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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시기 일본의 여성 동원과 만주 이민 - 만주개척여숙(滿洲開拓女塾) 사례를 중심으로
분야 사회과학 > 기타(사회과학)
저자 곽규환 김해림
발행기관 만주학회
간행물정보 만주연구 2018년, 만주연구 제25집, 99page~142page(총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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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제 : The mobilization of women under the Japan during Manchukuo Period - Focusing on the case of ‘Manshū Kaitaku Onnazhuku(1940-1945)’ -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만주개척여숙 설립과 발전
Ⅲ. <개척여숙경영방침>과 만주개척여숙의 성격 변화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만주개척여숙은 만주로 이주한 일본 남성 개척민의 배우자의 조달과 양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일본․만주국 정부가 기획하고 민간이 위탁 운영했다. 본 논문은 만주개척여숙의 설립, 운영, 변화, 실태를 관련 정책 자료와 입숙 여성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만주개척여숙의 실체와 일본 제국주의의 여성 동원 방식과 특징을 검토한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시작된 일본에서 만주국으로의 대규모 이민사업은 이후 현지 개척단원(일본인 남성)들의 배우자를 초청하는 대륙신부 사업으로까지 이어졌다. 대륙신부 구상은 남성 개척단원들의 개척지 영구 정착을 통한 이민사업 안정화와 만주국 내 민족순혈의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성 이민자 모집도 쉽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만주로의 ‘결혼 이민’ 대상자인 여성의 참여는 저조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관동군은 만주국 현지에 여성 배우자 훈련소인 ‘만주개척여숙’ 설립을 기획한다. 훈련소 입소 대상자 범위를 일본 남성 개척단원의 예비 신부 뿐 아니라 만주 진출을 희망하는 여성으로까지 넓혀 여성 본인의 참여와 가족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만주 이민사업의 구상 단계에서부터 사업효율성에 대해 우려했던 일본 정부는 여성 대량 송출을 위한 만주 현지 훈련소 설립 계획에도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만주개척여숙의 핵심인물 쿠마이 타케요(熊井竹代)의 활약으로 안배개척여숙(安拜開拓女塾)이 높은 성혼률을 달성하자 일본 정부의 입장은 달라졌다. 이후 만주개척여숙은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설됐다.
당시 여성척식지도자들은 결혼 이민자 모집을 위해 결혼의무조건을 축소․은폐하고, 만주개척여숙이 빈농출신의 여성들의 배움과 사회 참여를 지원한다고 선전했다. 그래서 상당수 여성들은 결혼의무조건을 충분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만주개척여숙에 입숙한다. 만주개척여숙 사업의 절정기(1940년 ~1943년)에 입숙 여성들은 불충분한 시설과 교육과정, 지속적인 결혼압박으로 고통을 받았다. 1943년 후반부터 전황 악화로 남성 개척민의 전장투입이 시작됐다. 이후 만주개척여숙 입숙 여성들은 현지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여성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영문초록
This article studies the local training centres of ‘Kaitaku Onnazhuku’ for Migrant Brides in Manchukuo. Manshū Kaitaku Onnazhuku was a dormitory-type training centre designed by the Kwantung Army to nurture and procure spouses for Japanese male settlers who moved to Manchuria. Private partners established and operated the Kaitaku Onnazhuku, while the Japanese and Manchukuo governments financially supported the recruitment and emigration of women from the devastated rural regions to Manchuria and oversaw the operation of the centre. Founded in 1940, it served as the supplier of female spouses to Japanese male pioneers until 1943. As the male emigrants mobilized for the Pacific war in 1944, the women in the Kaitaku Onnazhuku served as labour force reserves in Manchuria. The establishment, development and changes in Kaitaku Onnazhuku’s character, goals and roles illustrate how the Japanese imperialism exploited the willingness of Japanese women from poor rural backgrounds to emigrate as reproductive capacity of women in Manchuria.
The training centre was established and operated by private partners who were the leaders of the pioneer groups and leaders of the female colonial enterprise. Therefore, there are some differences between the training centres in terms of methods used to achieve key policy objectives and techniques used to train women. These differences cannot be identified by policy alone. Therefore, this study utilized major policies and testimonies from the women who were trained in Manshū Kaitaku Onnazhuku to analyze the process of establishment and change of Kaitaku Onnazhuku. As such, the preceding study on “Migrant Brides” is insufficient to grasp the overall institutional changes of the Kaitaku Onnazhuku. For examining the Japanese empire’s methods and characteristics of female mobilization, the article focused on the substance of the Kaitaku Onnazhuku.
 
 
여자척식사업, Manchukuo, 여성동원, 순혈주의, mobilization of women‚ the purity of Yamato minzoku blood (純血zhunketu), 대륙신부, 만주개척여숙, 관동군, Manshū Kaitaku Onnazhuku (満洲開拓女塾), Kwantung Army, Kumai Takeyo(熊井竹代), Women’s Colonial Enterprise(女子拓殖事業), 熊井竹代(쿠마이 타케요), 만주국, Mig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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