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조선 후기 “주자주의(朱子主義)”의 동향과 이용후생(利用厚生) 개념의 부상
분야
사회과학 > 기타(사회과학)
저자
이경구 ( Kyung Ku Lee )
발행기관
한림과학원
간행물정보
개념과 소통 2012년, 제10권 69~103페이지(총35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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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17세기 성리학은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일종의 이념이었다. 노론 학자들은 주자가 사용했던 개념의 모순을 제거하여 성리학을 완결적 ‘주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작업은 청과 대치하였던 조선에서 주자학적 시공간을 구축하여 새로 부흥할 유교문명의 발판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18세기에는 ‘주자주의’의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노론 내에서 전개된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주자의 개념으로 주자의 개념을 공격하는 사건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주자주의가 구축한 시공간에 의문을 던지고 나아가 유교문명관을 상대화시키기까지 하였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은 그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영조대부터 조금씩 사용되었던 이용후생은 정조대에 빈도가 급격히 늘어난다. 화폐 유통·기술 향상·교역 증대 등 물질의 개선이 이용후생을 빌려 강조되었고, 서양 기술자를 초빙하자는 파격적 주장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순조대 이후에는 다시 내용이 보수화하고 빈도도 하강한다. 고종대에 다시 빈도가 늘어난 이용후생은 시기상의 변화가 뚜렷해지고 의미의 진폭이 커지면서 근대의 변화와 연동한다.
    영문초록
    The Neo-Confucianism of the 17th century represented an ideological blueprint for a new society. The Noron(老論) scholars did their best to reconcile the conceptual contradictions of Chu Hsi`s writings, trying to make neo-Confucianism into an infallible ideology. Thus, by setting up a temporal space of neo-Confucianism, they sought to provide a base for the revival of a new Confucian civilization at a time when Joseon was confronting the Ching dynasty. However, ideological cracks began to appear in neo-Confucianism during the 18th century. The so-called `` Ho-rak`` debate among the Noron scholars was an attack on the concepts of Chu Hsi, using those very concepts themselves. Some scholars questioned the temporal space of neo-Confucianism, and even cast doubts on the absolute value of Confucian civilization. The rise of Iyonghusaeng(利用厚生) shows this change well. This term had appeared from time to time in King Yeongjo`s reign, but its usage increased rapidly during King Jeongjo`s reign. The circulation of money, technical improvements, and the expansion of trade were all promoted in the name of Iyonghusaeng. Some scholars went so far as to insist that European engineers should be invited into Joseon to improve material conditions. The concept of Iyonghusaeng underwent a conservative shift after King Sunjo`s reign, and was less often used, but it returned to favor again after about 60 years, during the reign of King Kojong. At this time, however, the concept of Iyonghusaeng became more malleable, accomodating the ongoing processes of westernization and moder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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