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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 문학과 일상, 혹은 비일상 ;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를 통해 본 17세기 초 영남 사족의 일상 속의 문화생활
분야 어문학 > 국문학
저자 윤성훈 ( Sung Hoon Yoon )
발행기관 근역한문학회
간행물정보 한문학논집 2012년, 제35권 9~36쪽(총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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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조성당일기』는 김택룡(金澤龍, 1547~1627)이 쓴 일기로서 총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은 1612년(광해군 4년, 김택룡 66세), 제2권은 1616년, 제3권은 1617년에 쓰여 졌다. 김택룡은 매일의 일상을 자세하게 기록하였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따라서 현재 전래되는 일기는 전체 일기 중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택룡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월천 조목의 수제자였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에서 관직도 지냈다. 그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경상도 예안(禮安) 한곡(寒谷)에 거주했는데, 그는 한곡 이외에도 영주(榮州) 순흥 부근에 세 군데의 집이 더 있었다. 이곳은 사망한 전처 및 소실의 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곡 본가와 이 집들 주변에는 경작지가 산재되어 있어 이곳에서 산출되는 농작물이 그의 주된 소득이었다. 그 밖에도 경상도 북부 이곳저곳에 시집간 딸들과 출계한 아들이 살고 있어 이들과 자주 왕래했다. 친족 이외에도 그는 지역 사람들과 폭넓은 만남을 자주 가져서, 도산서원 및 역동(易東)서원 관계자, 가르침을 구하러오는 유생, 지역의 명사들, 지역의 지방관 등과 끊임없이 교류했다. 그의 일상은 만남과 교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택룡의 말년에 쓰인 이 일기는 한 개인의 일기를 넘어 당시 지역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지위에 있던 사족(士族)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 된다. 『조성당일기』에는 김택룡이 일상속에서 향유했던 문화생활의 모습들도 다수 담겨 있다. 우선 그가 읽은 서적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성리학이나 도학 관련 서적은 거의 보이지 않고 주로 문장 학습과 관련된 책이 많다. 그의 문학적 관심은 주로 ``시``에 있었고, 산문은 사장(詞章) 혹은 역사에 관한 것이 많았다. 그에게는 가르침을 구하러 오는 유생들도 많았는데, 교육은 주로 과거 시험 준비를 위한 역사 고사와 문장 교육에 치중되었다. 김택룡의 문집인 『조성당집』에는 이백 여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일기에도 종종 시가 등장하고 있어 그의 시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잘 알 수 있다. 『조성당일기』에는 자연을 완상한 기록도 자주 등장한다. 소백산과 같은 지역의 명승지를 유람하기도 했지만, 그는 주로 집 주위의 대(臺)나 시내를 소요하며 소박한 자연미를 즐겼다. 『조성당일기』 전체에서 문화생활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당시 지역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어 그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영문초록
A Diary of Choseongdang(操省堂日記) was written by Choseongdang Kim Taekryong(金澤龍, 1547 ~ 1627). It consists of three volumes. The first volume was written in 1612, and the second and the third in 1616 and 1617. He kept a diary everyday and tried to put on a detailed record. The existing diary is estimated a part of the whole. Kim was the pupil of Wolcheon(月川) Cho Mok (趙穆) who was also the student of Toegyeo(退溪) Yi Hwang(李滉).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entered government service. His family had lived for generations and owned a house in Hangok(寒谷) of Yean(禮安) of Kyeongsang province, and he also three more houses in Sunheung(順興) area of Yeongju(榮 州). These houses were originally owned by his dead wife and two concubines. Around his houses were scatterd farms of his own that was his economical base. His married daughters and a son who was adopted by another family lived in northen area of Kyeongsang province. He met his family members of this area very frequently. He also kept a frequent meeting with the local people such as the personnel of Dosan(陶山) lecture hall and Yeokdong (易東) lecture hall, the students who came for his lesson, social celebrities, governers of his area, and so on. Meeting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his daily life. This diary contains a detailed record of these meetings. Kim Taekryong was a opinion leader and th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people, and therefore this diary shows how the noblemen of Kyeongsang area lived a daily life. A Diary of Choseongdang contains the cultural life of Kim Taekryong. It shows what kind of books he read. The books in the diary were mainly literary and historical ones. The neo-confucianism books were scarcely seen in the dairy. There were many student who came for his lesson. His literary lesson was mainly focused on historical events and the art of writing for the state examination. Kim`s selection of literary works contains over two hundred poems, and this diary also contains several ones. This shows that his main interest in literature was a poetry. The diary also recorded his appreciation of nature. He went sightseeing for the area of scenic beauty such as Sobaeksan(小白山), but he mainly appreciated natural beauty in the vicinity of his house. He enjoyed to take a stroll in streams or hills around his house. A culture was a small component in his daily life, but considering his high cultural position in that time cases of cultural life in this diary can be estimated good examples for the study of the noblemen`s culture in 17th century`s Kyeongsang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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