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학 민족지 학과 민족지 학적 설명 기술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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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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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술 인종학(-이하 민족지학)은 특정한 만남들, 사건들 그리고 상호 이해들을 다듬는 직공, 즉 좀더 의미있는 문맥으로 배치하는 계속적인 시도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정보나 조사 데이터의 산출물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보나 데이터들이 어떤 문서나 시각적 형태로 전환되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결과 민족지학은 조사계획, 실지조사(현지조사) 그리고 인간 삶들의 역사적, 정치적 그리고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설명들, 기술들, 해석들과 표현들을 생산해내기 위한 연구의 다양한 방법들을 결합시킨다. 어떤 기입의 실행으로서 기술인종학은 영역내에서 지난 경험들의 명백한 기록이라기 보다는 현지조사의 연속이다. 현지조사의 진행적인 성격은 중요한 개인적 경험들을 어떤 지식의 분야로 연결한다.; 그 결과 민족지학은 자서전의 내부성과 문화적 분석의 외부성 사이에 위치한다. 민족지학은 과정과 결과 둘 다이기 때문에 민족지학자들의 삶들은 모든 그들의 상호작용들이 도덕적인 선택들을 수반하는 그런 방식으로서 그들 분야의 경험들 내에 깊이 박혀 있다. 경험은 의미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이런 의미 있음에 의해 생성되어지고 알려지는 것이다. 민족지학자들은 지역적 그리고 의미론적인 경계들과 한데 얽힌 목소리들을 통한 유행적인 문화들 그리고 문화적 이해들 모두를 고찰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영웅처럼 보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그들은 그들에 어울리는 언어와 행동들을 점차 취득해 가고 있는 과정에서 내부인들의 옷을 입은 아웃사이더(이방인)들, cross-dresser(이성의 옷을 입은 사람들)들이다.
인류학내에서의 한 방법, 이론적인 예비교육, 그리고 심지어 철학적 패러다임으로서 오랫동안 간직되어온 민족지학은 최근에는 문화적 연구들(교양과목), 문학이론, 민속학, 여성학, 사회학, 문화 지리학, 그리고 사회 심리학에까지 (원칙적으로는 유용한 방법학으로서) 확대되어져 왔다. 기술인종학은 또한 교육, 카운슬링, 조직연구, 계획, 임상 심리학, 간호학, 정신치료, 법률, 범죄학, 경영학, 그리고 산업엔지니어링등을 포함한 수많은 적용되어진 분야에서 유용성이 입증되어 왔다. 그것이 채택되어지는 곳마다, 기술인종학자들이 어떤 다른 접근을 이용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일상의 삶속에서 사람들(한사람 그 자체 내지는 다른 사람)과의 접근과 비교적 장기적으로 상호 접촉함으로써 기술인종학자들의 주제(피지배인-현지인)들의 신념들과 동기들과 행동들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가정이 되어져 있다.
◆ 기술인종학의 간략한 역사적 고찰
지난 2세기가 넘게 인류학자들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민족지학의 방법들을 이용해왔다. 19C후반에 과학발전을 위한 영국협회(The 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for science)는 인류학에 대한 주목들과 질문들(Notes and Queries on Anthropology)(1874)을 출판하였다. 이 회보의 목적은 이론가들이 여행자들로서 정확한 인류학적 관찰력을 가지게 끔 도와주기 위해서 였고 또한 인류학자들이 아닌 사람들 스스로에게 편안히 인류학의 과학적 연구에서 요구되는 정보를 공급해 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다. 민족 중심적인 사상들(자문화중심적인 사상)들과 유도심문들로 가득한 이 회보는 여행자들, 상인들, 선교사들 그리고 정부관료들에게 배포되어졌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교박물관 관장이며 인류학 강사인 Edward Tylor는 초창기 질문사항들을 교정하는 것을 도왔지만 얼마안가서 좀더 기대되는 결과들의 몇몇은 정규과학자들에 의해 ‘개인적인 조사’에 종속되어져야(포함되어져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Shocking,1983,p73) 그 결과 그는 캐나다 자치령의 북서부 종족들의 육체적 특질들과 언어들 그리고 산업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보고서를 조사하고 출판할 목적으로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Tylor 1884) 비슷한 회보가 James Frazer에 의해 나왔는데 그것은 미개화 내지 반개화 민족들의 양식들, 관습들, 종교, 미신들 등에 대한 질문들(1887)이다. 그의 팜플렛은 The Golden Bough (1890/1981)에서 그 자신의 비교조사를 알기 쉽게 하려는 표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그 자신의 이론들(Richards)에 대한 적합한 종류의 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하여 구성되어져 있다. 조사 방법으로 질문사항들의 초창기 성공적이지 못한 사용은 자신들만의(아마 더 신뢰성이 있을 수 있지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그들만의 현지조사를 착수하는 학자로서의 어떤 욕망에 기인한다.
