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의 역사적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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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제관계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한 국제관계의 역사적 변천
: 북한의 관점
(1910년 ~ 1994년)
- 목 차 -
Ⅰ. 서 론
Ⅱ.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북한 (1910 ~ 1948)
1.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와 쌓여가는 민족의 울분
2. 1920년대 붉은 물결의 시작과 일제의 민족분열정책
3. 1929~1935년 세계 공황기 속 국내 민족운동의 고양과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굴절
4. 1936~1948년 식민지 전시 파시즘과 해방 정국의 혼돈
Ⅲ. 진영외교와 중소분쟁 (1948 ~ 1960)
1.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과 과정
2.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냉전외교 : 진영외교를 통한 경제 지원 추구
3. 중소 분쟁의 전개와 북한의 등거리외교
Ⅳ. 자주외교와 비동맹외교 (1960~1980)
1. 자주 외교
2. 비동맹외교
3. 중립국가와의 관계 : 아프리카의 주체사상
4. 남북관계
5. 남북화해에 대한 연구
Ⅴ. 세계무대에서 북한의 벼랑 끝 외교 (1980~1994)
1. 1980년 이전의 대남 테러
2. 1980년 이후의 대남 테러 : 아웅산 폭파사건(1983)과 KAL기 추락사건(1987) 중심
3. 서방외교: 북한의 경제개방 시도와 대미외교
4. 북한 핵 개발
5. 1980~1994년 북한의 국내외 정치 및 경제상황
Ⅵ. 결론
Ⅰ. 서 론
1. 왜 북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가?
문제 제기
2011년 8월 KBS 남북협력기획단에서 실시한 ‘2011년 국민 통일의식’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84.7%는 ‘현재의 안보상황이 불안하다.’고 답했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절반이상이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얼마 전 신문을 통해, 1990년대 중반 탈냉전 분위기를 타고 생겨난 각 대학의 북한학과 학부 과정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1994년 가장 먼저 설립한 동국대 북한한과는 폐과를 추진하고 있으며, 관동대, 명지대, 선문대 등이 모두 통폐합을 계획하고 있고, 2013년에는 고려대만 북한학과가 남을 예정이라는 것이 기사의 핵심이다. 이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안보 현실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연구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우리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2011년 현 시점,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상황은 어떠한가?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동북아는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외교의 각축장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중국은, 세계 최대 인구를 무기로 사회주의 붕괴 후 실용주의적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2002년 16차 전인대회 이후 20년간 2002년의 GDP의 4배, 연평균 경제정상률 7% 등을 목표로 경제 발전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의 국방예산 또한 10년간 3배 이상이 증가했고, 최근 핵추진 항공모함 ‘바랴크(Varyag)’ 보유 등으로 인해서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미국과 더불어 G2 국가로 급부상 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일본은, 2차 대전 후 ‘평화헌법’으로 상징되는 패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익을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옮길 수 있는 ‘보통국가’를 추진하며 ‘방어와 억제’ 중심의 군사정책에서 ‘위협대응형 방위 정책’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9.11 테러를 계기로 자위대의 자유로운 활동과 활동 영역의 확대를 급속히 추진하며 자위대 파병의 길을 확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주변국과 세계정세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예상할 수 없는 도발과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 심각한 안보불안을 초래하고 있는 ‘북한’ 일 것이다. 벼랑 끝 전술을 통한 위기 해결을 위해 핵실험 등으로 전 세계를 위협함은 물론, 내부적으로 스탈린식 통제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동안은 군에 의존하는 선군체체를 통해 체제의 안전을 꾀해 왔으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국제사회는 6자회담 등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진행과정에서도 북한은, 핵개발을 총체적 생존문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삼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의 공통된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다자회담이라는 특성상 합의도출이 어려워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북한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대내적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서해에서는 2000년대 들어 주기적으로 남북 간 해상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으로는 한미 FTA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 현안에, 보수와 진보 간 다툼을 넘어 ‘종북 좌파’, ‘빨갱이’, ‘북으로 넘어 가 김정일을 찬양하라.’ 라는 등 북한과 관련 국민 분열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 국제관계, 국내문제 등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다방면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핵심요인이며, 특히 북한 정세의 유동성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이 분명하다.
북한 연구의 필요성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가리켜 흔히들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한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교환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미국에서 바라보는 북한(North Korea)는, ‘이상한 나라’, ‘이란과 쌍벽을 이루는 악의 축’, ‘독재와 김정일’, ‘북핵’, ‘경제난’ 등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북한이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행동들이 국제사회에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북한 만큼 일관성을 지키고 있는 나라도 없는 듯 하다. 정영철, “돌파와 협상의 북한 외교: 북한 대외ㆍ대남정책의 역사,” 『내일을 여는 역사』 제42호 (2011), pp.36-37.
즉, 북한은 그들만의 원칙에 충실하게 행동해왔고 앞으로도 그 원칙의 변화는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북한과 관련한 문제해결의 효율성은, 매우 떨어질 것이다. 사실 분단 후 현재까지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북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민간교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들과 정부가 통제하는 북한에 대한 정보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동안의 이러한 상황, 즉, 북한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정확한 이해 없는 대북정책으로 발전될 수 있고,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으며, 여기에 북한 연구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즉, 북한 연구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논어의 ‘온고지신 [溫故知新]’의 정신, 다시 말해 ‘과거를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정신의 적용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북한의 정책기조와 국제관계에서 외교적 성격이 무엇인지 분석한다면, 독재체제로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일관성을 갖고 있는 북한을 이해하는데 매우 효과적일 것이고, 이것은 북한의 한반도 도발과 핵실험 등 현안을 타계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2. 북한의 외교 목적 : ‘사회주의’ 기반의 체제 유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외교정책은 ‘전조선의 공산화’ 라는 궁극적 목표 하에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외교정책은 사회주의 주체사상을 기본 틀로 하여 각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자주적, 폐쇄적 호전적인 성격을 보여 왔다. 김계동, 『북한의 외교정책: 벼랑에 선 줄타기외교의 선택』(서울: 백산서당, 2002), pp.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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