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 《시용향악보》, 《악장가사》의 편찬과정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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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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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악학궤범》, 《시용향악보》, 《악장가사》의 편찬과정과 내용

1. 악학궤범
1.1. 악학궤범 소개
1.2. 악학궤범 찬정 배경
1.3. 악학궤범 찬정 과정과 방향
1.4. 악학궤범 내용
1.5. 악학궤범 의의
2. 시용향악보
2.1. 시용향악보 소개
2.2. 시용향악보 내용
3. 악장가사
3.1. 악장가사 소개
3.2. 악장가사 편찬과정
3.3. 악장가사 내용
1. 악학궤범(樂學軌範)
1.1. 악학궤범 소개
1493년(성종 24) 왕명에 따라 예조판서 성현(成俔)을 비롯하여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 ·신말평(申末平) ·박곤(朴棍) ·김복근(金福根) 등이 엮은 9권 3책으로 되어 있는 악규집(樂規集)이다.
≪악학궤범≫은 12율의 결정, 여러 제향에 쓰이는 악조(樂調), 악기의 진설 진설(陳設) : 제사나 잔치 때에 법식에 맞게 늘어놓는 것
, 정재 정재(呈才) : 대궐 안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
의 진퇴, 악기·의물·관복, 그리고 제향·조회·연향의 음악연주에 필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망라함으로써 성종 당시의 아악·당악·향악 등 음악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는 등의 가사가 한글로 정착되어 실렸으며, 궁중의식에서 연주하던 아악(雅樂) ·당악(唐樂) ·향악(鄕樂)에 관한 여러 사항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고, 그 밖에도 악기 ·의상 ·무대장치 등의 제도, 무용의 방법, 음악이론 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한국음악사·음악이론 연구에 중요한 원전으로서 한국음악학의 기본사료 가운데 하나이다. 국문학·국어학·전통무용·복식·의물(儀物) 연구에도 기본사료로 이용되고 있으며, 동양문화연구에 있어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조선 초기 궁중의 제향·조회·연향(宴享) 때 필요한 음악의 이론과 실제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치밀하고 정확하게 쓰인 악서(樂書)였기 때문에, 궁중음악문화의 재건이 필요할 때마다 복간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1610년(광해군 2), 병자호란 후 1655년(효종 6), 그리고 아악기의 중수(重修)를 위하여 1743년(영조 19)에 각각 복간되었다
1.2. 악학궤범 찬정(撰定) : 책이나 사물을 골라 정함
撰定배경
- 조선은 유교정치를 기반으로 하여 건국되었다. 유교문화 안에서 禮樂은 유교이념의 지표로서 역사의 변화에 따라 현상으로 주목되는 것이었다. 즉 禮制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논리와 함께 외적 질서를 강조하는 禮와 내적 감성에 주목하는 樂은 시대에 따라 상호보완적인 위상으로 항상 주목되어 왔다. 유학경전의 六經중 樂經이 있었고, 지금은 전해지지 않으나 『禮記』에 「樂記」편이 남아있고 歌詞의 일부가 『詩經』에 남아 있는 것을 본다면 유학에서의 樂의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유학의 영향에 따라 조선왕조 역사 속에서 禮와 樂은 항상 정치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樂이라는 것이 단순히 가창되고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유교사회에서 유학이 얼마나 발달되어있는지를 나타내 줄 수 있고 또 유학을 전파, 심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인식되고 있었다. 즉, 樂을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 본 것이다.
“禮로서 백성의 마음을 절제하고, 樂으로써 백성의 소리를 조화시키며 政治로서 따르도록 하고 刑罰로써 간사함을 방지하게 한다. 禮樂刑政 네 가지가 지극하고 천하게 널리 미치어 백성이 하나 되었을 때 王者의 治道는 갖추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