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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개론 - 한국 풍수지리학의 원전 ‘택리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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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지리학]이중환의 `택리지`에 대한 분석 및 배경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좌절의 생애끝에 저술된 역작 「택리지」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찾아서
문화생태학적 국토인식에서 출발
'이상향 찾기’에서 ‘이상향 만들기’로
본문내용
좌절의 생애끝에 저술된 역작 「택리지」
이중환은 1690년(숙종 16년) 당대의 명문인 여주 이씨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5대조가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래 고조부, 조부 모두 관직에 진출하였고, 아버지 이진휴도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가문이었다. 처가 역시 장인 목임일(睦林一)을 비롯하여 직계 4대가 모두 문과에 급제한 명문이었다. 또한 성호 이익과는 가까운 친척간(재종손)이면서, 연령 차이도 그다지 많지 않아 성호의 학풍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이중환은 당시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여건 속에서 성장하여, 24세 되던 해(1713년)에 증광시의 병과에 급제하면서 공직에 진출하였고, 이후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이중환이 34세 되던 해에 엄청난 시련이 닥쳐 왔으며, 이후 그의 인생 행로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병조 정랑으로 있던 1723년(경종 3년), 그는 목호룡 사건, 즉 신임사화의 주범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였고, 노론측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여, 결국 사형은 면하게 되고 1726년 12월 외딴 섬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1727년(영조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