직접적인 학술적 “현지조사”의 새로운 개념은 Alfred Cort Hadden에 의해 현장 자연주의자들의 논문들로부터 이끌려나왔다. 1903년 런던에서 그의 인류학 학회의 회장연설에서 그는 현장에서의 신선한 조사보고들이 필요한 긴박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견본들을 수집하는 것 뿐만아니라 꾸준한 공감대에 의해 원주민들에게서 수집된 자료들의 더욱 깊은 연관성과 의미들을 얻어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연구자들에게 강조하였으며 또한 “급진적 수집가”들에게 충고하였다.(quoted in Stocking, 1983) 공감적인 방법을 이용한 그의 생각은 벌써부터 북미에서 표준 관습이었다. Matilda Cox Stevenson, Alice Fletcher, Franz Boas, 그리고 Frank Hamilton Cushing에 의해 미국 원주민들에게서 실시된 현지조사 덕분에 다른 문화들의 경험적으로 수집된 지식의 모델이 공론(空論)에 의한(경험하지 않은) 방법들을 바꾸어왔다.(Vieweswaran, 1998) 뉴멕시코(1879-1884) Zuni Pueblo에서 Cushing은 그의 고용주인 Smithsonian 학회(학술기관)의 Spencer Baird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나의 방법은 반드시 성공한다. 나는 인디언들과 같이 살고 나는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집에서 잔다.... 신께 감사하게도 이것 덕분에 내 노트들은 다른 모든 탐험가들이 전달에 실패하여온 것들을 많이 담을 것이다."(Cushing 1979)
비록 초기의 민족지학자들 중에서 Cushing이 그의 주제(피지배인-현지인)들의 진행적인 삶속에 그 자신의 직접적인 참여가 그의 방법의 기초였다는 사실을 깨닫았을지라도 그것은 패러다임 또는 이론으로서 공식화하는 현지조사를 공헌한 사람은 Bronislaw Malinowski이다.(Firth,1985) 그렇지만 현지조사의 실행은 분명히 Malinowski에 의해 창안되지는 않았다. : 그가 정확히 이룩한 것은 새로운 장르로써 “민족지학”의 중심적인 요소로서 현지조사의 안착이였다.(Rainbow,1985) Malinowski(1922)가 민족지학자의 목표는 “관찰을 원주민의 관점”에서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이래로 “참여하는 관찰”은 한 내부자 또는 원주민으로서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심지어 때때로 행동하는 현지조사자의 배움을 통하여 인간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 왔다. 연구자들이 그 또는 그녀가 연구하는 사회에 들어가는 입구를, 그리고 그 사회에 의해 적어도 부분화된 사회화를 취득하는 경험적 접근법의 강조 때문에, 현지조사자가 “주변적 원주민”(Freilich,1970) 또는 “전문적 외부인”(Agar,1980)의 태도를 채택하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왔다. “자기부정의 밀사”로서(Boon,1982) 현지조사자들은 그들이 연구하는 사회적 환경들에 관해서 민족지학을 공표한다. 이러한 역할들에서 민족지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로부터 예의바른 간격을 유지하기를 기대되어졌고 우정이 아닌 관계; 동정(기분을 같이함)이 아닌 연민(괴로움을 같이함); 믿음이 아닌 존경; 동일시가 아닌 이해; 사랑이 아닌 찬양을 양생하는 것을 기대되어졌다. 만약 조사자들이 우정,동정,믿음,동일시 그리고 사랑을 양생 했다면 그러면 소위 말하듯이 그 또는 그녀는 “완벽한 멤버쉽”(Adler & Adler,1987) 또는 “현지인화 됨”을 따라잡기에 힘쓸 것이다.
“현지인화 됨"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창조되어지고 그리고 역시 식민지 주민을 대표하는 깊이 인종차별화된 논문 내에서 찬양되어진 19C후반의 식민지 픽션에서 나타났다. 비록 식민지 개척자들이 진화론적인 문화적 그리고 인종적 계급들의 꼭대기가 됨으로 보여질지라도 그들은 역시 이 정점(계급의 꼭대기-타락)으로 전락함을 서슴치 않는 것으로 형상화되어졌다. 타락, “현지인화 되는”, 또는 그것의 과도한 형태내에서 즉 “진행되는 지나침”은 열대지방에서 백인 여행자와 거주자의 이야기들에서 일상적인 주제가 되었다.(Eves,1999; Pick,1989; Young,1995) 이런 종류의 두 가지 고전 이야기들은 Joseph Conrad의 Heart of Darkness와 Jack London의 The Call of the Wild이다. Kurtz의 미개인으로의 강등에 대한 Conard의 묘사에서 그는 외국 땅에서 식민지 이주자들의 약점을 누설한 타락에 대한 한 이야기를 생산한다. 많은 기술 인류학자들처럼 London의 등장인물들은 그 지방들에서 행하는 대로 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옷, 시계 그리고 라디오와 같은 물질적인 물건에서 부여된 식민지 특권, 권력 그리고 권한의 징표들을 유지한다. “현지인화 되는” 그들의 방식은 표면적인 장식물의 채택과 문신과 같은 지방고유의 다른 문화적 명각들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타락을 통해서이다.
"현지인화된 현지 조사자"의 초기 민족지학적인 사례들로 Alexandra David-Neel, Curt Unkel 과 Verrier Elwin을 포함한다. 이들 유럽 민족지학자들( 각각 프랑스인, 독일인과 영국인) 토착민들의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20세기초기에 현지에 갔다. 그들은 그들 인생의 대부분 또는 남은 일생의 전부를 그들 무리의 언어들을 유창하게 말하면서 보냈으며 그리고 그들의 문화들과 깊은 일체감을 가지며 머물렀다. 스리랑카, 인도, 네팔, 시킴, 일본, 중국과 티벳에서 14년 이상을 살아온 David-Neel은 모든 티벳 사투리를 포함하여 수많은 비유럽 언어들을 말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