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의미 술 사찰과 탑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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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통일신라 의미 술 사찰과 탑 중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삼국시대의 미술을 종합하여 세련되고 풍요로운 미를 발전시켰으며 우리나라 미술의 황금기를 이루었고 불교미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미술은 무르익은 기교의 산물이었다. 특히, 이 시대의 미술은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면서도 실물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상적인 미의 세계화 통일된 조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하였다.
통일 신라의 대표적인 예술 작품은 석굴암과 불국사이다. 석굴암은 그 안에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보살상, 나한상, 인왕상 등을 배치하여 불교 세계의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 치밀한 구성을 밑받침으로한 정제미는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이나 조각 또는 과학 기술의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불국사는 토함산을 배경으로 넓게 트인 앞을 내다보고 세워졌는데, 목조건물은 임진왜란 때에 불타 버렸으나, 석조물과 기단은 지금까지 남아 있어 신라 불교 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앞쪽에 있는 청운교, 백운교 등의 돌층계와 범영루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과 다보탑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범종의 주조 기술도 뛰어났는데, 상원사 동종은 가장 오래 된 것이고, 성덕 대왕 신종은 크고 웅장하면서도 조각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소리의 아름다움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고 태종 무열왕릉비의 이수와 귀부의 조각, 성덕 대왕릉 둘레들의 조각은 사실적인 미를 나타내고 있으며, 불국사의 석등,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도 박력이 있고 균형이 잘 잡힌 조각으로 이름이 높다. 한편, 통일기에 와서는 높은 기단 위에 3층 석탑, 화엄사 4 사자 3층 석탑 등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걸작이다. 그리고 신라 하대에는 선종이 유행하면서 조각 솜씨가 뛰어난 부도가 많이 만들어졌다. 통일기에 와서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 방법이 유행하였고, 고분 양식도 돌무지 덧널무덤에서 굴식 돌방무덤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무덤의 봉토 주위를 둘레돌로 두르고, 그 둘레돌에 12지 신상을 조각하는 새로운 양식이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묘제이다. 이러한 통일 신라 시대의 묘제는 뒤에 고려, 조선 시대의 왕릉에까지 계승되었다. 한편, 서예에서는 김인문, 김생 등이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김생이 유명한데, 고려 시대에 그의 글씨를 모아서 새긴 집자 비문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또, 그림에서는 화가 김충의가 당에 가서 이름을 날렸다. 하대에 와서는 불화뿐 아니라 귀족이나 승려들의 초상화도 그려졌다.
Ⅱ. 통일신라의 건축
통일신라에는, 왕실과 경향귀족들의 비호를 받아 전국 도처에서 사찰과 불탑이 세워지고, 국토 통일과 함께 문화적 융합도 함께 이뤘다. 통일 초기의 석탑에 있어서도, 신라적인 요소와 백제적인 요소가 결합된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한다.
전체적인 석탑의 형태로 본다면, 시대가 흐를수록, 석재의 결합이 간결해지고,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는 형식이 일반화 되며, 대신 탑의 규모는 삼국시대보다 작아졌다.
1. 불국사
원래 2000칸이 넘는 큰 가람으로 청운교, 백운교의 아름다운 구름다리 층계와 쌍탑의 조화등 세련된 통일신라 의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다.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토함산 서쪽 중턱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 불국사는 심오한 불교사상과 천재 예술가의 혼이 독특한 형태로 표현되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불국사는 사적 제50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불국사는총 4개로 구분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