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건축도시적 특성을 통한역사적해석로마의 도로와 수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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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 로마 건축도시적 특성을 통한역사적해석로마의 도로와 수로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미국의 유명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Cortelyou Johnson)은 “우리는 역사를 아니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저명한 인문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닌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이러한 언급을 했다는 것은 이색적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건축은 복잡한 주제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축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혹은 네 가지 측면을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인문적 상황, 건축적 실재, 건축적 형태, 건축적 의미이다. 인문적 상황은 주어진 문화적 상황이다. 이것은 지리, 기후, 사회, 경제, 정치, 기술, 종교, 철학,과학, 예술, 교육의 상황과 더불어 특정한 문화를 구성하는 그 밖의 상황들로 구성된다. 각 문화에는 정신적 영역에 속하는 잘 규정된 가치와 열망, 곧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모든 건축 디자인의 시작과 끝은 육체적, 정신적 욕구를 갖는 인간이어야 한다. 건축적 형태는 의미의 전달자 혹은 표현자로써 건축가의 과제는 인문적 상황, 곧 문화적 상황에 내재하는 정신적 가치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적 의미는 특정한 문화에 내재하는 잘 규정된 가치와 열망으로서, 건축가는 건축 형태를 통해 이를 표현한다. 이렇듯 의식주로 표현되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건축은 BC 8000년 시작된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인간의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요소와 무관하지 않으며 함께 변화해왔다. 앞에서 나온 바와 같이 건축은 그 시대 인간 생활의 물리적 반영이며 유적(건축물, 도시)에 대한 현대의 해석을 통해 당대의 생활사를 추론할 수 있다. 이는 시대의 건축적 양식(style)을 통해 나타나며 역사적으로 시대의 수법을 찾아내고 이를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의 관심사가 되어 있듯 하나의 문화를 규정짓는 스타일이라는 용어는 그 시대의 전반적인 인문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건축적인 역사에 대한 서술과 로마 도시의 혁신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도로체계와 수로의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2. 도로의 특성과 역사적 의미
폼페이에 있는 로마의 거리
(1) 도로의 구조
로마의 도로는 수로와 함께 고대 서양 토목기술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이러한 도로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큰 돌을 가지런히 놓은 다음 그 위에 잘게 부순 돌을 덮고, 그 위에 다시 자갈이나 일정한 크기의 사암을 깐 후 이를 화산회(화산재)로 굳혔다. 지방에 따라서는 판석(널돌)을 깔아놓은 것도 있었다. 아피아 도로는 세계 최초의 포장도로이면서, 가장 잘 정비된 로마 도로로서 유명하다.
도로의 폭은 보통 5~10m, 산악지대의 경우 2~2.5m 정도로, 직선을 이루었고 길의 양쪽에 배수구가 설치되기도 하였으며, 도로 맨 윗면의 가운데 부분은 약간 높게 만들어 빗물이 양옆으로 흘러가게 하였다. 도로 양쪽의 인도는 도로보다 15cm정도 높게 만들었는데 이는 탈것이 인도로 굴러 들어가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또한 낮에는 건축 자재를 운반하는 용도를 제외한 모든 수레와 마차의 통행을 금지해서 물건은 밤이나 새벽에만 운반할 수 있었다. 길 위의 돌은 탈것의 속도를 제한시켰으며 이런 길에서는 짐승도 빨리 달릴 수 없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로마의 도로는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로에는 약 2m정도 높이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는 수레를 타고 달려오면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것으로 대개 가까운 도시까지 어느 정도의 거리가 남아 있는 지, 도로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간선도로의 이름은 대부분 건설자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2) 도로의 이용
로마는 비록 노예제 사회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도로에 대한 관점에서는 대단한 평등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특히 다른 고대제국들의 도로에 관한 통치철학이 보여주는 폐쇄성과 비효율을 아예 시작부터 극복하고 있다. 로마는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안에 있는 자들이 이 도로를 이용하도록 했다. 군인, 순례자, 병자, 사상가, 학자, 창녀, 사기꾼, 범죄자들이 이 도로를 통해 이동했고, 심지어 침략자들이 이 도로를 이용할지라도 그들은 자신 있게 밀어붙였다. 이러한 도로는 다음과 같은 용도로 이용되게 되었다.
1) 정치적/군사적
도로는 처음에 소금을 운반하기 위한 길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로의 개념은 기원전 4세기경, 로마의 번성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행정적 의미가 커지게 되었다. 즉, 전쟁이 났을 경우에는 수많은 군대와 보급품, 무기를 나르는데 있어서 더욱 편하고 빠르게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들은 제국의 군대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으로 변환 배치할 수 있도록 도로망을 네트워킹하고 이것을 시스템으로 완성해 가동했다. 그 결과 로마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인 정복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비난트 클라센 저 심우갑, 조희철 역. 2003. 『서양 건축사』 53-72
구은성. 1988. 『고대 로마 건축의 기하하적 구성 질서 및 비례에 관한 연구』
신상화. 2004. 『로마-물의 도시, 돌의 도시, 영원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