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

 1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1
 2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2
 3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3
 4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4
 5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5
 6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6
 7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
(인전대전 동원체제 형성과 3중의 권력투쟁)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권력
Ⅰ. 머리말 : 인전대전 동원체제 형성과 3중의 권력투쟁
1940-50년대 북한정치 과정의 결과는 조선로동당과 그것을 핵으로하는 북한 사회 전체를 그 내부가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위로부터 아래로의 명령전달과 접수 및 집행이라고 하는 철두철미한 인전대적 동원장치로의 재편이었다. 이러한 인전대적 동원체제의 특징은 중앙권력의 단일한 의지에 의해서 장악되는 사상, 의지, 행동의 통일체라는 것이며, 권력안정과 생산증대라는 두가지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엄청난 동원을 실현해 낸다는 것이다. 이들을 중앙의 단일의사에 의해서 지배되는 위계적이고 통일적인 조직구조로 재편시켰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재편의 과정과 결과로서 권력 중앙은 권력 중하층요원과 모든 개인을 중앙이 요구하는 무한한 목표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무한정 동원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인전대적 동원체계는 북한사회 내의 총체적 권력투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비교적 상호 독립적인 세가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첫째는 상이한 파벌간에 생존을 유지하고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 즉 조선로동당 상층부의 권력투쟁이다. 둘째는 권력 상층부의 권력 중하층 집행요원에 대한 권력투쟁이다. 즉 상층은 중하층 요원들을 무조건 항복시킨 완전한 통제상태를 지향한다. 셋째는 상층과 중하층을 포함한 권력 전체, 즉 조선로동당 대 사회 간의 투쟁이다. 여기서 사회의 범주에는 개인, 노동자, 농민 등 권력의 통치 대상이 되는 모든 요소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권력투쟁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사회주의 정치이론은 자유민주주의와는 달리 권력의 획득과 행사에 관한 규칙이 매우 취약하게 발전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권력관에 기초하는 체제에서는 권력 엘리트, 권력상층과 권력기층, 당과 사회 간의 권력투쟁에서 정해진 규칙과 범할 수 없는 한계 등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권력의 획득과 행사에서의 한계 및 예측 가능성은 소멸하고 상대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만성적 의심의 상황을 초래시킨다. 상호간의 이러한 관계는 당내의 개별 파벌 지도자 간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 당 상층과 하층 간의 투쟁, 당과 외부 사회와의 투쟁과정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이 북한의 구체적 역사 전개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본론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Ⅱ. 상층 파벌 투쟁
1945년 일본의 항복은 한반도에 권력의 공백상태를 초래했다. 일본을 대신하여 북한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한반도가 소련을 공격하기 위한 공격기지로 되지않게 하고 소련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줄 좌익정부를 수립한다는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소련의 의도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김일성이었다. 그래서 소련은 김일성의 권한을 강력하게 보장해 주면서 당시 북한내에서 발견했던 공산주의 세력내의 상호 분열적이고 경쟁적이었던 계파간의 분쟁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김일성파벌을 제외한 다른 권력파벌은 김일성파벌의 하위 연합세력으로서만 등장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김일성은 반대파에 대한 숙청작업을 위해 많은 엘리트와 하급요원들을 동원하였다. 파벌투쟁의 최초의 희생자는 북한지역의 국내계였고, 이후 소련의 지지하에 만주계, 소련계, 옌안계의 연합을 구성하여 국내계를 제압해 갔다. 이를 통하여 자파 소속 엘리트와 중급요원에게 광범한 상승기회를 열어주는 한편, 당원확장정책을 통해 세력기반 확장을 꾀해 1948년 제2차 당 대회 이후 당의 중하층에 대한 배타적장악과 지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전쟁이후에도 중공군의 지원을 받은 무정, 박헌영에게 관용을 보이던 허가이 등을 숙청함으로써 6.25전쟁의 패배에 대한 책임전가와 잠재적 경쟁자의 제거 등을 통해 김일성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해 갔으며, 이러한 남로당계의 숙청은 중앙기관 차원을 넘어서 하부기관/조직에 까지 확대되었다. 파벌간의 세력확장을 둘러싼 투쟁은 1955년 소련계에 대한 공격, 1956년 옌안계 숙청으로 확대되었고 이러한 광범위한 숙청은 그에 비례하는 격렬한 투쟁과 김일성계 엘리트 및 파벌요원의 광범위한 상승을 생산해냈다.
Ⅲ. 권력상층과 중하부 권력요원 간의 갈등과 투쟁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