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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성리학 도입에 관한 제설의 검토와 김구의 역할 -
분야 인문과학 > 한국사
저자 도현철
발행기관 역사실학회
간행물정보 역사와실학 2016년, 歷史와實學 第59輯, 193page~232page(총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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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제 : Examination of various views concerning ‘Neo-Confucianism embracement’(in the latter half period of Goryeo) and discussion of the role Kim Gu played at the time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성리학 도입에 관한 제설의 검토
Ⅲ. 김구의 국가 의식과 고려 사상 계승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고려시대 성리학의 수용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는 가운데 김구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목표였다.
고려시대에는 초기 이래의 유학의 내재적 성장과 함께 송나라 유학의 수용을 통하여 유학이 발전하였다. 『중용』과 『주역』 연구가 심화되고 이를 통하여 心性化 경향이 강하고 경학이 발달하였다. 또 북송대 문물제도가 수용되었고, 특히 『太平御覽』·『資治通鑑』 등 당대 최고 수준의 신지식, 신문화이 들어왔으며, 사마광과 왕안석의 정치사상이 이해되었다.
고려후기 성리학 수용에 관한 최근 연구의 논점은 몇 가지로 구분된다. 외래사상인 성리학의 발원지인 송 원의 성리학과 관련성 문제, 성리학의 수용 배경 그리고 성리학의 고려에서의 활용문제가 그것이다.
지포 김구는 대몽전쟁이 끝나고 개경환도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뚜렷한 국가의식을 바탕으로 문한 외교 활동 전개하여 고려의 체제 안정에 기여하였다. 그는 사장학에 뛰어났고 몽골과의 외교문서를 담당하여 고려 유학의 계승과 전수에 공헌하였다. 이때 그의 외교문서 작성은 문치사회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외교 문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글로서 협력을 구하는 것이다. 대몽항쟁기 고려는 몽고를 가장 흉악한 오랑캐로 인정하고 전쟁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평화 교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몽고를 천자국으로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 문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문치는 인간의 도덕적 신뢰를 바탕에 두고 대화, 설득, 자각을 통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도덕사회를 지향하는 것인데, 김구는 원과의 상호 교섭을 통하여 평화 공존의 가능성을 열었고, 그런 점에서 김구의 활동은 문치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김구는 고려의 예제 정립 유학 본래의 선왕의 제도를 고려의 예제로 확립하는데 기여한다. 원종 14년 지공거일 때 홍자번과의 예제 논란에서, 지공거로서의 선왕의 제도를 존중함으로써 신권 중심의 유학의 예제를 존중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김구의 이러한 행동은 성리학은 익히지 않았지만 원시 유학 이래의 유학 본래의 문제의식에 충실함으로써 장차 성리학을 수용할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을 마련하고 있었다.
 
 
영문초록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previous studies that had dealt with Goryeo Confucianism, as well as to discuss the role played by a renowned scholar/official named Kim Gu, who held a special status in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during the Goryeo period.
During the Goryeo dynasty period, the general public’s level of Confucian understanding continued to rise, and it grew more developed with the embracement of Sung Confucianism.
Kim Gu was a scholar and politician, who served the government in the capacity of literary writing during the Military regime period as well as subsequent periods under Yuan’s intervention. His contributions around the cease-fire in 1259 and the government’s return to Gae-gyeong city are particularly noteworthy, as he was able to serve the country well with his diplomatic writing, which was based upon firm determination to protect the dynasty’s interests.
He excelled in original writing, which was a gift highly esteemed in the Goryeo Confucian environment, and also contributed to the preservation of Goryeo Confucian studies which had to be relayed to the next generation. Diplomatic communiques, which are usually drafted based upon an acknowledgement of the legitimacy of one’s opponent, with the intention of proposing mutual pursuit of cooperation, were sorely needed in the aftermath of the prolonged war with the Mongol invaders. During this period, the Goryeo people had no choice but to consider the Mongols as the most ruthless and savage enemy they had ever encountered, but when the war ended, negotiations for peace had to ensue, and the Goryeo government had no other options but accepting the Mongols as the new winner in Asia, and proceed accordingly, with people like Kim Gu as one of the point men to see the task through.
Kim Gu also integrated Goryeo traditions as part of Goryeo ritual protocols. In the 14th year of Weonjong’s reign, when he was named supervisor of the dynastic exam, he had a discussion with Hong Ja-beon over the issue of ritual protocols, and in those talks he took the stance of honoring past traditions, preferring Confucian institutions that favored the idea of vassals’ taking lead in such matters. He was not trained in Neo-Confucian studies, but his attitude was of one respecting old Confucian teachings, so he was able to lay down the groundwork for embracing Neo-Confucianism.
 
 
고려 유학, 성리학, 김구, 몽고의 침입, 외교 문서, 문치, Goryeo Confucianism, Neo-Confucianism, Kim Gu, Mongol Invasion, diplomatic communique, civic gove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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