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선교사들의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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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알려진 바로는 네덜란드 사람 벨터브레가일행 두 사람과 함께 대만을 거쳐 일본 장기로 항해하다가 전라도 해안에 표착한 것이 처음으로 되어있다.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였고 그 국민들은 거의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신자였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2) 하멜(Hendrik Hamel) - 1653년(효종 4년)
동아시아에 교역을 위해 스파 베(Spar-wehr:Sparrow Hawk)호를 타고 일본 장기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다. 여기서 심문을 받는 중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서울에 통역관을 신청했는데 위의 벨터브레가 내려왔다. 억류생활 13년 만에 선박으로 탈주하였고 고국에 돌아간 이후에「표류기」,「한국에 대한 기술」을 저술하여 유럽에 한국을 널리 소개하게 되었다. 표류기의 끝부분(“불쌍한 동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크신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원하였다.”)의 기록으로 그가 개신교도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 맥스웰(Murray Maxwell)과 홀(Basil Hall) - 1816년 9월(순조 16년)
영국 군함 올체스트호의 선장 맥스웰(대령)과 라이라호의 선장 홀(대령)은 중국에 오는 영국 구왕의 사절 앰허스트를 천진하구까지 호위하여 왔다. 이들은 한국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고 해도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한국으로 항진하여 서해안 군산만 마량진에 정박하였다. 여기서 마량진 첨사인 조대복에게 여러 물물교환이 이루어 졌는데 물품 중 한문 성경이 한 권 있었다. 이것이 한국인으로서는 맨 처음으로 성경을 손에 쥔 사건이다. 한국 기독교 교회의 역사(서울: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2004) 92-96p.
* 위 의 사람들은 선교와 무관하게 한국 땅을 디뎠던 사람들이기에 한국에 먼저 왔다는 의미 외에 교회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2. 조선에 처음 온 개신교 성직자들 - 선교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
1) 칼 구츨라프(Karl G. F. Gutzlaff, M.D.)
프러시아아 계 의사이며 목사(루터파)이다. 그는 1803년 7월 독일 포메라니아지방의 피리쯔에서 유태계 독일인으로 태어났다. 독일의 경건주의 기독 교회사, 이레서원, 김영대 저, 558p-562p.
Bakers 신학사전, 엠마오, 번역:신성종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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