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역사 언어 한글교육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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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기독교의 역사 언어 한글교육계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내가 이 책과 수업에서 들은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약 10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수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저 기독교가 나타나서 유지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유지하는 데에 어떤 자세를 추구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의식들이 드러난다. 그 의식들은 신적인 어떤 것보다는 ‘인간의 삶’에 집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조건 기독교에 대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하고 그것을 강조했다. 나는 특히 이번 수업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 속에서 묵직한 것이 더 얹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묵직한 것은 나에게 짐보다는 내가 꼭 알아야 하는 무게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나, 이제까지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나에게는 말이다.
한국 기독교 그 출발점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징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19세기 말 조선은 집안끼리 벼슬들 독점하는 세도정치를 했고 과도한 세금을 걷거나 군대에 대한 비리가 무수히 많았다. 이로 인해 조세제도와 통치 질서가 붕괴하였으며 수많은 양민의 삶이 벼랑으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왕이 군대를 불렀는데 이때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를 부른 것이었다. 즉, 국민을 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한국 민중들은 이런 시대적 상황에 의해 큰 마찰 없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갈등 없이 받아들인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신앙의 내면적 동기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조선이 망하고 유학이 망하면서 한국에는 새로운 가치체제나 정치체제가 필요했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로 ‘동학’ 그룹이 탄생했고 또 다른 하나가 ‘기독교’ 그룹의 탄생이었다. 기독교 안에 있던 독립협회그룹은 서구 정신으로 만민공동회를 열어서 민주주의를 실현해보자면서 주도했는데, 이런 식으로 기독교로 이어지는 민주주의가 신앙의 내면적 동기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한국교회가 세워지고 당시 한국교회는 성서 번역과 전파를 통해 성장한 교회라고 하여서 성서에 따른 기독교라 불리었다. 더 앞선 얘기로 가보자. 한국교회가 세워진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외국에서 온 선교사 존 로스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들과 함께 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하려고, 동시에 한국 교육이 필수불가결하게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성서로 많은 이들에게 한글을 배울 기회를 주었다.
이를 조금 더 풀어서 써보면 그 당시에 불교와 유교의 경전은 한자로 되어 있었다. 한자는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읽지 못하는 언어였다. 즉, 불교와 유교의 경전은 교육을 제대로 받은 높은 지위의 자제들만 읽을 수 있던 것이었다. 평민들은 읽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서는 달랐다. 성서는 한글로 되어서 많은 이들이 배우게 하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성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한글을 알렸고, 민중을 계몽하였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성서에 따른 세계관을 보게 했다. 특히 성서에 포함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이야기와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로 고난 속의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구원과 해방을 향한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한글 성서의 출간과 보급이 한글이 대중화되는 데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렇게 한글 성서가 만들어지기 전, 선교사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지 못했을 때 권서인과 전도부인들이 대신 복음을 전파하고 한국교회를 설립했는데, 여기서 전도부인들은 여성 중심으로 봉사하는 교회라는 성격을 포함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즉, 유교 사상에 있었던 남녀차별을 깨트린 것이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인물에 동학의 방정환을 들 수 있다. 방정환은 평등개념보다 질서개념이 중요했던 유학 정신에서 벗어나 아이도 중요하다는 평등 개념을 내세웠다. 그래서 어린이날을 만든 것이었다. 또한, 유학에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의식을 내세우며 여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를 한국교회에서는 비판하면서 남녀평등을 내세웠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으로 어린 여자가 공부해서 3.1운동에 앞장선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가 뒤바뀐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한국교회 이후에 어린 여자가 공부할 수 있는 여자를 위한 학교를 지어졌다.
