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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 1930년대 부산 적기만(赤崎灣) 매축 연구
분야 사회과학 > 인문지리
저자 배석만 ( Suk Man Bae )
발행기관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간행물정보 항도부산 2012년, 제28권 1~46쪽(총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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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연구는 일제시기 이루어진 부산항의 대규모 매축사업 중 최후의 사업으로, 193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적기만 매축사업의 실태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적기만 매축사업은 1934년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釜山鎭埋築株式會社로부터 매립 면허권을 양도받아 시행했다. 이케다가 매축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시 時局과 관련하여 부산 영도에 있었던 저유시설의 이전 및 석유업법 시행에 있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저유시설 부지가 필요했고, 이케다는 적기만을 매립하여 이 수요에 부응하려고 했던 것이다. 적기만 매축은 A구역에서 G구역까지 총 7개 구역으로 나누어 이루어졌으며 유효면적 기준 약 10만평의 부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매축 방식은 각 구역별로 상이했는데, E구역은 이케다 직영, E`와 F구역은 부산토지기업주식회사와 공동경영, A~D, G구역은 동양척식 주식회사와의 공동경영이었다. E구역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 사업파트너를 영입한 것은 이케다가 독자적으로 매축사업을 진행할 만큼의 자금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적기만 매축사업은 1937년 8월 완성되어 총 12만평의 새로운 부지가 조성되었다. 1934년 4월말 매축공사가 시작된 이래 만 3년 4개월 만에 예정된 모든 구역의 매축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케다의 적기만 매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존 A구역을 확장하는 2, 3기 매축이 진행되어 1944년 말까지 추가로 약 5만평의 부지가 새롭게 조성되었다.
 
 
영문초록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real state of the reclamation project in Jeokgi Bay starting in the mid-1930`s, which was the final project of the large-scale reclamation projects in the Port of Bus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uketada Ikeda (池田 佐忠) took over the license right from Busanjin Reclamation Company(釜山鎭埋築株式會社), and then conducted the Jeokgi Bay reclamation project in 1934. He conducted reclamation project because of the transfer of the oil storage facility on Yeong Island (影島) in Busan and enforcement of Petroleum Act in association with the state of affairs at that time. This required a new oil storage facility site. Thus, he tried to meet the demand by reclaiming Jeokgi Bay. Jeokgi Bay was reclaimed by dividing into a total of 7 areas between Area A and Area G, and it developed a site of 100,000 pyeong (≒330,578.12 square meters) by the standard of effective area. Each Area has a different method of reclaiming; Area E was directly managed by Suketada Ikeda, Area E` and F were jointly managed by him and Busan Land Enterprises Company(釜山土地企業會社), and Area A~D, G was jointly managed by him and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東洋拓殖株式會社). Ikeda recruited business partners for all the areas except for Area E because he did not have enough funds to independently implement the reclamation project. The Jeokgi Bay reclamation project was completed in August, 1937, and it developed a new site of 120,000 pyeong (≒396,694.215 square meters). It took three years and four months to complete reclamation of all the expected area since this reclamation construction started at the end of April, 1934. However, there is not the end of the Jeokgi Bay reclamation by Ikeda. The second and third phases of reclamation were implemented to expand the existing Area A. As a result, a new site of 50,000 pyeong (≒165,289.256 square meters) was additionally developed until the end of 1944.
 
 
적기만, 이케다 스케타다, 매축, 동양척식주식회사 Jeokgi Bay, Suketada Ikeda, reclamation, Oriental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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