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학자가 본 제주인의 삶 - 제주도민들의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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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인 학자가 본 제주인의 삶 - 제주도민들의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과 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인 학자가 본 제주인의 삶
제주도민들의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과 문화
들어가며
한국의 학자가 아닌 외국인, 일본인 학자인 저자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제주도에 대해 알게 되어 제주도의 행원리, 대평리, 하예동, 표선리 등에서 총 2년간 거주하며 관찰한 제주도민들의 일상생활에서의 모습과 문화, 역사를 논문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제주도 마을에 살며 연구를 시작한 첫 외국인이라는 점에 특이함을 느꼈고 그의 시도가 상당히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글을 읽었다.
본 론
저자는 인간의 생활하는 모습은 어떤 법칙과 구조로 규정하더라도 완벽하게 그 행위들을 구조화 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시적인 즉흥성의 시각을 갖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인간은 경험인 ‘과거로부터의 기억되는 시간의 축적’에 따라 한 행위에 대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는 개개인의 감수성이 깊게 관여하게 되어 저마다 다른, 구조화된 것에서 벗어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을 갖고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의 실천에 대한 고찰을 하는데, 제주도는 역사에서 그렇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유배지, 변경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일제가 끝난 후, 제주도는 한국의 어느 한 지역으로서 그 가치가 생겼고, 이제는 어엿한 한국의 특별자치도 이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에서의 제주도는 일본의 근대어업의 침탈로 생업의 터전이 바다가 황폐화 되었으며, 식민 통치 과정에서도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노동력, 군사력 등의 인적자원으로 착취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 일본의 식민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제주도의 바다에서 채취되는 해산물의 가치는 경제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과거에 제주해녀항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가 한창인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해녀의 권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해녀조합이 철저히 어용화 되어 그 횡포가 극에 달하고, 이에 항의하는 해녀들과 지역 청년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해녀항일운동은 생존권수호만을 위한 투쟁이 아닌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던 항일운동으로 평가되는데, 이러한 모습들과 함께 일제 당시의 일본인들에게 비친 제주도의 모습은 과거 조선시대에도 중앙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종종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므로 민심에도 독자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일본으로 도항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음에 따라 치안,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제주도의 특이성은 일제가 제주도를 다른 지역과 다르게 바라보게 된 이유다. 당시 제주사람들의 일본으로의 도항의 의미는 노동력 강제동원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이자 돈벌이에 대한 기대와 이국에 대한 모험, 그리고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목표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식민지화 되는 시기에 제주사람들이 일본의 근대화의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하는 하나의 단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개개인으로는 대항하기 힘든 구조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활의 가능성을 펼쳐나가기 위한 실천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해방 후에는 한국의 한 지역으로써 가장 주변에 위치함으로 인해 육지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가진 지역으로 주목받았다. 한 예를 들자면 가족제도를 들 수 있는데, 해방 후 제주도에서 결혼한 남녀는 부모와 따로 거주하기 때문에 제주도의 가족은 핵가족적 성격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에게 경제력이 있고 나이가 들어도 여성은 혼자 산다는 점에서 모계 중심적이라고 한다. 친족에 대한 용어 등과 같은 많은 생활상의 부분에서 육지와의 다른 점이 많이 때문에 육지를 기준으로 한 한국적인 것과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이러한 특성은 한국 속에서 특수한 것이며 한국문화나 사회의 원초적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고도 한다.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제주인의 대한 연구도 있었는데, 조선에서 건너온 한국인들은 한일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체류 자격도 주어지지 않아, 본국지향과 재일지향에 대한 선택을 압력과 함께 강요받았다. 하지만 일과 가족문제로 인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힌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 민족교육의 권리획득을 필두로 일본 사회에 대한 저항을 전개해 나갔으며, 패전 후에는 조선 사람들이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얻었으나, 이러한 해방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 체류하다 일방적으로 국적을 박탈당해 제주도로 돌아온 재일 제주인들이 일본에서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다시 돌아온 제주도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여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제주도의 생활상을 관찰한 주 무대는 행원리이다. 현 주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이며, 저자는 인터뷰와 실제로 그들과 같이 생활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대한 경험, 생각과 판단을 배웠으며 그들의 생활상, 그들의 농업 그리고 해상업에 대한 것을 배운다. 제주도민들에게 처음, 일제강점기에 대한 여파로 인해 일본인인 저자에게 배타적인 반응을 예상했으나 생각 외로 따듯하게 받아들여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당시 제주도민들의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제주도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친척관계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말에 ‘궨당’이라는 사투리가 생각났다. 이 궨당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고 막연하게 친척관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의 설명으로는 당시 제주도의 친족제도는 육지와는 달리 부모양계혈통주의라서, 한국에서의 부계의 친척을 표현하는 말인 ‘친척’과 ‘집안’이 있는데 제주도에는 부모 양쪽을 포함한 친인척 관계를 ‘궨당’이라고 설명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떠한 관련이나 아주 먼 친척관계를 찾게 되면 바로 궨당이 되어, 확실한 혈연관계를 입증하지 않고 서로에게 친근함을 느낀다. 따라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더욱 더 흔쾌히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즉흥적이면서 유연한 공동성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당시 제주도의 사회적, 문화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특이한 문화로 친목회를 말할 수 있는데 관혼상제 의식 또한 삶에서 중요한 일인데, 그럴 때의 필요한 일손을 친목회를 통해서 각자 일이 필요한 경우에, 꼭 큰 일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서로 나서서 도와주는 형태이다. 무조건적인 도움을 강요 하는 것이 아니라, 일손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우선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해 두는 ‘안심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관습이라는 구조화되어 있는 행위를 각자 개인의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행동하며, 이러한 완전히 계산할 수 없는 상호교환을 하면서 유연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한 상호부조의 모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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