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韓國思想) [사학(史學)] : 鄭琢(정탁)의 『龍蛇日記(용사일기)』와 倭亂(왜란) 극복 활동
분야
인문과학 > 동양철학
저자
김정운 ( Jeong Un Kim )
발행기관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정보
한국사상과 문화 2012년, 제63권 187~215페이지(총29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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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정탁(鄭琢)은 임진왜란 때 분조에 소속되어서 1593년 1월 말 대조와 분조가 합해질 때까지 분조를 호종하였다. 그는 분조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전란 대응을 주도했다. 정탁은 피란하는 동안 매일의 일들을 기록하여 『용사일기(龍蛇日記)』를 남겼다. 정탁은 분조에서 관리 임면의 제반 사항을 담당했다. 선조가 요동으로 피란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철회하고 의주에 머물게 되면서 조정이 두 갈래로 운영되었다. 이로 인해 관리 임면에 혼선이 발생하게 되었고, 정탁은 분조의 결정을 재촉하고 임의대로 시행하기도 했으며, 대조의 임명을 임의로 유보시키기도 했다. 상벌에 대해서도 정탁은 신속하고 엄중한 입장을 보였다. 상벌의 효과는 제때 시행해야 하며, 벌을 주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벌을 통해 궁극적으로 공을 세우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탁은 분조에서 군사 작전을 수립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일을 주도했다. 당시 조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군대가 제한적이었고, 특히 분조에 배속된 군대가 없었다. 분조는 관군과 의병을 망라해서 군사를 모으고, 군량을 확보하고 작전을 수행했다.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의병과 군사 모집 활동을 지원하고, 의병장을 독려하는 등 분조는 의병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는 대조가 대명 외교를 전란 대응의 유일한 방안으로 삼고 대처한 것과 대비되며, 전쟁 이후 조정의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분조는 피란하면서 백성들과의 접촉을 통해 왕실과 조정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민심을 수습하였다. 특히 평민과 천민까지 전쟁의 주체로 인식하여 그들이 군공을 세우면 적극적으로 포상하면서 독려했다. 이와 같이 정탁은 노련한 관료로서 피란하는 조정에서 분조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다. 그는 관리의 임면이나 상벌에 대해 합리적이고 현실에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국가의 근본적 기틀은 고수해야한다는 원칙론자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전란의 수습과 난후 복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영문초록
    When Japan invaded Korea in 1592, Jeong Tak (1526~1605) was fourth state councillor. The king fled north to Pyeong``an Province, and his crown prince to Hamgyeong Province. Jeong was ordered to accompany the crown prince. And he kept a journal from this time to the first month of next year, 1593, when they rejoined the royal court. This record is rich in first-hand information about the Imjin War. Jeong took a leading role among the crown prince``s court, the “branch court.” He was a versatile scholar, with an expertise in the art of war, astronomy, geography and divination, in addition to Confucian scholarship. He was an experienced high-ranking official and travelled to Beijing twice, in 1582 and 1589, and well informed about China and Japan. So he was well qualified for his task. The “branch court” had many disadvantages. The faraway royal court exercised authority over appointments of officials, administration of justice, and military command, causing confusions and frictions. As a senior official, Jeong handled such problems quite effectively. In appointments, the branch court often suspended will-advised royal orders, exercised its own discretions, and asked for the royal court``s approval later. It meted out punishment and reward promptly, without prior consultations, and reported later. It recruited soldiers, supported local militias, secured provisions, and carried out military operations on its own. Jeong Tak managed the difficult tasks of the wartime branch court very effectively-appointments, punishment and reward, and military affairs. This helped pacify popular unrest, caused by the unreliable royal court, and mobilize popular support for the government``s wartime efforts. All along, Jeong kept a balance between principle and expediency. So he enjoyed the king``s full trust and play more important roles after he rejoined the royal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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