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

 1  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1
 2  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2
 3  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3
 4  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4
 5  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일본적 자아 독후감_261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과 한국은 지역적으로도 가깝고 역사를 통해서도 떼어놓을 수 없지만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 말은 이제는 지겹다 싶을 정도로 들어왔다. 일본문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있었고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놓였다고 하는 국민적인 치욕 때문에 일본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한동안은 음성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부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은 우리에게는 쪽바리라고 비하되며 간사하고 이중적이며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류열풍과 함께 일본 열도를 휩쓸고 있는 ‘욘사마 신드롬’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역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도 일본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두 나라의 교류가 점점 활발해져가는 현 시점에서 일본인을 보는 시각이 과거와 똑같아도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인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점차 국경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나라사람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살펴보는 기회가 되며 자기반성과 그로 인한 자기발전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인 미나미 히로시는 일본인의 자아구조를 설명하기 전에 일본인이 갖고 있는 자아불확실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인은 수동적인 자아인 ‘객아’를 가지고 있고 이 ‘객아’는 자기가 자신을 볼 수 있는 ‘내적객아’와 외부에서 자기를 보는 ‘외적객아’로 나뉜다. 일본인이 흔히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불리는 이유는 ‘내적객아’와 ‘외적객아’ 중에서 외적객아의 의식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를 너무 의식한 자의식과잉이 ‘부정아(否定我)’를 만들게 된다. 이 부정아는 자아불확실감으로 이어진다. 이 자아불확실감은 대부분의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며 일본적인 자아구조의 기본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불확실감은 일본인의 타자중심주의 경향, 의지의 나약, 결정에 있어서의 우유부단함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아불확실감은 메이지 유신이 민중의 불확실한 자아의식을 촉발한 불충분한 의식혁명인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로운 사회와 그 속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는 자아형성과정을 통해 강화되어 왔다.
이러한 자아불확실감이 바탕이 되어 일본인의 자아구조에는 ‘집단아’가 형성된다. ‘집단아’는 스스로가 속한 집단의 목표활동과 내부의 인간관계에 깊은 친화감을 가지며 스스로의 자아를 집단과 일체화하는 것이다. 집단의 관계가 약한 것에는 레져집단이나 직장집단이 있고 관계가 강한 것에는 국가집단과 가족집단이 있다. 일본인들은 집단에 속함으로서 안정을 갖고 자신을 집단과 동일시하며 집단의 운명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이러한 일본인의 의식은 나라에 충성하고 기업에 충성한다. 가장 관계가 강력한 집단인 가족에서 가족아가 형성되고 이는 일본인이 운명공동체에 있다고 하는 것에 기초가 되었다. 가족아는 태어나면서부터 형성되며 이는 일본인이 모자의 일체감을 통해 자아의 안정감을 갖게 되고 이는 타자와의 일체감으로 연결된다. 결국 가족에서 시작하여 국가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의식은 전쟁 때 국민아라는 애국심과 연계되어 전의 고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일본의 집단 내에서는 인간관계의 조정을 위해서 의리와 인정이 중시된다. 인정은 의리에 의해 묵살되어도 관계없다고 생각되어 왔으나 의리는 인정의 뒷받침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의리와 인정의 균형은 자아불확실감에 영향을 미쳤고 의리와 인정의 불균형에 의해서 폭력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수치와 죄의 복합은 ‘그때그때주의’를 통해 각 상황에서 일본인이 자아불확실감을 경감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일본인은 자기자신을 비난하는 마조히즘과 타인을 공격하는 사디즘이 전쟁의 패배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자아의 불안감은 계속되었으며 자신을 패배시킨 서구에 대해 의존하려는 경향까지 보였다. 개인의 심리는 물론 사회의 심리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서 미래까지 영향이 계속될 혼란의 시대를 초래한 것이다.
