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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후반 신라·백제의 각축과 국경선 변천 - 금산·대전지역을 중심으로
분야 어문학 > 언어학
저자 장창은
발행기관 고려사학회
간행물정보 한국사학보 2017년, 韓國史學報 제67호, 107page~141page(총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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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제 : The Struggle and Border Transition Between Silla and Baekje in the Middle~Late 6th Century
〈국문초록〉
1. 머리말
2. 추풍령로와 화령로를 둘러싼 나·제의 공방전
3. 금산 방면에서의 국경
4. 대전 방면에서의 국경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554년 관산성 전투를 주도한 여창[위덕왕, 554~598]은 즉위 후 한동안 패전의 후유증을 겪었다. 위덕왕이 통치활동을 재개한 것은 재위 14년(567) 부터였다. 이때부터 중국 남북조의 국가들과 대외관계를 추구했고, 577년까지 능사와 왕흥사의 사리장엄 의식을 주도함으로써 성왕을 추모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졌다. 이로써 관산성 전투 패전 이후 대신라 보복전을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백제는 먼저 577년 10월에 신라 서쪽 변방의 주・군을 급습하였다. 이때 신라와 백제의 교전지역이 一善[경북 구미시 선산읍] 북쪽이었으므로, 백제는 ‘화령로’ 내지 ‘추풍령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전투의 결과는 백제군 3700여 명이 전사하는 신라 측의 승전으로 끝났다. 신라는 이후 백제의 침략에 대비해 內利西城을 쌓았다. 579년 2월에 백제가 熊峴城과 松述城을 쌓음으로써 신라 내리서성 등의 길이 막혔다. 웅현성이 상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교통로상에 있으므로, 내리서성의 위치는 웅현과 화령의 서쪽 곧 옥천군 청산면 내지 보은군 마로면으로 비정된다. 신라는 내리서성을 쌓은 후 백제의 閼也山城[전북 익산시 낭산면]을 급습해 빼앗았다. 옥천・영동 방면에서 진산이나 금산을 경유해 서진한 듯하다. 다만 알야산성이 백제 영내 깊숙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이를 지속적으로 영유하지는 못했다. 6세기 중・후반 화령로와 추풍령로를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가 공방전을 벌였지만, 두 나라의 방어체계는 한계를 드러냈다. 554년에 신라가 차지한 관산성은 신라가 백제를 압박하는 데 거점성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공세는 대전과 금산지역에 집중되었다. 관산성 전투 이후 신라가 금산 방면으로 진출한 정황은 분명하다. 금산군 추부면 장대리에서 28기의 횡구식석곽묘가 발굴되었는데, 부장품으로 短脚高杯와 附加口 緣臺附長頸壺가 다량으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파초리 파괴분과 만락리산성・핏재산성 등의 조성주체를 보는 관점에 따라 금산지역 영유권의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6세기 중반 이후 신라가 금산분지 전체를 차지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그러나 파초리 파괴분과 여타 산성들의 발굴조사가 미비하고, 산성 배치양상에서 금산읍과 추부면이 구별되는 모습은 이 일대에서 신라와 백제가 장기간 대치한 듯한 인상을 준다. 신라는 옥천에서 금산 북쪽 방면으로 가한 공세가 추부와 진산 사이에서 교착되자, 추풍령로를 이용해 영동에서 서남진하여 금산분지 남쪽으로 선회하여 백제를 압박했다. 이에 백제는 596~598년에 걸쳐 백령산성을 축조했다. 이는 대가야 멸망 후 무주와 진안 방면에서 쳐들어오는 신라군의 침략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신라의 대전지역 진출시기와 범위를 분명히 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라가 조성한 계족산성과 주산동 고분군을 고려하면, 6세기 중・후반에 신라가 대전 동쪽의 계족산-식장산까지 진출해 백제에 공세를 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는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대전 동남쪽 방어를 위해 축성한 沙井城[대전시 중구 사정동]과 대전분지 서쪽의 갑천 동쪽 인근에 축성한 월평산성을 거점성으로 삼아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갑천 서쪽에 사비기의 무덤군이 집중 분포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6세기 중・후반 신라와 백제는 대전분지를 남북으로 흐르는 유등천과 대전천을 완충지로 삼아 국경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초록
In 554, Yeochang[King Wideok, r. 554~598] took the lead in the Battle of Gwangsanseong fortress. But King Seong(r. 523~554) was killed by ambush of Silla. Silla won a landslide victory in Gwangsanseong fortress. King Wideok after accession to the throne, suffered the aftereffects of defeat for a while. King Wideok was ruling a reign of 14 years since(567) was to resume activities. From 577, King Wideok attacked the Silla.
First, In 554.7, Baekje make a surprise attack on the western frontier of Silla. At this time Baekje went by way of ‘Hwaryeong route’ or ‘Chupungnyeong route’. A result of combat ended in a victory for Silla. Is prepared for the invasion of Baekje, Silla built the Naeriseoseong Fortress[Cheongsan-myeon, Okcheon-gun or Maro-myeon, Boeun-gun, Chungbuk]. In 579.2, Baekje built the Unghyunseong Fortress and Songsulseong fortress. Due to this, The road from Silla to Naeriseoseong etc was blocked.
Since 554, Gwangsanseong fortress became a military base of the Silla which pressure to the Baekje. Silla"s offensive was concentrated in Daejeon and Geumsan-gun, Chungcheongnam-do. That"s the evidence that advance to Geumsan of Silla was Jangdae-ri ancient Tombs, Geumsan-gun. In the middle~late 6th century, Silla and Baekje shared a border in Geumsan-eup and Chubu-myeon, Geumsan-gun. In 596~598, Baekje built the Baekryeongsanseong Fortress in southwest of Geumsan-gun in order to stop the invasion of Silla. Meanwhile, In the middle~late 6th century, Silla and Baekje shared a border in basin of Daejeon City. Silla built the Gyejoksanseong Fortress. Baekje built the Wolpyeong sanseong Fortress and Sajeongseong Fortress[Sajeong-dong, Jung-gu, Daejeon] for respond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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