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의 예술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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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 벽화의 예술과 철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결코 어떤 단순한 회화가 아니어서, 이 벽화를 보면 저절로 “아! 고구려”를 외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뭔가 철학적으로 규명하긴 어려워도 우리를 경탄케 하고 압도하며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고대 한국인의 정신적 원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거기엔 고대 한민족의 예술혼과 정신문화며 한국 고대철학의 의미가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벽화가 그려진 고분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만큼 아주 훌륭한 독창성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분명한 문화적, 사상적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그 예술적이고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심오하고 신비롭게 그려내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범상치 않는 철학적 테마가 그려져 있다. 생활세계의 철학, 축제에 대한 예술철학, 고향과 귀향의 철학, 죽음의 철학,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신선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초월자에 관한 철학, 원시도교의 철학, 문명창조론, 우주론(‘사방’으로서의 코스모스), 불멸론 등등 세계철학사에서 굵직하고 심오하게 다뤄지는 테마들인 것이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철학과 종교의 "피할 수 없는" 과제(칸트)인 인간의 불멸성과 자유며 초월자의 존재에 관한 성찰은 한국 고대철학의 깊이를 재조명하게 한다. 특히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는 전승된 원시도교의 사상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유입된 유, 불, 도와는 차원이 다른 한국의 자생적인 고대철학을 확인케 한다. 고분벽화에 드러난 존재론, 우주론, 인간론, 내세론, 불멸론 등에 관한 심오한 철학적 사유는 고대의 한국이 외국으로부터의 학문적, 종교적 영향 외에도 독자적인 문화와 철학을 갖추고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게 한다. 윤병렬,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한국의 고대철학』 철학과현실사, [2008]
2. 고구려의 상상과 철학에 대하여
(1) 고유 신앙적 상상
‘동맹’ 이란 고구려에서 해매다 국가적 규모로 치르던 시월제천(十月祭天)행사로 ‘수신(遂神)을 모시는 행사였다. 이것은 고구려의 사회규모가 커지면서 생기게 되는 여러 가지 갈등의 요소들을 해소하고 사회적 결속력을 높이는 역할까지도 해주었다. 이 수신은 천신(天神)과 함께 제사되는 대지의 신인 지모신(地母神), 곧 수신의 하백녀(河伯女)로 추정하기도 하며 때로는 하늘의 신인 천제(天帝)로 보기도 한다. 재인용, 전호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이야기』, 풀빛,1999, p.43
또한 건국초기에는 자연우상 숭배사상 외에도 시조신(始祖神)을 숭배하였다. 이는 바로 민족구유의 소박한 종교 신앙이며 경천(敬天)신앙으로 뿌리 깊게 자리하게 된다. 또한 고구려인의 재래(在來)적 내세관은 ’영혼불멸(靈魂不滅)의 사상으로 죽은 후에도 현실과 똑같은 삶을 이어간다고 믿었다. 묘주(墓主)의 생전의 생활상을 벽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하여 묘주의 현세의 생활이 사후에도 영속되기를 바라는 사상이었다. 서승호, 「고구려 벽화를 통해 본 한민족의 삶과 사상」, 단국대학교, [2009]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재래적 내세관도 변하게 되는데 불교의 영향과 함께 고구려인의 재래적 내세관은 불교적 내세관으로 그 면모를 다지게 된다.
(2) 불교적 상상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온 것은 372년 소수림왕 2년에 진나라왕 부견(전진의 제3대왕 재위357-385)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시켜 부처와 불경을 보내왔고, 374년에는 다시 승려 아도(阿道)를 보내왔다. 그래서 고구려에서는 375년에 처음으로 초문사(肖門寺)를 짓고 아도를 두었다. 이때부터 고구려에 불교가 성행하기 시작하여 391년에 와서는 고국양왕이 전국에 명령을 내려 불교를 믿게 함으로써 불교관념론적인 철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여러 유파의 불교 중 삼론종(三論宗)이 가장 많이 연구되었는데 이들은 모든 현실을 다 부정하면서 이 세상에는 진정한 행복이나 평등은 없으며 죽어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양만 참다운 행복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불교적 내용은 환상적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표현, 즉 그림으로써 미래의 극락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죽은 후에 조상들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이전의 사상과는 달리 불교의 하늘세계나 낙원인 정토(淨土)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이른바 재래의 계세적(繼世的)내세관에서 불교의 전생 및 정토 환생적 내세관으로의 이행을 나타낸다. 벽화에서 표현된 연꽃무늬나 예불도 여러 보살상들이 불교의 전래와 관련지어진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위의 글, p.10
(3) 유교적 상상
다음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종교사상은 숙명론적이며 천명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념론적 사상에 기초를 한 유교사상이다. 유교는 산강오륜의 교리아래 왕도 정치를 설교하는 사상으로 고구려인들은 이 왕도 정치 즉 군주제일(君主第一)주의의 권위와 자손만대의 계승을 위하여 군주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봉건제도를 확립했다. 고구려 귀족 사대부들과 유학자들이 관념론적이라고 신비화된 음양오행사상을 자신들의 권익에 이용하였던 흔적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음양오행사상이란 한(漢)대에 극히 성행한 일종의 우주론 적인체제로 궁극적인 존재인 태극이 양과 음이라고 하는 양극을 낳고, 이 양극의 상호작용에 의해 차례로 다섯 가지 원소(오행)가 생기고, 이 오행(五行)으로부터 삼라만상이 생성된다는 사상이다. 이와 같이 고구려인들은 오행사상을 그들의 세계관, 즉 우주의 형성원리로 많이 이용하여 하나의 관념론적인 견해를 벽화에 이용하였다. 즉 고구려 벽화 속 천신은 음양오행의 변화를 통하여 만물과 인류를 생산케 하고 통제한다고 하여 음양의 대림과 오행이 서로 극복한다는 상생상극(相生相剋) 관념을 가지고 사회와 역사의 길흉화복을 해석하는 숙명론적인 신비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유교적 철학사상의 표현이다. 예를 들면 완이나 귀족의 무덤을 축조할 때에 방위나 위치, 고분 내에 장식하는 그림의 내용을 모두 오행사상과 결부하여 오행방위신인 사신(四神,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을 그렸는데, 이는 예부터 중국에서 전해오는 유교적이고 도교적인 사상으로 왕이나 귀족이 죽은 후에 그 혼령에게 잡귀가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였으며, 이러한 고구려인들의 오행사상은 우주의 형성원리로 많이 이용되어 벽화에 표현 되어졌다. 위의 글, p.14
(4) 도교적 상상
참고문헌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 (The) replicas of Goguryeo tomb paintings』
국립공주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 [공]편. 2004.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전호태. 사계절, 2000.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한국의 고대철학』 윤병렬, 철학과현실사, [2008]
서승호, 「고구려 벽화를 통해 본 한민족의 삶과 사상」, 단국대학교, [2009]
이경숙,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연화의 양식적특성과 상징성에 관하여」,
대구대학교, [2005]
최혜진, 「6~7세기 고구려 사신도 고분벽화의 특징과 의미」, 부산대학교, [2012]
남선주,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춤에 관한 연구 : 신화 해석을 중심으로」,
경성대학교 교육대학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