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묘지명 제작과 ‘알리고 싶은 열망’
분야
인문과학 > 한국사
저자
나희라 ( Hee La Na )
발행기관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정보
대동문화연구 2012년, 제79권 183~210쪽(총28쪽)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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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고려시대 사람들은 중국의 墓誌銘 작성과 매장 습속을 받아들여 묘지명을 작성하고 그것을 死體와 함께 무덤 안에 묻었다. 이는 훗날 무덤이 훼손되었을 때 무덤 주인공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고려시대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였던 것은 死者의 행적을 기록하고 이를 칭송하는 것이었다. 이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알리고 싶은 열망’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작용했던 것 같다. 묘지명은 죽은 자와 함께 무덤 안에 넣어지는 것이었지만 그 내용도 함께 매장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 내용은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져 알려졌다. 또한 묘지명 제작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喪葬禮 과정 중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묘지명을 제작하는 자손들은 또한 자신들의 孝行을 알릴 수 있었다. 이렇듯 묘지명 제작에는 死者의 공적을 알리고 生者의 태도를 알린다는 사자와 생자 양 측면의 ‘알리고 싶은 열망’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고려시대 묘지명 제작은 선조의 공적을 알리고 또 자손의 효행을 알려서 蔭敍나 薦擧를 통한 관리 등용과 승진의 기회를 얻으려는 生者들의 현실적 목적도 개입되어 있었던 것 같다. 고려시대 묘지명 문화가 중앙의 관료와 그 가족들에게 집중되어 있던 것도 그러한 것을 주위에 알려서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얻기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부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구성원의 신분지위가 곧 자신의 사회적·정치적 정체성을 결정하던 고려사회에서 선조의 공적을 알리고 자신들의 효행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고려시대 사람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들을 알리려고 했고, 그 중에서 상장례 과정에서 묘지명을 작성하는 것 또한 그 한 방법으로 채택하였던 것이라 생각한다. 고려시대 묘지명은 사자를 위해 제작하는 것이지만 生者가 그 제작 주체가 된다. 이는 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자의 한평생의 삶의 태도, 이룬 업적 등의 기록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다 충족하지 못한 것을 위로받고 남긴 명성이 계속하여 전해지도록 하여 儒家的 입장에서의 不朽를 이루도록 배려 받는 것이지만, 또한 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선조의 공적을 과시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품행을 인정받아 자신들의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듯 고려시대 묘지명 제작에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죽음과 삶의, 또한 사자와 생자의 입장이 뒤엉킨 욕망이 숨어있었다.
    영문초록
    People in Koryo age made the epitaph and buried it in a tomb together with a dead body, following the Chinese custom of making the epitaph and burial. What people in Koryo age paid attention to with interest was rather to record and praise the lifetime achievements of the dead while this was also for the purpose of let people know the person lying buried in a tomb when the tomb was damaged later. This seems to have worked as one of methods to settle the ``aspiration to inform`` that people in Koryo age had. Although the epitaph was to be put in a tomb with the dead, the contents were not buried together, so the contents became known to many people by being read. In addition, the production of epitaph was carried out in the process of funeral ceremony attracting the public attention, so the descendants who produced the epitaph could inform their deeds of filial piety. Like this, the production of epitaph involves the ``aspiration to inform`` on both sides of the dead and the living to inform the achievements of the dead and also inform the attitude of the living. In the production of epitaph in Koryo age, there seems to have been involved the realistic purpose of the living to be appointed as public officials or get the opportunities of promotion by informing the achievements of ancestors and also informing the deeds of filial piety of descendants. Why the culture of epitaph in Koryo age was concentrated on the bureaucracy in central government and their families is supposed to be due to this reason. Although the epitaph is produced for the dead, the living is the subject of production. From the standpoint of the dead, the production of epitaph was to enable the dead to have the consideration to achieve the immortality in terms of the Confucian so that the achievements of the dead might be transmitted continuously through lifetime records, but from the standpoint of the living, it was also a means to satisfy the realistic desires of themselves through recognition of deeds of filial piety not to spare the consideration for ancestors. Like this, in the production of epitaph in Koryo age, there was hidden a desire in which the standpoints of the dead and the living as well as the life and death of people in Koryo age got intertw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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