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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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말레이시아 지역연구
1. 말레이시아의 역사
말레이시아에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8,000년 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이동식 화전농업에 종사했다. 기원전 1,000년 경 강가나 해안가를 따라 어로 행위를 하는 철기 사용자들이 출현하였고, 2~3세기에 들어서 북부 께다(Kedah)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된 왕국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초기 말레이인들의 문명은 인도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이들의 문화는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된 형태를 띠었다. 인도네시아 역사와 다소 공유되는 스리위자야 왕국이 7~8세기 경 성립되었다. 스리위자야는 말라카 해협의 무역로를 통제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14세기 말 빠라메스와라(Parameswara)는 말라카(Melaka)왕국을 건국하였고, 직접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15세기 말라카왕국은 아랍인, 중국인, 인도인들의 무역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1511년 포르투갈의 포병부대에 의해 말라카가 함락되면서 잔존세력들은 조호르(Johor)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17세기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말레이반도를 두고 대립한 시기였고, 18세기에 들어서는 술라웨시(Sulawesi)에 기원을 두고 있던 부기스(Bugis) 종족의 라자 께실(Raja Kecil)이 조호르를 점령하고 이 지역의 술탄을 폐위시킨 뒤 1세기 가량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였다.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말레이반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786년 영국은 뻬낭(Penang)을 점령한 후 조지타운(Georgetown)을 건설하였고, 1819년에는 레플스(Sir Stamford Raffles)에 의해 싱가포르에 영국 무역항이 건설되었다. 1824년 네덜란드는 말라카를 영국에 내어주는 대신 수마트라와 말레이반도 이남지역의 모든 영토를 통제하는 조약을 영국과 맺었다. 그러나 영국 동인도회사는 해안과 반도의 섬 지역만 통치했을 뿐이었지 말레이반도 내륙 지역에는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한편 영국은 1841년부터 사라와크도 통치하기 시작했다. 1840년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브루나이의 술탄을 도와 반란군을 무찌른 대가로 사라왁의 왕으로 봉헌된 것이었다. 1874년 영국은 뻬락(Perak)왕국과 빵꼬르(Pangkor)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영국은 말레이 왕국의 술탄 상속에 대한 동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간단히 말해 영국의 말레이시아에 대한 간접지배를 사실상 인정받은 사건이었다. 1888년 브루나이, 사라와크, 북보르네오가 영국 보호령으로 편입되었고, 20세기 초반에는 께다, 끌란딴(Kelantan), 뜨렝가누(Trengganu) 등 북부 말레이시아로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말레이시아를 점령했고, 이듬해 1월 31일 영국군은 싱가포르를 포기했으며 2월 15일 영국군은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말레이시아로 재진주한 영국은 1946년 싱가포르를 제외한 말레이시아 전역을 하나로 묶는 말라야연합(Malayan Union)안의 도입을 시도했다. 말라야연합이 술탄의 권력을 박탈하고, 화인과 인도인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레이인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결국 1948년 2월 1일 말라야연방(Federation of Malaya)이 결성되었다.
압둘라만(Tunku Abdul Rahman, 1903~1976)이 이끄는 UMNO는 1950년대에 들어 화인, 인도인 집단과 선거협약을 맺어 1954년 동맹당(Alliance Party)으로 확대되었다. 동맹당은 1974년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으로 확대 개편되었고, 현재까지 집권 여당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1955년 총선에서 동맹당은 총 52석 중 51석을 차지하여 독립 이후 주도 정당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선거 결과를 배경으로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헌법 제정에 관한 사항을 영국과 신속히 협상하였고, 1957년 8월 31일 드디어 독립하였다.
1961년부터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 브루나이를 말레이연방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책에 착수하였고, 1963년 브루나이를 제외하고 말레이시아연방을 수립하였다.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탈퇴하였다. 1969년 말레이인과 화인 간의 종족폭동이 발생하자 정부는 말레이인을 경제적으로 우대하는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을 실시했다.
1997년 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는 곧 말레이시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IMF의 구제금융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2003년 10월 마하티르는 압둘라 바다위(Abdullah Ahmad Badawi)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며 22년간의 장기집권을 종결지었다.
2. 말레이시아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