또한, 한국 교회의 신앙 유형에 대해 세 가지로 간단히 나누어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오늘까지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유교와 결합한 하나님 중심의 규범 신앙을 들 수 있다. 유교적 전통은 한국 교회 신앙에서 규범을 강조하게 했다. 그리하여 질서와 체계를 이루는 교회 구조를 형성시켰다. 또 경전을 존중하며 경전 공부를 강조하는 태도를 불러일으켜서 앞서 말한 성서 번역과 전파를 통해 성장한 교회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는 신앙 유형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로부터 생겨난 몇몇 보수적 교회들이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태도를 신앙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안 좋은 부분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동학과 결합한 예수 중심의 참여 신앙이다. 반외세와 반봉건적 혁명운동을 일으켰으나 군대로 인해 좌절을 겪은 이들의 일부가 그리스도교와 결합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식민지 시대에 민족 독립운동의 중심체로서 저항하며 투쟁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자기 의인화나 공로 사상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세 번째는 무교와 결합한 성령 중심의 번영 신앙이다. 이에 대해서는 수탈과 전쟁의 폐허에서 치유만을 찾는다는 것으로 불의한 역사 현실에 침묵하며 오직 교회의 양적 성장과 현세적 번영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문제점은 오늘날 되어서 실제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헌금을 걷는 오늘날의 교회를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서부터는 내 의견과 느낀 점을 더 자세히 쓰려한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100여 년 동안 우리 곁에 나타나 여러 형태로 변모해왔다. 처음에는 기독교의 바람대로 한국교회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워졌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새로운 나라’라 함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던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하물며 살기 좋지 않더라도 그들이 숨 트고 살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기독교가 추구한 그 새로운 나라를 초기에는 분명히 세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 간에 착취를 당했고, 한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 힘이 발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많은 사람의 힘을 모을 수 있었던 한국교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주의가 살아난 것에 있어서 한국 교회가 다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다른 매개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에 있어서 한 부분이 한국교회라는 것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한글을 널리 퍼트렸던 것 중심에 있었다는 것도 나는 놀라웠다. 솔직하게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땐, 너무 기독교에 기댄 과장한 해석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성서를 퍼트리기 위한’ 이라는 그들의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이 의견에 대해 의심만 하기보다는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기독교에 기대어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목적이 있었기에 거기서 더 나아가 또 다른 목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민족의식도 고취할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들이 초기에 ‘한국교회’를 세운 긍정적 영향이 현재까지도 모든 곳에 지속 되어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내가 갔던 교회에선 나이 드신 노인분들의 돈과 몇 푼 안 되는 아이들의 용돈으로 매일같이 헌금을 걷었고, 그런 방식으로 적극적인 신앙심을 보인다면 천국에 간다는 얘기를 거기에 있던 나를 포함한 기독교도들을 현혹하기에 바빴다. 물질에 의한 정신적 물질적 착취가 지금에서야 잘못된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혹여나 교회에 있는 분들의 심성이 착하다 하더라도 그 행동 자체가 부패한 한국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현재의 한국교회 대부분의 모습이 이러하다. 안쪽에서 이런 식의 잘못된 믿음이 뻗어지고 있고 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잘못된 신념으로 이상한 피켓 시위를 벌이는 등의 일들을 예를 들 수 있겠다. 물론 모든 기독교도들의 의견은 아니지만, 그런 잘못된 믿음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그저 받아들이기보다 비판하고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교회가 세워지게 된 계기를 떠올리며 옳은 신념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교가 1/4이 된다고 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 많은 숫자가빠르게 잘못된 교리에 빠져든다면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인 ‘계몽 정신’을 현재 ‘한국교회’에서 써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즉, ‘한국 교회로 돌아가기 위한 계몽’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바꾼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원래 하느님의 말씀이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의식시킨다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고난을 겪는 이들을 돌보려 했던 하느님. 그런 하느님의 옳은 뜻에 따라 행동을 바꾸고 올바른 믿음이 넓게 퍼지고 진짜 ‘한국교회’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종교로 다시 바뀐다면, 교회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지금의 ‘한국교회’는 과거의 민주주의의 상위에 있었던 것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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