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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세종대 上王(定宗) 예우와 喪禮의 정치사적 의미 - 부자에서 형제관계로의 재정립
분야 인문과학 > 한국사
저자 윤정
발행기관 역사실학회
간행물정보 역사와실학 2018년, 歷史와實學 第65輯, 73page~121page(총4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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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제 : Politically historic meanings of respectable treatment of Grand king上王(定宗) and funeral rites(喪禮)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太宗) and King Saejong(世宗) Dynasty – Reestablishment from relationship of father and son to relationship of brothers -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定宗예우와 太上王존숭
Ⅲ. 정종 상례와 太宗王統의 재정립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본 논문은 한양에서 정종비 정안왕후의 사망 이후 전개된 상왕 정종에 대한 예우와 사후 상례과정에서 드러나는 태종의 입장 변화의 정치적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1, 2차 왕자의 난의 결과 즉위한 태종은 형인 정종의 世子로서 즉위하였기 때문에 태종과 정종 비 정안왕후와의 사이에는 의례적으로 모자관계가 수립되어 있었다. 태종 12년 정안왕후의 사망으로 이러한 명분을 확증하였지만 형의 아들이 되는 예외적인 조치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본래의 형제 관계로 전환하고 태종의 즉위명분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정종의 사망은 그러한 지향이 전면화되는 기점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종의 상례에서 태종의 역할이 바뀌는 점이 지적된다. 정안왕후의 상에서는 태종이 상주로서 상례를 주도하였다. 당시는 정종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정종 사후에는 명목적으로만 喪主을 맡았을 뿐 대부분의 상례 행사는 정종의 장남인 元生이 攝喪主로 수행하였다. 이것은 상례 과정을 통해 정종과의 단절을 꾀하려는 태종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최종 의례인 祔廟에서 정종에게 廟號를 올리지 않은 것은 가장 단적인 조치였다. 이러한 조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태종 왕위의 전제였던 정종을 배제하고 태조의 계승자로 직접 나서면서 이를 세종으로 연결하는 왕통을 수립하는 데 있었다.
 
 
영문초록
This thesis analyzes politically historic meanings of the respectable treatment of Grand King Jeongjong(定宗) which was developed after the death of King Jeongjong(定宗)"s wife Queen Jeongan Whang hu(定安王后) and change in position revealed during post- funeral rites process, King Taejong(太宗), who ascended to the throne as the result of the First and Second Strife of princes, enthroned as the crown prince of his older brother, King Jeongjong(定宗). Because of it, there was a phatic relationship of mother and son between King Taejong(太宗) and King Jeongjong(定宗)"s wife Queen Jeongan Whang hu(定安王后). Justification of the establishment of mother-son relationship secured positive evidence by the death of Queen Jeongan Whang hu(定安王后) in the 12th year of King Taejong(太宗)"s reign, but exceptional action that younger brother became the son of older brother couldn"t continue permanently. Therefore, Transition of relationship between King Taejong(太宗) and King Jeongjong(定宗) from father-son relationship to original relationship of brothers and reestablishment of cause that could justify King Taejong(太宗)"s enthronement were needed. And the death of King Jeongjong(定宗) became the beginning time that such aim was completely consolidated. In that connection, it is pointed out that the role of King Taejong(太宗) was changed at the funeral of King Jeongjong(定宗). At the funeral of Queen Jeongan Whang hu(定安王后), King Taejong(太宗) took lead in the funeral rites as the chief mourner and King Jeongjong(定宗) still kept alive. However, after the death of King Jeongjong(定宗), not only King Taejong(太宗) formally assumed the role of chief mourner, but also Uipyenoggun, who was the firstborn son of King Jeongjong (定宗) took the role of chief mourner agent. This shows intention of King Taejong(太宗) that he would make an attempt at severance of the relationship with King Jeongjong(定宗). It was the most direct action that King Taejong(太宗) didn"t decide Posthumous King`s Name in the last rite, Bu’myo. The ultimate purpose of these actions were exclusion of King Jeongjong(定宗) who was the premise of King Taejong(太宗)"s enthronement and establishment of the Royal descendants connecting King Saejong (世宗) by going into the direct successor of King Taejo(太祖).
 
 
世宗, 太宗, 定安王后, King Taejong(太宗), King Jeongjong(定宗), Queen Jeongan Whang hu(定安王后), King Taejo(太祖), 攝喪主, King Saejong(世宗), 定宗, 太祖, chief mourner agent(攝喪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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