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과학 > 민속학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 탐라문화
알뜨르 비행장: 일본 해군의 제주도 항공기지 건설 과정
분야 인문과학 > 민속학
저자 조성윤 ( Sung Youn Cho )
발행기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정보 탐라문화 2012년, 제41권 395~438쪽(총44쪽)
파일형식 1o600436.pdf [다운로드 무료 PDF 뷰어]
판매가격 7,900원
적립금 237원 (구매자료 3% 적립)
이 자료를
논문의 미리보기 2페이지를 PDF파일로 제공합니다.
 
연관 논문
효과적인 갈등해결을 위한 소통방안 연구 : 제주 해군기지사례의 교훈
오키나와(沖繩)의 기지화,군사화에 관한 연구 -기지의 건설,확장과 반환의 역사적 과정을 중심으로
기획논문 : 한말(韓末) 일제(日帝)의 진해만요새(鎭海灣要塞) 건설(建設)과 식민도시(植民都市) 개발(開發)의 변형(變形)
(기획논문) 한말 일제의 진해만 요새 건설과 식민도시 개발의 변형
언론의 공공의제 설정 및 정책결정 과정과 사례적용에 관한 연구
 
 
국문초록
이 글에서는 알뜨르 비행장, 정식으로 말하면 일본 해군 항공기지의 건설과 확충과정을 그동안 발굴된 일본방위성문서와 현지 조사에서 채록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분석하였다. 이 비행장은 1933년도에 처음 「불시착륙장」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건설할 때만 해도 6만평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해군항공대가 주둔하는 정식 항공기지로 서가 아니라, 중국과의 전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중간 기착지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해군은 적극적으로 이 비행장을 활용하기로 작정하고, 증설계획을 세운다. 증설 공사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은 중국 남경 등 중요도시를 폭격하는, 이른바 도양폭격의 중심 기지가 된다. 알뜨르 비행장은 이렇게 한동안 폭격기지로 집중 활용되다가, 1938년 이후 전선이 확대되고 대부분의 폭격기가 중국의 항공기지로 이동하면서 한가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 알뜨르 항공기지에는 오무라 항공연습대가 주둔하고, 확장 공사도 계속되었다. 한편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나서 알뜨르 비행장은 다시 중요성을 인정받아, 또 다시 확장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20만평의 항공기지를 60만평 다시 늘린, 80만평의 엄청나게 넓은 규모로 확장한 것이다. 제주도 알뜨르 항공기지를 일본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오무라 항공기지와 같은 규모로 키우겠다는 것은 일본 해군이 제주도를 전략적 핵심 지역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공사는 전쟁 막바지까지 계속되었고, 제주도민들을 여러 해 동안 동원하면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결국 알뜨르 비행장은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사용해보지도 못한 채 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그 역할을 끝내게 되었다. 이 지역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 육군의 제1훈련소로 활용되었고, 그 이후 내내 국방부 소유로 묶여 있었다. 그러다가 1988년 한국 공군이 이곳에 군용 비행장을 건설하려다 제주도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포기한 바 있고, 현재도 공군이 이 지역을 공군 기지로 사용하려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영문초록
Alddreu Airfield, located in Daejeong-eup, Seogwipo City, Jeju Island was constructed by the Imperial Japanese Navy (IJN) when Korea was under the colonial rule of Imperial Japan (IJ). Hence, the IJN Airbase was the official name for the Alddreu Airfield. The paper reviews and analyzes the background, construction, and expansion of the airbase, based on the accumulated extracts from the documentation of Japan`s Ministry of Defense (formerly Japanese Defense Agency) and statements collected in the field investigations. When it was first built in 1933 as an emergency landing field, the area of the airfield was no more than 60,000 pyeong (1 pyeong is equivalent to 3.3 square meters). Alddreu Airfield was not a formal naval air station. It was a way-station airfield to use temporarily under the circumstances that Japan was expecting a war against China. However, as the Second Sino-Japanese War broke in 1937 moved into a full-fledged phase, the IJN drew a plan to expand the Alddreu Airfield and use it more aggressively for the war. Even before the expansion construction had started, the Alddreu Airfield on Jeju Island became the central base for transoceanic bomb attacks on China`s major cities, such as, Nanjing. The Alddreu Airfield was used intensively for bombers until 1938. As the front lines of the war expanded, most of the bombers were moved to one of the airbases in China, freeing the Alddreu Airfield from intensive use. However, it was soon taken over by the Training Department of the Imperial Japanese Omura Navy Air Service. The construction to expand the airfield also continued. With the outbreak of the Pacific War, the importance of Alddreu Airfield was again recognized and the expansion project resumed. The two hundred thousand (200,000) pyeong airbase was expanded, first to six hundred thousand (600,000) pyeong, and later to an eight hundred thousand (800,000) pyeong airfield. The IJN wanted to build the Alddreu Airfield to the size of the IJN Omura Naval Air Service Base in Nagasaki, Japan. It is an indication that the IJN acknowledged the strategic importance of Jeju Island for its critical location. The construction continued until the final stage of the war. The residents of Jeju were forced to provide construction labor for many years. The Imperial Japanese Navy spent a massive amount of money and labor to build such a large airfield, but they never had a chance to use it. The war was over and the role of Alddreu Airfield, as intended by the IJN, expired, too. With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in 1950, the first Korean army training camp was set in the area of Alddreu Airfield. The area is owned by the Ministry of Defense, Republic of Korea. In 1988, the Republic of Korea Air Force (ROKAF), made an attempt to build a military airport in the area. Due to strong resistance among the residents, the attempt did not have a chance to take off the ground. The ROKAF has never given up its intention to build a military airbase at the former IJN`s airfield.
 
 
제주도, 일본 해군, 항공기지, 알뜨르, 비행장, Jeju Island, the Imperial Japanese Navy, Airbase, Alddreu Airfield
 
 
도움말
본 논문은 참고용 논문으로 수정 및 텍스트 복사가 되지 않습니다.
 
 
추천자료
제주도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문제 해결방안0k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갈등 해소방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행정과정, 원인, 배경, 각종 논란들, 찬성, 반대, 의견, 운영현황, 극복, 특징, 업무, 계획, 현황, 시사점, 문제점, 나아갈 방향 조사분석
제주사회의 이해 - 일제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일본군 이제 주도에 남기고 간 흔적들 본토결전 계획 속의 제주도
제주도 피는 계속 흘러 야한다
[독후감] 남양군도를 읽고
[A+]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의 쟁점과 찬반논란 및 시사점 향후전망
일제 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서평 조성윤 교수님이 엮은 일제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를 읽고
오늘 본 자료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장바구니 담은 자료
장바구니가 비어 있습니다.
이 간행물 인기자료
오사카 재일(在日)제주인 여성의 이주...
일반논문 : 제주 지역 결혼이민여성의...
일반논문 : 한국과 중국 TV공익광고 ...
제주국제자유도시 다문화정책의 과제...
탐라거인(耽羅居人) 이방익(李邦翼)의 <...
이 간행물 신규자료
여말선초 청주한씨 제주입도조(濟州入...
한국 고대 신화 속 여성성의 신화화 ...
지역공동체에서 평화공동체로 가는 상...
17~18세기 전반 인삼무역의 변동과 개...
제주영어교육도시 지역주민의 생활실...
저작권 정보
본 학술논문은 한국학술정보㈜ 각 학회간에 저작권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HAPPY학술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이용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E-mail 수집 거부 | 제휴 및 광고문의 | FAQ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게시일 2003년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