문에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그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폭력으로 의미화된다. 즉 성폭력이 여성 인권 침해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국가 등 남성 중심적 집단간에 갈등이 있을 때 상대편 집단의 재생산 기능, 문화, 정체성을 파괴하는 ‘궁극적’승리의 쟁취 수단이자 그 결과라고 간주된다. 성별화된 사회에서 사람은 인간이기 전에 여성과 남성 이어야하며 성별관계의 불평등 논리에 의해 사회적 약자는 여성화된 호칭을 갖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남성들간의 권력 관계의 표지이자 점령지로 의미화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담론의 전제는 여성은 ‘fuck’할 수 없다는 것이다. ‘fuck’의 주체는 남성이다. 강간이든 섹스든 미국을 ‘fuck하게 되면 한국은 남성이 되고 미국은 여성이 된다. 이 논리에서 성폭력은 여성 인권침해가 아니라 국가사이 갈등의 지표가 된다. 때문에 윤금이 혹은 한국여성은 미군에게 성폭력을 당해야만 성폭력을 인정받고 보호받으며 정치적 희생자로 간주된다. 이러한 남성 이데올로기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남성 국가가 소유한 기호, 상징, 한반도, 가족, 민족 그 자체가 된다. 기지촌 여성으로서 윤금이가 살았던 삶의 모순과 억압은 전혀 문제화되지 않고 미군에게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살아 생전에는 인간*민족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가 미군에게 죽은 후에 민족의 성원이 되는 기지촌 여성의 현실은, 남성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성의 삶이 죽음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2. 성별화된 평화운동(23쪽)
기지촌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된 주검 사진은 반미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힘없는 매춘여성이었기 때문에 전시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진은 거리에 전시되지 않는다. 여성주의 세력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윤금이 씨 사진이 계속해서 전시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그 개인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적 분노를 촉발시키는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전쟁반대의 이유로서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사회적 소수자의 희생사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담론은 젠더를 다른 사회적 모순의 하부 구조 영향을 받는 구조로만 상정하는 편견에 근거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전쟁과 평화의 성별화된 이미지를 전쟁 반대 논리로 동원하여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이다. 즉 남성은 전쟁을 일으키는 폭력적인 존재이고 여성은 남성이 만든 어지러운 세상을 평화롭게 수습하는 존재라는 성역할 고정 관념이 평화운동과 일부 여성평화운동에서도 수용되고 있다. 여성은 고통이나 폭력을 당했을 때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참을 것이 기대되고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은 비난받는다. 원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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