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과학 > 한국사 > 한국문화사학회 > 문화사학
順天 超然亭에 대한 考察 -
분야 인문과학 > 한국사
저자 崔仁善
발행기관 한국문화사학회
간행물정보 문화사학 2012년, 文化史學 第37號, 93page~124page(총32page)
파일형식 1899810 [다운로드 무료 PDF 뷰어]
판매가격 6,000원
적립금 180원 (구매자료 3% 적립)
이 자료를
논문의 미리보기 2페이지를 PDF파일로 제공합니다.
 
연관 논문
전북지역(全北地域) 루정(樓亭)의 종합적(綜合的) 고찰(考察) : 전북(全北) 정읍(井邑)의 「고현내동각(古縣內洞閣)」에 대한 사회경제적(社會經濟的) 고찰(考察) -고현동약(古縣洞約)을 중심으로-
여수 흥국사 소장 ‘順天 大興寺 銅鐘’에 대한 고찰 - 銘文 分析을 中心으로
韓國 狂歌의 考察 -
광양 마로산성 출토 막새기와에 대한 고찰 -
順天 松廣寺 木造觀音菩薩坐像 腹藏 服飾에 관한 考察 -
 
 
목차
부제 : 順天の超然亭に對する考案
요약
Ⅰ. 머리말
Ⅱ. 초연정 관련 자료 검토
Ⅲ. 초연정이 위치한 왕대마을의 유래
Ⅳ. 초연정의 연혁과 기능
Ⅴ. 맺음말
【日文要約】
 
 
국문초록
순천 超然亭은 모후산의 동쪽 골짜기 깊은 곳인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 누정은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다가 2007년 12월 7일에 ‘순천 초연정 원림’으로 문화재청에서 ‘명승 제25호’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시켜 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왕대’란 마을의 유래는 옛날 군왕이 난을 피해 이 마을에 잠깐 머물렀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초연정 아래 암벽에 ‘王垈事蹟’이란 금석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여기서부터 이곳이 군왕의 피난처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초연정은 1836년 趙齊亨의 5대손인 청류헌 趙鎭忠에 의해서 초가로 건립된 옥천조씨 節愍公派의 제각이었다. 조진충의 아들 在浩에 의해서 1864년에 중수되었으며, 초가를 기와지붕으로 바꾸었다. 그 후 초연정은 1896년과 1925년에 중수되었으며, 한국전쟁 때에 廢舍되었다가 1986년에 복원공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초연정에서는 1898년에 옥천조씨 문중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연재 송병선을 모시고 소학과 사서삼경의 경전을 강론하고 同遊하였다. 송병선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으로서 학행으로 祭酒에 기용된 뒤 書筵官ㆍ大司憲을 역임하였고,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志士였다. 이러한 송병선을 초빙하여 초연정에서 강론하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와같이 초연정은 옥천조씨 문중의 재각으로 건립되어 문각의 기능을 수행한 정자였다.
 
