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

 1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1
 2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2
 3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3
 4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4
 5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5
 6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6
 7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1 - 달레를 중심으로
한국가톨릭사 서술의 시각을 나누어 보면 크게 4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서정민 교수님의 한국천주교회사 세미나 첫 시간 강의 내용에 따른 분류이다.
치명의 역사, 곧 순교사적 시각에 따른 서술이 첫 번째이고, 교회론적 관점에서 교회의 확장을 기록한 교회사적 시각에 따른 서술이 두 번째이다. 그리고 정치, 사회사적인 시각에 따른 서술이 세 번째, 사상사, 문화사, 문명사적 시각에 따른 서술이 마지막 네 번째이다. 본 소고는 이 분류를 기준으로 달레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어떤 역사 서술의 시각을 가지고 저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주된 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달레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가 다루고 있는 한국가톨릭사 내용 구성의 특징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레의 한국가톨릭사 서술에 관한 연구자들의 연구내용도 살펴볼 것이다.
1. 달레(Dallet, Claudes Charles, 1829-1878)의 생애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대백과사전』제3권, (서울: 기독교문사, 1981), 1024, 최석우, “달레저 한국천주교회사의 형성과정”, 『교회사연구』, 제3집 (1981. 8.), 116-119, http://info.catholic.or.kr/ (가톨릭정보)의 가톨릭 사전에서 달레 부분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달레는 1829년 10월 18일 프랑스 디죵(Dijon)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랑그르(Langres)에서 출생하였다. 랑그르의 소(小)신학교를 거쳐 대(大)신학교에 진학하여 수학하던 중 선교사가 될 뜻을 품고 1850년 10월 5일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들어가서, 2년 후인 1852년 6월 5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어 그는 인도 지방 마이쑤르(Maissour)에 선교사로 파견되었고, 저술활동을 통한 문서선교활동도 펼쳤다. 그러나 달레는 간질성 질환을 앓게 되면서 이로 인해 1860년에는 본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본국에 돌아온 뒤 달레는 그가 익힌 인두어의 보급을 위해 활자를 주조하였고, 파리의 국립 인쇄소는 이 방면의 인쇄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이 후 3년뒤 1863년 달레는 다시 인도로 선교를 떠났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선교지에서의 궁핍과 피로, 열대지방의 기후의 영향을 이겨내지 못했고, 간질성 질환이 재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심해져서 1867년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은 달레는 다시 선교지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되고, 파리 신학교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후로 달레는 외방전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일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외방전교회의 활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1871년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외방전교회가 경영난에 부딪혔기 때문에 달레는 자료를 수집하면서 신학교를 위한 모금활동도 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달레는 1872년 한국천주교회사 편찬에 착수했다. 그는 다블뤼(Daveluy)의 초벌원고를 위시하여 신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선교사들의 서한과 보고서를 검토하고 정리하여 2년 후인 1874년에 『Histoire de lEglise de Coree』(한국천주교회사) 상하 2권을 출판하였다.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의 편찬에 착수하기 이전인 1870년부터 조선 선교사들과 서신 연락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그때부터 한국천주교회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그것을 편찬하도록 위촉받았을 것이다.
달레는 이 후 파리외방전교회사의 편찬이란 대작업을 계획했다. 이에 관해 파리본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직접 외방전교회에 위임된 선교지역들을 방문하고 현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자 1877년 2월 극동(極東) 여행길에 올랐다. 일본과 만주를 거쳐 북경에 이르러 꽤 체류한 다음 다시 코친차이나(베트남 남부의 옛 이름)로 갔다. 그러나 케소(Keso)에 도착한 지 4,5일 후에 이질을 앓게 되었고, 병세가 심해 결국 1878년 4월 25일 5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시와 철학에 관심이 깊어 몇 편의 철학 논문을 남겼고 선교사로 떠나가는 동료신부들을 격려하는 시《선교사의 출발에 붙이는 노래》(Chant du depart des missionnaires)에는 작곡가인 친구 구노(Gounod)가 곡(曲)을 붙이기도 하였다. 달레의 사망으로 편찬이 중단되었던 《파리외방전교회사》(Histoire generale de la Societe des Missions-Etrangeres)는 1894년 동회원 로네(Adrien Launey)에 의해 완성되어 전 3권으로 간행되었다.
2.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1)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시각에 대한 이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시각은 기본적으로 치명의 역사, 곧 순교사의 시각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천주교회사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박해라는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며, 신앙 때문에 죽음도 마다하지 않은 신앙인들이 중심이 된다.
사도들의 모후이시오, 순교자들의 모후이시며 증거자들의 모후이신 동정성모 마리아여,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이 전기를 어머님의 발아래 겸손되이 바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그들의 피로 물든 이 책은 하느님의 어머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명백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매를 맞고 교수(絞首)나 참수(斬首)의 형을 당하고 몸이 갈기갈기 찢기었으니 그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샤를르 달레, 안응렬, 최석우 번역, 『한국천주교회사 上』, (왜관: 분도출판사, 1979), 1.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