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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ratic Eros and Self-Knowledge in Plato`s Alcibiades
분야 인문과학 > 서양철학
저자 ( Chol Ung Kang )
발행기관 한국서양고전학회
간행물정보 서양고전학연구 2008년, 제32권 79~102쪽(총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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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플라톤이 『알키비아데스』의 진짜 저자인가에 관한 논쟁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쪽의 한계가 상당히 드러나 있으므로 더 이상 핵심 사안이 될 수 없다. 저자에 관한 논란과 달리 주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이루어져 있다. 자기(自己) 앎이 핵심 주제이며, 자기의 비인격적 혹은 객관적 차원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에 상당수 학자들이 동의한다. 이에 이 글은 자기 앎과 더불어 소크라테스적 에로스가 대화편 전체의 틀과 내용에 통일성을 제공하는 또 다른 핵심 주제이며, 자기의 두 측면(즉 개인적/사회적 혹은 인격적/비인격적, 내적/외적, 주관적/객관적 자기)에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면서 어느 한쪽에만 집중하는 대신 그 긴장과 공존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새로운 접근을 통해 소크라테스 도덕ㆍ정치 철학의 기본 면모와 플라톤 저작 내에서 이 대화편이 갖는 위상이 드러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1 절에서는 이 대화편을 새롭게 분절하면서 각 논의(특히 논박)의 변증적 성격에 주목한다.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는 다른 사랑하는 자( 에라스테스)들의 에로스와 대비되는 동시에, 사랑받는 자( 에로메노스)인 알키비아데스의 에로스와도 대비된다. 이 두 에로스 대비를 축으로 전 대화편의 변증적 구조가 짜여 있다. 탁월한 3 부 논변들에 비해 1 부와 2 부의 논박들이 `덜 플라톤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에로스(즉 교육) 대상의 준비 단계에 맞는 논의를 펼치고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저자 플라톤이 독자인 우리의 준비 단계에 맞게 차근차근 고양되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2 절에서는 이 두 에로스 대비를 상세히 검토하면서 당대 에로스 전통을 혁신하면서 선용하는 소크라테스 에로스의 면모와 함축을 해명한다. 알키비아데스 에로스와의 대비에 중점을 두면서 텍스트에서 부각되는 다음 두 요소에 주목한다. 먼저 소크라테스의 휘브리스(방약무인)는 그의 에로스가 가진 로고스 측면(영혼과 영혼의 대화, 특히 설득과 교육)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두 사람의 파이다고고스(아동인도자) 역할 맞바꿈은 그의 에로스가 상호성을 지향하며 사랑하는 자와 받는 자가 `함께` 이루어가는 일임을 잘 보여준다. 3 절에서는 기존 논의들이 자기 앎을 객관적 혹은 비인격적 측면을 중심으로 이해하면서 끌고 들어오는, 자기에 대한 이분법(즉 개인적/사회적 혹은 인격적/비인격적, 내적/외적, 주관적/객관적 자기)의 한계와 대안을 다룬다. 사실이분법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대립되는 두 측면의 긴장과 공존에 주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이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 대화편이 다루는 자기 앎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구분(즉 현재적/이상적 혹은 현상적/실재적, 상황적/본질적 자기)을 제안한다. 4 절에서는 자기 앎을 사회 내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앎으로 이해하는 해석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이 대화편에서 자기 앎이 사실상 자기 자신의 좋음에 대한 앎임을, 그리고 그 좋음이란 덕이고, 궁극적으로 앎임을 밝힌다. 소크라테스의 도덕ㆍ정치 철학의 궁극적 기초는 이타주의가 아니라, 자기 앎 즉 자기의 좋음에 대한 앎과 이를 통한 자기 돌봄과 자기 개선을 요체로 하는 자기본위주의(selfism)이다. 진정한 자기 돌봄은 진정한 공동체적 이익과 상통한다. 이런 그의 입장은 자기 이익이나 행복에만 관심을 갖는 유의 이기주의와 다르며, 자기 이익이나 행복으로부터 무관한 의무감을 강조하는 칸트주의 의무론과도 다르다. 5 절에서는 이 대화편의 자기 앎 논의가 자기의 핵심, 본질을 향해 계속 좁혀 들어가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을 잘라내고 핵심만 남기는 방식의 이분법(예컨대 혼/몸 이분법)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에로스의 궁극적 대상인 자기의 보편적 혹은 비인격적 측면이 중요하긴 하지만, 자기와 에로스의 인격적 혹은 개별적 측면 역시 중요하다. 대화편 서두에서부터 강조된 알키비아데스의 자원, 힘, 가능성은 이분법에 의해 그저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혼과 몸의 구별이 몸에 대한 폄하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듯이 말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최대선이 될 수도 최대악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에로스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 대화편은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정치 철학적 입장을 대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자 플라톤의 편에서는 소크라테스의 기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정치에 들어가기보다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조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전환점에 위치한 선언(宣言: manifesto)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문초록
Contemporary scholarship of the Alcibiades, in spite of the long tenacious debates on its Platonic authorship, seems to have reached a considerable consensus that its unifying theme is self-knowledge, and that the impersonal or objective dimension of self is in the spotlight. In this paper I propose that there is another unifying theme in the Alcibiades, i.e. Socratic eros, and that we need to see how the interweaving of the two themes goes. Previous approaches with the dichotomy of self as individual/social, personal/impersonal, inner/outer or subjective/objective are unbalanced, and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tension and coexistence of the two aspects and introduce an alternative distinction of present/ideal, phenomenal/real, situational/essential self. The ultimate basis of Socratic political philosophy is not altruism but selfism which focuses on self-knowledge, i.e. knowledge of one`s own good, and self-care or selfimprovement through that self-knowledge. His thought is different both from common egoism and from Kantian deontology. Alcibiades` power, capacity and resources should not be dichotomously neglected, a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soul and the body should not be misunderstood as a mere contempt for the body. Alcibiades could become either the greatest good or the greatest evil to the city. This is why he could be Socrates`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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