 
영문초록
順天超然亭は母後山の東の谷間深いところの,順天市松廣面三靑里王垈という村に位置している. この園林は1990年2月24日,全南記念物の第127號に指定ㆍ管理されてから,2007年12月7日には‘順天超然亭園林’として文化財廳の‘名勝第25號’で國家の指定文化財となり,人人の關心を集めている.
‘王垈’という村の名前の由來は,昔の郡王が逃げるためにこの村に滯在したことによると言われている. 超然亭の下の岩壁に「王垈事蹟」という金石文が刻印されている. この金石文には,ここが郡王の避難處であると具?的に記錄されている. 村に口傳されてきたことが,19世紀末に初めて記錄されたもので,具?的には恭愍王を指している. 恭愍王の避難處として,別の場所である和順維の摩寺が擧げられたのも,20世紀初盤からである. 恭愍王は‘王垈’と‘維摩寺’に避難した歷史的事實が全くないが,紅巾敵の侵入により,1361年(恭愍王10)に首都の開京を離れて福州(慶北安東)に避難したことがある. ‘王垈’と‘維摩寺’が位置している場所は母後山の深いところであるので,兵亂しを避けやすい環境を取り?えている. こういう自然環境のために國王の避難處だという話が作られ,時間を?て,具體的には高麗の恭愍王という王を指すようになったと推定される.
超然亭は,1836年趙齊亨の5代孫である淸流軒の趙鎭忠によって草家で建立された玉川趙氏の節愍公派の祭閣であった. 趙鎭忠は5代祖の祖父の墓所に春秋で祭禮をあげる日に多くの子孫が泊まるところがなかったので,祭禮を執り行なうための場所を作った.
趙鎭忠の息子の在浩によって1864年に修造され,草家を瓦家に?えた. 家紋もなくし,趙氏の家門の祭禮を執り行なうためのものに過ぎなかった建物に名前が付けられたのは建物の築54年がすぎた1890年であった. 趙俊燮の先生である淵齋宋秉璿は亭子を作った顚末と水石が秀でている点を聞いて“超然亭”という亭子の名前をつけ,家紋も書いた. その後,超然亭は1896年と1925年に改修されて,朝鮮戰爭時に被災したが,1986年に復元して現在に至っている.
そして超然亭では,1898年に玉川趙氏門中の儒生だちが中心になり,淵齋宋秉璿は小學と四書三經の經典を講論した. 宋秉璿は尤庵宋時烈の後孫で,祭酒として起用された後,書筵官ㆍ大司憲を?任して,乙巳條約が締結された後,亡國鬱憤を堪えることができずに自決した志士であった. このような宋秉璿を招聘,超然亭で講論できるようにしたのは注目するに値する. これはそれほど當時のここ,玉川趙氏門中の活動が表立っており,玉川趙氏門中の威勢が相當に高揚されたことによると考えられる. このように超然亭は玉川趙氏門中の祭禮しを執り行なうためのものとして建立され,門閣の機能を遂行する亭子であった.
 
 
순천 초연정, 옥천조씨 문중, 왕대 마을, 趙鎭忠, 공민왕, 송병선, 順天超然亭, 玉川趙氏門中, 王垈, 越鎭忠, 恭愍王, 宋秉璿
 
 
도움말
본 논문은 참고용 논문으로 수정 및 텍스트 복사가 되지 않습니다.
 
 
추천자료
[중문] 유가윤리 레포트
[중문] 유가윤리 레포트
채동번의 중국 동한 역사소설 후한통속연의 53회 54회 한문 및 한글번역
[중국근세문학사]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특징 그리고 후대에 끼친 영향 분석 및 연구
[고전문학사] 이규보, 희대의 아부꾼인가 한문학의 대가인가 - 생애, 문학작품의 연관성
[교육] 사회적윤리성과 충실한 개인
社會的 倫理性(사회적 윤리성)과 充實한 個人(충실한 개인)
공주지역 역사문화연표 및 유교문화 유적
[풍수][풍수지리학][풍수지리사상][풍수지리설]풍수(풍수지리학,풍수지리사상)개념,목적, 풍수사,풍수지리,풍수지리설,풍수의학,풍수설화,풍수가사
[조선대학교]인물로보는 호남역사
오늘 본 자료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장바구니 담은 자료
장바구니가 비어 있습니다.
이 간행물 인기자료
고대 동아시아 西王母 신앙 속의 신라...
金製 千手經에 관한 小考 -
일본의 위기와 팽창의 구조 - 663년 ...
신라관에 부착된 곡옥의 기원 문제 -
統一新羅時代의 幢竿과 幢竿支柱 硏究...
이 간행물 신규자료
廣州 船里遺蹟에서 出土된 蟹口기와의...
龍仁 瑞峰寺와 玄悟國師 宗璘 -
瑞峰寺址 佛敎石造美術品의 特徵과 意...
公州 麻谷寺 五層石塔의 건립 시기와 ...
麻谷寺 청기와와 朝鮮 國王의 關聯性 ...
저작권 정보
본 학술논문은 ㈜누리미디어와 각 학회간에 저작권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HAPPY학술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이용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E-mail 수집 거부 | 제휴 및 광고문의 | FAQ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게시일 2003년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