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보며 한국을 반성하다

 1  일본을 보며 한국을 반성하다-1
 2  일본을 보며 한국을 반성하다-2
 3  일본을 보며 한국을 반성하다-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일본을 보며 한국을 반성하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전쟁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인류의 발전이 전쟁덕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전쟁의 결과 그 이후에 승전국이 패전국 국민에게 노예취급을 하며 강제징용, 강제동원등의 행위를 저지른다. 그 과정에서 과연 패전국 국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접을 받았는가? 극단적인 예로 2차 대전당시 유대인들이 게르만민족에게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인의 징용문제는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도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중요하고 큰 사건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특히 재일제주인과 그 사건에 대하여 아직 그들의 유족이 남아 있고, 그 당시의 생존자분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진상 규명에 대한 노력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한국인 징용문제를 다시 생각한다.’이다. 허향진 총장의 환영사에 나와 있듯 오늘의 주제가 지금의 일본영토로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중국의 해남도, 러시아의 사할린에 그 범주를 넓혔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일제의 대륙침략이 동아시아 전체에 광범위 했다는 점이,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에 가해국인 일본을 제외하고 피해국끼리의 공동대응을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또, 역사라는 것은 결국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국가 일본은 1868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식민지와 점령지를 확대했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자 한국을 보호국가로 삼아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전쟁한번 해볼 힘도 없었기 때문에 외교권을 공짜로 갖다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10년 조선을 완전히 병합시켰고, 1920~40년대 미국과 전쟁을 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나는 세미나를 보며 한양대 정병호 교수가 기억에 남았다. 젤 처음에 상영했던 다큐멘터리 ‘길고 긴 잠’에서 주연역할을 한 분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그 분이 가장 실천적인 행동을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제대로 사과를 받자’는 목표를 세웠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한국 국민들에게 일제강점기 당시 비참한 현실을 각인시켜야 하는 것일 것이다. 일본입장에서 한국이 사과를 하라고 하는데,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사과를 해야 할 명분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고, 지금 일본처럼 대충 100억 받고 끝내라는 식의 태도를 유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자국의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불행했던 역사를 자꾸 상기를 시켜주고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병호 교수는 2015년 추석 무렵에 태평양 전쟁 중 홋카이도의 일본군 비행장과 댐 공사장, 탄광에 끌려가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골 115구를 한국으로 모시고 왔다. 그들은 70년 만에 장례식을 마친 후 서울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러한 행동 자체가 대단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일제의 행위에 대한 한국민들의 의지를 보여준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를 1,000억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면서까지 인양하는 것은 순전히 미수습 시신 10구를 수습하는 것도 있지만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정병호 교수가 행했던 유골들의 귀환역시 겉으로 드러난 행위보다는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중요하고, 이러한 행동은 사실 일본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인상 깊었다.
세미나를 보며 계속 들었던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미나 현장에 계셨던 일본인들이 참 용감한 분들이라는 것이다. 약 100년 전 자국에게 당한 타국민들의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행동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입자에서 가해자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지만, 가해자가, 그것도 본인이 하지도 않은 윗세대들의 행위에 대해 본인들이 반성하고 후속 대책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을 조금 보태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서 일본에게 계속적으로 사과하라고 외치는 한국이 본인들이 가해한 일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지 알아보았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있다. 1966년 12월 3일, 430명이 학살된 빈호아 마을 학살 현장에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에 기억하리라”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증오비가 서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은 어떤 외교적 행위를 하였는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유감’ 표명은 있었지만 국방부를 통해 양민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본인들의 잘못은 사과하고 있지 않으면서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을 제3자 입장에서 본다면 어떠한 생각이 들겠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나는 한국인으로서 자국의 반성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한일기본협정당시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및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하기로 합의를 보았고, 1965년 당시 한국의 총 국민총생산(GDP) 30억 달러의 20%가 넘는 금액을 지원했기 때문에 떳떳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본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공식 인정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후속대책이라는 것을 진행하고 있지 않고 있다. 가해자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하면서 본인들이 가해한 일에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이중 잣대의 시선으로 문제가 된다. 분명히 한국정부와 국민들도 행동변화를 해야 한다는 반성이 들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주변국들이 워낙 강대국이라 그렇지 60년 전 전쟁으로 황폐화 된 나라였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성장속도이고 큰 규모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젠 한국이 남을 괴롭힐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한국인들이 텃세가 가장 심하고 이야기한다. 그 뿐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음에도 본인이 나서면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벌을 내 생애에서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죽하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한국인 징용문제는 다른 사건이 아니다. ‘남들보다 우월한 권력을 가진 인간이 윤리의식을 지니지 못했을 때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국제정치는 약육강식의 질서로 돌아간다. 일본에게 우리가 당한 것도 결국 나라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나라의 힘이 쇄락한 이유로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꼽힌다.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라가 힘이 세야하고, 그 이후엔 국가의 힘을 타국에 남용하지 않는 윤리가 필요하다.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은 약소국이며 다른 나라의 눈치를 봐야하는 현실이다. 역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배운다고 배웠다. 조선이 일제의 지배를 받은 원인은 조선이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자비를 베풀기 바라는 것은 희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7년 6월의 한국도 사드배치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의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 윗동네에서는 심심하면 핵미사일 시험을 하고 있고 중국은 경제보복을 통해 우리에게 7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혔다. 나는 지금이 6,25이후 가장 큰 외교위기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배운 것은 ‘인간의 악함’이다.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인성을 가진 일본인들도 이 정도 인데 다른 나라 같았으면 더 심했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베트남전쟁당시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도 나의 속마음을 모르겠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란 존재는 공부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