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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e Namsǒn and Identity Construction through Negotiation with the Colonizer -
분야 어문학 > 언어학
저자 Tobias Scholl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간행물정보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19년,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24 No.1, 153page~186page(총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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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제 : 최남선과 식민자와의 협상을 통한 식민지 지식인의 정체성 형성
Introduction
Ch’oe’s Early Life
“Maritime History of The Great Han” (Haesang Taehansa)
The Turning Point of 1919-1920
The Purham Culture Theory
Negotiation : Between Resistance and Collaboration
Between Collaboration and Resistance, between Mimicry and Mockery?
Conclusion
References
〈Abstract〉
〈국문초록〉
 
 
국문초록
This paper takes a closer look at Ch’oe Namsŏn’s construction of Korean identi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Ch’oe was ambiguous towards Japan, seeing it as many other intellectuals did, as a model for Korea’s modernization, and was aware that Japan would be both Korea’s “oldest friend” and “biggest obstacle” in this regard. After his imprisonment for his role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he started to cooperate with the Japanese to influence colonial knowledge production and therefore decided to “negotiate” directly with the colonizer. In his “Treatise on Purham culture,” Ch’oe included Japan in the same cultural sphere and saw it as less of Other than the West and China. While his theses and arguments were based on Japanese research and written in Japanese, Ch’oe maintained a Korean identity within the colonial setting not by a “negation” of Japanese research, but by “negotiation” through its reinterpretation and autoethnography. Due to his referring to Japanese scholars and due to the ambiguity of his mimicry his work can be considered “at once resemblance and menace,” and simultaneously as collaboration and resistance.
 
 
영문초록
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 한국인의 정체성. 최남선은 다른 지식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근대화의 모델인 일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수감생활을 한 이후, 최남선은 식민지의 지식 생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일본인들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식민자와 직접 “협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의 “불함문화론”에서 최남선은 일본을 동일한 문화권 안에 포함시켰으며 불함문화권을 서구와 중국의 문화권과 같은 동등한 것으로 보았다. 비록 그의 주장과 연구는 일본어로 작성된 일본인들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일본인의 연구를 “거부”하지 않고 재해석을 통해 “협상”함으로써 최남선은 식민지라는 조건 속에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일본인 학자들에 대한 의존과 그의 연구가 갖는 유사성으로 인한 모호함 때문에 그의 연구는 “모방이자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협력과 저항으로도 읽을 수 있다.
 
 
자가 기술 민족학, 모방, 양면성, 불함문화론, 저항, 협력, 식민지시기, 최남선, collaboration, mimicry, Ch’oe Namsŏ, Purham Culture, Autoehnography, ambivalence, resistanc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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