일본인의 자아불확실감은 집단아에 형성에 의한 자아의 강화에 따라 경감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자아불확실감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일본인은 일상생활에서의 자아의 불확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서 어떠한 지위와 역할의 산대적인 관계가 성립하느냐를 상호확인하려 한다. 자아불확실감은 타인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리매김이 확실하지 않을 때 가장 커진다. 이러한 자아 불확실감을 제거하기 위해 인사나 명함교환, 선물증답의 방법의 방법을 통해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하려고 한다. 또, 여러 생활면에서 격매김을 중시한다. 일본인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 사상, 물품, 행위 등에 서열을 매김으로써 통해서 하나의 질서를 발견하고 안도감을 얻는다. 그를 위해 일본인들은 직업인을 격매김하여 직업의 귀천을 두고 경어를 쓰며 황실에서는 황실 용어를 쓴다. 이러한 일본의 사회는 반즈케(순위매김)사회라고 불린다. 이러한 숭위를 매기는 것에 있어 주목할만한 것은 서양 콤플렉스인데 메이지 유신 이래 서양에 대한 국민적 자조, 국민적 자책, 국민적 자숙은 계속되고 있으며 서양 숭배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의 자아불확실감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확실히 함으로써 집단아에 포함되면 안정감을 얻게 된다. 게다가 특정한 형에 막힌 행동을 반복하면서 그 형에 익숙해짐으로써 안정을 얻으려는 강박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사회를 ‘형(型)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형의 의식은 무조건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아는 행동이나 유행, 풍속이나 유니폼성에 영향을 미쳐 생활과 생활의 식의 획일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일본인들은 강박적인 경향을 보이며 이러한 경향은 노력에 의한 목적의 달성을 이루려고 하는 완전주의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일본인의 강박적인 경향은 정형화를 추구하게 되고 거기서부터 일상에 대한 행동의 규격화가 이루어지고 이 경우 생활을 여러 개의 장(場)으로 나누고 장마다 그에 적합하다고 하는 행동을 취하는 ‘그때그때주의’라고 하는 다원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일본인의 생활사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일본의 다원성을 일본의 종교, 기술, 예술, 과학 등은 물론 생활과 의식의 측면에서도 나타나며 이런 모든 것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 공재하는 것이다. 또, ‘그때그때주의’와 운명론의 결합은 상황에 순응하고 융통성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단념과 체념, 네와마시 혼네와 다테마에의 형태로 나타난다.
위와 같이 작가는 일본인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용을 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먼저 일본인은 과연 정형화되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현재 일본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제품이나 문화만 봐도 사람이 이런 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기발하고 획기적인 소재들이 많다. 과연 그러한 것들이 작가의 주장처럼 자아불확실감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일본인들이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식에 정형화라고 하면 각자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비록 일본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각종 매체에서 비춰주는 시부야 거리의 모습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성이 넘친다. 과연 저런 사람들에게 작가의 주장처럼 자아가 불확실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일본인들의 타인을 의식하는 태도이다. 일본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과 인간다움이라는 말로 너무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대중교통수단 안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식당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먼지를 피워도 전혀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 수업시간에 다른 사람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유로이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학생들…… .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 주변에서 타인의 시선을 얼마나 의식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찾기 쉬운 예라고 하겠다. 또, 일본의 집단주의에 대해서도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집단에 소속되면 그 집단에 성심을 다한다. 자신의 이득보다는 자신이 집단에 속한 이득이 우선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에 속해있지만 집단의 이득보다는 자신의 이득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나라의 대통령은 국가의 이득보다는 자신이 이득을 중요시하여 몇 천 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기업에서는 기술을 유출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등의 행위를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를 이룬 점이나 전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바탕에 집단주의가 있었음을 교훈삼아야 할 것이며 거기에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일본인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자아불확실감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들고 많은 예를 들었는데 내 생각에는 과연 자아불확실감 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분명히 책이 쓰여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사회가 매우 급변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자아불확실감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논리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일본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그때그때주의’에 빠져 모든 설명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